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태국총리, 개혁의 꽃을 피운다

12/16(수) 14:44

추안 리크파이 태국총리가 개혁을 위한 히든 카드를 빼 들었다. 태국 국민들은 12월9일 아침 텔레비전과 라디오 앞에 모였다. 방송에선 “태국의 경제를 위해 반드시 개혁법은 통과돼야 합니다. 이제 의회가 개혁에 동참 할 때입니다”라는 힘찬 리크파이 총리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리크파이 총리는 최근 파산법 외국인 기업·토지소유법등 개혁법안 11개가 상원과 기득권 세력의 반대에 부딪쳐 통과되지 못하자 대국민 설득을 위한 개혁포럼을 개최한 것. 그는 재무· 법무장관 등 주요 각료들과 함께 시민들의 개혁에 관한 질문에 답하면서 정부의 입법취지를 장시간 설명했다. ‘투명한 정책, 깨끗한 행정이 부패를 척결하고 개혁을 추진하는 지름길’이라는 신념을 지닌 리크파이 총리가 국민을 상대로 한 최선의 정공법이었다.

그는 바트화의 평가절하에 이은 경제붕괴로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지난해 11월 총리에 올랐다. 취임직후 곧 바로 부실은행 56개를 폐쇄정리하는 대대적인 금융기업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또한 독립위원회를 구성, 경제개혁법을 마련하는 동시에 부패한 관리와 기업인들을 사법 처리하는등 부패의 사슬을 끊는 노력을 계속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제금융을 지원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재협상을 통해 지원조건을 완화시켰는가 하면 미국을 방문, 빌 클린턴대통령과 담판을 벌여 지원을 약속받아 내기도했다.

이과정에서 야당 반발과 기업인들의 매수노력등 총체적인 공격이 있었지만 그는 묵묵히 태국 경제발전을 위한 개혁정책을 실시할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국민들은 73%라는 높은 지지로 개혁을 도왔다. 국민들은 ‘미스터 클린’리크파이총리가 기업과 결탁해 온갖 부정부패에 물든 정치인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방콕시내에 있는 총리관저를 마다하고 변두리에 위치한 2층 슬레이트집에 살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한다. 이웃에 위치한 이발소 식료품점등을 지나거나 길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면서 경제위기로 인한 실업등 국민들의 고통을 직접 느낀다. 이런 국민들의 아픔은 즉시 정책으로 반영한다.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한때 달러당 52.7바트였던 환율이 41바트로 안정됐고 21%까지 치솟았던 콜금리도 11%대로 하락하는 등 경제도 위기상황을 벗어나게됐다.

“한국민의 도전의식과 근면성을 배우고 김대중대통령의 개혁정신을 본받자”고 역설하는 리크파이총리. 그는 1938년 가난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타마셋대에서 법학을 전공한뒤 변호사로 활동하다 69년 31세 최연소로 의회에 진출했다. 태국 민주화의 싹을 키운 92년 5월 방콕 반군부·민주화유혈 시위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을 이끌고 승리한 그는 총리에 취임 3년동안 민주화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배국남·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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