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짜리 조종사'의 세계횡단

12/02(수) 11:47

굴하지 않는 도전의식과 경험하지 못한 두려움에 담대히 맞선 청년의 기상이 눈부신 젊은이, 이주학(28).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경비행기를 타고 세계횡단비행을 해낸 그는 여독이 가실 사이도 없이 남·북극점을 오가는 세계종단비행을 꿈꾸고 있다. 그의 도전의식은 휴식을 모른다.

지난 9월22일 시작해 10월27일 마친 35일간의 세계횡단비행은 그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참으로 위험하고 어려운 여정이었다.

오직 ‘금강2호’ 의 엔진 하나만을 믿고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세계를 한바퀴 돌았다. 연료통을 개조하지 않았다면 불과 4시간밖에 날 수 없는 경비행기로 하루 평균 10시간 비행의 강행군이었다. 마샬군도-하와이, 하와이-샌프란시스코, 미국 메인주 방거-스페인 산타마리아 구간은 무려 18시간이상을 날아야 하는 태평양과 대서양구간. 발아래는 어디에도 기착할 수 없는 망망대해다.

졸음 쫓으려 치약 바르고, 고추장 먹고

광활한 바다에서 그는 장시간의 비행과 저산소증으로 여러차례 위험을 맞았다. 잔뜩 긴장한 채로 조종간을 잡았지만 졸음이 몰려왔다. 볼펜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치약을 코에 발랐다. 심지어 튜브고추장을 통째로 먹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눈이 감겼다. 기체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차하면서 눈을 떠보니 비행기는 바다로 하강하고 있다. 십년을 감수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거센 비바람과 천둥을 동반한 폭풍도 여러번 만났다. 여객기처럼 구름위로 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서양구간에서는 번쩍하는 강한 빛과 함께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지만 이상은 없었다. 폭풍우를 벗어나니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횡단비행에 성공한뒤 정비를 받으면서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날개 끝에 벼락을 맞았던 것이었다. 천운이었다. 사지로 들어갈 뻔 했던 불운이 살짝 비켜간 것이다.

마샬군도-하와이구간에서는 통신장애로 3시간가량 연락이 끊겨 관제소에서는 추락한 줄 알았다. 민간 비행기는 해당 관제소와 매 시간 통신연락을 취하도록 돼 있다.

위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동을 켜지 않은채 활공했던 때도 여러번이었다. 만약 다시 시동이 켜지지 않는다면 모험은 그것으로 끝이다. 아슬아슬한 무동력 활공은 장거리 비행을 위해 연료를 아끼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기존 연료통의 연료를 완전히 소비하고 새 연료통에서 기름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일단 무동력으로 하늘을 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은 대략 5~10초사이. 엔진의 우렁찬 굉음이 들릴때 마다 만세를 불렀다. 94년 미국 파이퍼 항공사의 체로키 경비행기로 조종을 처음 시작한 이후 시동을 꺼뜨려보기는 이 비행이 처음이다.

25년된 단발 비행기에 목숨건 비행

이씨는 “비행교관을 하면서 훈련생들에게 절대 시동을 꺼뜨리지 않도록 당부했는데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고 말했다.

사실 그의 이번 세계횡단비행은 어찌보면 무모한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비행을 아는 사람이라면 ‘금강2호’ 의 세계횡단비행에 고개를 저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금강2호 세계횡단비행의 후원을 맡은 대한항공도 당초 이 비행의 위험성을 알고 망설였다고 한다. 기령 25년의 단발 경비행기. 조종사 한명. 자동항법장치도 없어 꼼짝없이 조종사 혼자힘으로 비행해야만 하는 상황. 태평양을 지나는데 무려 18시간이상을 비행해야하는 강행군 등. ‘안전’ 이라는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항공사로서는 단독세계횡단비행은 이씨 이상의 부담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젊은이의 패기와 철저한 사전준비에 감명받은 조중훈 회장이 결단을 내려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사실 2만달러에 달하는 연료비지원은 차치하고라도 이씨 개인이 각국마다 착륙허가를 받았다면 횡단비행은 한없이 늦어졌거나 혹은 포기해야만 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횡단항로 지도조차 완전히 마련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씨는 “큰 부담이 되는데도 후원해준 대한항공을 위해서도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며 “최후의 상황이 오더라도 결코 죽어서는 안된다는 마음에 생존장비는 철저히 준비했다” 고 말했다.

그는 세계횡단비행을 위해 각종 자료수집에만 1년을 보냈다. 횡단비행에 무엇이 필요하며 위급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였다. 최초의 대륙횡단비행사 린든버그의 전기를 수도없이 읽었다.

짐 줄이기 위해 지도 여백까지 잘라내

세계횡단비행이 있기 6개월전부터 그는 실제 비행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린든버그로부터 그는 횡단비행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그것은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갖고 나는 것이었다. 처음 준비했던 짐은 줄이고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실제 비행때는 4분의 1로 줄었다. 지도의 여백까지 잘랐다. 35일간의 횡단여행에 필요한 짐은 운동 가방 2개에 불과했다.

줄이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존장비다. 망망대해에 추락했을 경우에 대비해 인공위성용 구조통신장비도 갖추었다.

굳이 그가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해야만 했는가에 대한 대답은 싱겁기 그지없다. “남들이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는 행동으로 옮겼다.

그러나 그는 “나는 빵점짜리 조종사” 라고 말했다.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엄청난 위험을 겪고난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악조건에 처해 능숙하게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악조건에도 빠져들지 않는 조종사가 진정으로 훌륭한 조종사” 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악조건에 휘말리지 않는 조종사가 되겠다는 가치관에 어긋났던 이번 비행이 마음에 걸린다고 덧붙였다. 1년6개월의 준비로도 역시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의미였다.

2000년 남북 세계종단비행에 도전

그는 “2000년으로 계획한 남북 세계종단비행때는 보다 철저한 준비로 위험없이 성공하고 싶다” 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는 새로운 천년과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의미있는 비행을 해보고 싶다” 고 말했다. 잘생기고 늠름한 이 젊은이가 남들이 가보지 못한 미지의 하늘을 날아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지 지켜보자.

'하늘에서 살고 싶은' 이주학

이주학씨는 지난 9월22일 “한국인의 도전정신을 세계에 알리고 오겠습니다” 는 출사표를 던지고 서울을 출발했다. 그의 애기(愛機)는 체로키 253 단발 경비행기. 기령 25년으로 이번 비행을 위해 재미교포로부터 빌렸다.

35일간의 비행동안 그는 김포를 떠나 사이판을 거쳐 마샬군도-하와이-샌프란시스코-LA-워싱턴-산타마리아-로마-이집트 룩소르-두바이-인도 뭄바이-푸켓-싱가폴-마닐라를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25개국 상공을 난 총 비행거리는 무려 4만2,000㎞.

애기의 이름은 1922년 한국인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이 타고 서울 상공을 처녀비행했던 금강호의 이름을 빌려 지었다.

이씨는 84년 중학교 재학중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간 이민1.5세대. 처음 비행을 해본 것은 94년. UCLA 경제학과 재학중 학교 인근 비행장에서 비행훈련을 받고 자격을 따냈다. 현재 그가 갖고 있는 비행관련 자격증은 상업용 조종사자격증 등 10여개가 남는다. 4년간 2,000시간의 비행 기록을 세웠으며 북미대륙 4차례 횡단과 북극권 비행을 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조종사를 동경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조종사로서 하늘에서 살고싶다” 고 말했다.

정진황·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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