재계 귀하신 몸 '호남출신'

12/23(수) 15:13

재벌의 연말 정기 인사철이 본격화되면서 호남 인맥이 ‘상한가’ 를 기록하고 있다.

재벌마다 호남 출신 전문경영인을 대거 영입하는가 하면 그룹내 극소수 호남 출신 임원들을 주력사와 핵심 요직에 전진배치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5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한 ‘국민의 정부’ 가 출범한지 1년이 다가오는 가운데 호남 인사가 워낙 희귀해 ‘특수’ 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호남 인맥은 재계에선 ‘희귀종’ 이나 다름없다. 과거 40여년간 영남을 중심으로 한 정권 하에서 재벌들이 경상도 인맥을 중용, 상대적으로 호남 인사가 부각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가 출범하자마자 대우가 이일쇄 ㈜대우 건설상무를 단숨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시킨 것은 정권과 재벌의 유착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경우다. 김우중대우회장은 이 사장이 문민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물렀던 한이헌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경남고 동창인 점을 알고 벼락 승진시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남인맥의 전진배치는 정권의 입김과 경제정책 등에 따라 엄청난 영향을 받는 재벌들로서는 ‘경영안보’ 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안전장치. 정권에 보험을 들고 정치권및 경제팀의 움직임과 경제정책 등 고급정보를 수집, 경영에 반영하기 위해선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도 기존 PK(부산 경남), TK(대구 경북) 경영진이 퇴조하고, 호남 경영진이 전면에 부상하는 ‘경영진 교체’ 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핵심실세와 ‘선 닿는’ 인사 영입러시

호남 인맥 중용의 대표적인 사례는 SK. SK는 11월 김영석전교보사장을 증권 부회장으로 전격 영입했다. 김부회장은 전북 익산 남성고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유종근전북지사겸 대통령 경제고문과는 남성고 선후배 사이. 김부회장은 손길승SK회장과 서울대 상대 동창인데다 현정부 핵심인사들과 폭넓은 교분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주요 발탁요인이 됐다는 후문이다.

SK는 12월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도 주력인 SK텔레콤 사장에 조정남 부사장을 승진 발령해 주목을 끌었다. 조사장은 전주고 출신으로 서울대 화공과를 나온 엔지니어지만 몇 안 되는 그룹내 호남 인맥의 대표주자라는 점이 톡톡히 덕을 본 케이스로 평가된다. SK는 이번 인사에서 호남 출신을 샅샅이 찾았지만 해당자가 거의 없어 고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LG도 호남 인맥을 영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LG가 최근 영입한 인사중 오호수증권사장(전 대우선물 사장)은 보기드문 ‘월척’ 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주 출신으로 경복고와 연세대 법학과를 나온 오사장은 재벌 및 금융기관의 생사여탈권을 쥔 이헌재금융감독위원장과 막역한 사이인데다 국민회의 실세 한화갑원내총무와도 동향(목포)으로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LG는 4대 그룹 가운데 금융쪽이 취약한 점을 보강하기 위해 내년에 생명보험업 등에도 말뚝을 박는다는 방침이어서 오 사장의 ‘마당발’ 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쌍용도 지난 10월 91년에 퇴직한 홍금표전쌍용자동차부사장을 양회 구조조정본부장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홍본부장은 군산상고와 고려대 상대 출신으로 여당 실세들과 활발히 교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본부장은 금융기관에 의한 기업가치 회생작업(워크 아웃)을 적용받으면서 각종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데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그룹내 호남인맥 없으면 “안타까운 일”

현정부 들어 재벌안에서 호남 출신이 중용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양인모엔지니어링대표(광주고), 배정충화재대표(전주고), 박영화전자부사장(군산고) 등이 호남인맥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양대표는 현정부 인사와의 폭넓은 교분으로 그룹내 대표적인 마당발로 통한다. 그는 이건희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그룹의 자동차 사업및 구조조정과 관련, 정부와 그룹을 연결하는 창구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올 들어 서울 상암동 축구전용경기장 공개입찰에서 ‘골리앗’ 현대건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수주에 성공한데다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석유화학 플랜트도 수주하는 등 짭짤한 경영실적을 올려 경영자로서도 인정받고 있다. 배 대표도 정동영국민회의대변인의 전주고 동기로 행동반경을 부쩍 넓히고 있다.

현대는 지연 학연 등이 두드러지지 않은 편. 그러나 목포 출신의 최수일전중공업사장이 김영삼대통령 시절 정주영명예회장의 대선 출마에 따른 비자금문제 등으로 ‘팽’ 됐다가 올초 고문으로 재영입됐다. 광주일고를 나온 김광명건설해외부문사장도 정치권및 경제팀 실세들과의 인맥을 바탕으로 그룹내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임원 가운데는 건설의 배동근전무(순천고), 자동차의 이연재전무(전북), 전자의 오계환부사장(남성고), 김태웅전무(광주일고), 종합상사의 김고중전무(남성고)가 주목받고 있다.

LG는 김범수(목포고) LG_EDS 사장과 신현주엔지니어링사장(광주일고)이 주가를 올리고 있다. 창업주가 경남 출신인 탓에 경상도 출신 임원이 많은 LG로서는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 선정의혹에 따른 검찰 수사와 현대와의 반도체 통합과정에서 진통을 겪으면서 그룹과 정권을 연결할 호남 인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대우는 김우중회장이 현정부 실세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 호남 인사에 대한 갈증을 느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전경련 회장 보좌역으로 옮긴 서재경전무(광주일고)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의춘·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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