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0일은 유엔이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한지 50년되는 날. 세계적인 인권운동기구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세계인권선언을 기념해 각국 지부에서 기념식 및 강연, 전시회, 공연들을 가져 인권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도록 권고했다. 이에따라 국내 각 인권단체들은 국가보안법제정 50주년이 되는 날인 12월1일 우선 국가보안법폐지를 촉구하는 국제연대집회를 가졌다. 이어 인권운동사랑방(대표 서준식)은 12월5일~10일 서울 동국대 학술문화관에서 ‘야만을 넘어 인권의 세계로’라는 주제로 제3회 인권영화제를 개최했다.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인권선언기념일인 10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1만2,000여명의 청소년들을 초청, ‘인권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한편 정부와 여당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논란이 되어온 국가인권위원회를 특수법인 형태로 확정지을 방침이지만 31개 인권관련단체들은 ‘인권법 제정 및 국가인권기구 설치 공동추진위원회’를 결성, 인권위원회를 정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명실상부한 ‘독립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공추위는 11월28일 당정협의에서 법무부가 기존의 법인형태를 고집해 조정이 무산된데 대해 “법무부는 오만과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긴급성명을 30일 발표, 실력행사에 돌입할 것을 결의했다. 따라서 올해 우리나라의 12월 초순은 여러 의미에서‘인권주간’이 됐다.

국가보안법 폐지논란으로 시작된 ‘인권주간’

‘인권주간’은 국가보안법 폐지논란으로 시작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10개단체로 구성된 한국인권단체협의회와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 200여명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국가보안법 제정 50주년, 세계인권선언 제정 50주년 국제연대집회’를 열고 국가보안법 모의장례식을 치른뒤 상여를 메고 한나라당과 국민회의 당사를 거쳐 국회앞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이날 한국인권단체협의회 김정숙 상임대표는 대회사에서 “50년전 제헌국회에서 일제의 잔재인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본떠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며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그간 수만명의 피와 눈물을 앗아간 이 악법은 철폐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앰네스티 한국지부의 허창수지부장은 국제앰네스티가 50주년을 하루앞둔 11월30일 발표한 ‘국가보안법 남용의 50년을 끝내야 하는 때’라는 한국관계성명을 낭독, 국제적인 관심을 환기시켰다.

앰네스티는 이 성명에서 “지금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더많은 정치범 등을 석방해 인권신장을 위한 한국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며 “1948년 이후 한국사회는 급격하게 변해왔지만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만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이 법은 아직도 ‘좌익’과 ‘친공’조직에 가담했거나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옥에 집어넣는 데 이용되고 있고 “최근 몇년동안에도 수백명의 학생, 정치가, 노조지도자, 출판업자, 종교지도자는 물론 심지어 노숙자까지도 북한을 고무찬양했거나 이적행위를 한 혐의로 체포됐다”고 비난했다.

앰네스티 “국가보안법은 시대착오적인 법”

국제 앰네스티는 올해 150명의 정치범이 석방되고 2명이 사면된 점을 치하했다. 그러나 아직도 40년 가까이 구금되어 있는 사람도 있고 단독수감된 사람 등 수백명이 감옥에 있으며 많은 정치범들이 ‘준법서약’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지난 8월 사면에서 제외된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앰네스티는 “국가보안법은 한국과 같은 발전된 사회에서 시대착오적”이라며 “한국은 그간 자랑스런 민주주의 발전을 이룩했지만 민주주의는 정치적 견해에 대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언론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구속은 국가안보나 국제적 명성을 높이는데도 방해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성명은 정부의 구체적인 결단을 촉구했다. “역대 한국정부가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는데 계속 실패했기 때문에 정치적 불관용의 분위기가 만연해 있으며 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친북적’으로 몰린다. 한국의 대통령과 법무장관은 앰네스티에게 정치적 반대와 경제 위기 때문에 법을 개정하기가 어렵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러한 변명의 시기가 지났다고 본다. 개정이 연기되고 있는 와중에 매일 새로운 희생자가 나타난다. 인권보호는 위기때 특히 중요하며 한국정부는 법에 대한 비판여론의 지지를 얻어 개정반대자들을 막아내야 한다. 한국정부는 국가보안법의 남용을 벗어나 세계인권선언에서 규정한 기본적인 인권을 성공적으로 보장해야한다. 앰네스티는 한국정부가 서명한 이 인권선언과 조약들에 명시된 국제적 의무를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되어있다.

아시아 각국의 인권상황 개선도 촉구

앰네스티는 한국에 이어 아시아각국의 보안법 철폐와 인권상황 개선도 촉구했다. 이 성명은 말레이시아에서는 국가보안법으로 안와르 이브라힘 전부총리가 구속됐고 중국에서도 정치범들이 계속 감옥에 들어가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는 반체제전복법의 조항을 형법에 그대로 집어넣으려는 기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은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에서도 비슷하다. 앰네스티는 결론적으로 “20세기 동안 아시아 각국이 기본적인 정치적·제도적 개혁을 추진해왔지만 보안법은 아직도 시민사회와 정치적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이의 폐지를 촉구했다.

인권주간에 인권교육을 위한 이벤트도 많았다.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12월10일 저녁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1,000여명의 소년소녀가장, 불우청소년을 비롯한 1만여명의 청소년들을 초청, ‘인권은 이웃사랑으로부터’라는 주제로 대형 콘서트를 열었다. 이 공연에서 김대중대통령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인권의 중요성과 이웃에 대한 사랑실천을 강조했다. 이어 김수환추기경과 피에르 사네 국제앰네스티사무총장의 인권메시지 방영도 있었다. 신낙균문화관광부장관은 직접 공연장에 나와 청소년들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었다. (주)현대증권의 협찬으로 문화관광부,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등이 공동주관한 이 콘서트는 12월12일 낮 MBC에서 녹화방영할 예정이다.

축하와 철폐 목소리 뒤섞인 ‘아이러니’

인권운동사랑방은 3회째 인권영화제를 ‘무리없이’진행하고 있다. 지난 2년간은 매번 당국의 방해로 행사장을 옮기고 쫓겨다녔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제주 4·3항쟁을 다룬 ‘레드 헌터’가 문제가 돼 대표인 서준식씨가 보안법위반으로 체포돼 옥살이까지 했다. 이번에는 5일 개막작품으로 아이티의 독재자 뒤발리에 축출운동을 다룬 ‘레지스탕스’를 시작으로 일본인 야스키 모토하시감독이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일제시대 조선인 강제노동을 다룬 ‘한국인 B,C급 전범의 기록’, 멕시코의 농민운동을 그린 ‘치아파스’, 88년 버마 민주화시위 이후 미얀마를 다룬 ‘버마일기’, 유고연방 해체로 일어난 크로아티아의 ‘전쟁이 일어난 까닭은’등과 폐막작품인 독재자 피노체트의 잔학상을 다룬 ‘칠레, 지울 수 없는 기억’까지 모두 35편의 영화를 방영하고 있다.

인권선언, 보안법이 각각 50주년을 맞은 98년12월 분단된 이땅에서 아직도 축하와 철폐의 목소리가 뒤섞여 ‘모순’된 인권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남영진·주간한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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