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봄.여름 패션] 풍요와 여유, 개성과 자유를 추구한다

12/30(수) 14:27

미래는 즐거운 것이다. 20세기말의 경제위기를 극복한 지구는 새로운 부와 문명의 이기를 누리려는 스타일리스트들의 무대가 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사이의 와이리버협정은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결국 중동의 평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됐고 사해 요르단 이라크가 새로운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미국 일본 러시아 등 7개국이 참가하는 우주정거장 건설계획도 차질없이 진행중되고 있다. 외계 다른 문명과의 만남에대한 기대와 흥분이 지구촌을 휩쓸기도 했다.

21세기를 앞둔 인류의 축제분위기는 패션에도 여지없이 반영되고 있다. 터번 차드라 등 중동유목민족의 의상이 에스닉한 미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가 하면 메탈릭 소재와 우주선모티프가 사람들의 관심을 우주시대로 확장하고 있다. 복제에 관한 연구가 급진전되면서 인간의 질병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지만 한편으론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 일으켰다. 성형수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외모가 점점 비슷해지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의상과 장식물 등을 통한 자기표현으로 나타났다. 20세기말에 시작된 인터넷혁명은 패션의 유통 디스플레이개념도 바꾸어 놓았다. 예전처럼 유명백화점의 쇼윈도를 기웃거리는 대신 소비자들은 컴퓨터에 자신이 좋아하는 색상과 스타일을 입력한다. 넷스케이프/AOL사가 제공하는 카탈로그를 훑어 보다가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발견하면 즉시 3차원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그 옷이 자신에게 맞는지 검증해 볼 수도 있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미래이다. 정말 21세기에 인간은 더많은 풍요와 여유, 개성과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세계 유명디자이너들은 일제히 ‘YES’ 라고 말한다. 98년 하반기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컬렉션에서 예고된 99년 봄/여름 경향은 경쾌함 로맨티시즘 판타지 자연주의 등이 주를 이루었다.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 코튼과 린넨 등 자연스럽고 고급스러운 소재, 꽃과 식물을 모티프로 한 직물, 레이스 손으로 맞든 자수 비드 등 여성적인 장식물들로 그들은 미래에 대한 낙관과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하이테크와 사이버문명을 음울하게 표현했던 이들로서는 갑작스런 변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변덕스러움이 패션의 속성이라고는 하지만 그 돌변은 어지러울 지경.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자.

런던컬렉션의 총아 알렉산더 맥퀸은 고급스런 느낌의 수예, 페티코트로 한껏 부풀린 스커트, 층층의 레이스로 이어진 속치마를 연상시키는 롱 스커트, 대담하게 오픈한 재킷의 여밈을 프릴로 장식하는 등 여성적이고 도발적인 의상을 선보였다. 런던 컬렉션에서 미래의 이미지를 독특한 라인과 소재로 선보인 또 다른 디자이너가 후세인 샬라얀이다. 순백의 면 린넨 등으로 만든 깔끔한 라인의 원피스는 정된되고 편안한 미래를, 플라스틱 의상과 의자를 차용한 장식물은 경직된 느낌으로 극단적으로 모순되는 미래상을 제시했다.

다양한 국적의 디자이너가 참가하는 파리컬렉션에서는 미니멀리즘 로맨틱환타지 아방가르드 등 다양한 조류가 선보였다. 미니멀리즘은 모더니즘과 함께 환경친화적이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유지하는 소비자리더들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지목받는 사조. 과도한 장식을 배재하고 대신 부드럽고 가벼운 소재로 편안한 아름다움을 선보인 크리스챤 디오르, 에르메스, 루이 뷔통, 샤넬들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아방가르드의 대표적인 디자이너로는 레이 가와쿠보. 이밖에 벨기에출신의 디자이너들이 주로 해당된다. 가죽과 금속사슬 다양한 패턴실험 등 아방가르드적 디자인은 저속한 취향, 반짝이는 재치, 통속적인 표현에 기대는 대중문화와 그 정신이 닿아 있다. 엄숙함과 권위를 거부라고 새로운 표현과 인간의 낯선 감정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컬트영화 퓨전음악 코믹서적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를 주요 소비자군으로 한다. 대중문화의 젊은 문화가 선도하게 될 21세기초에 아방가르드가 주요한 패션경향으로 떠오를 것은 자명하다.

로맨틱 판타지로는 소니아 리키엘, 티에리 뮈글러 등을 들 수 있다. 꽃을 이번 컬렉션의 중심모티프로 삼은 소니아 리키엘은 붉은 색 니트, 꽃프린트의 화려한 원피스를 선보였다. 모델들은 아예 꽃을 머리에 꽂고 나와 윙크를 던지기도 했다. 티에리 뮈글러의 의상은 밤무대의 무희들을 연상시킨다. 노란 연보라 연두의 쉬폰소재 원피스는 어깨와 발목주위에서 물결치면서 환상적인 이미지와 저속한 이미지를 함께 나타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디자이너들이 미래를 표현하기 위해 차갑과 무거운 금속성 이미지를 선택했다면 99년 디자이너들은 친근하며 실용적인 기능성을 선택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프라다. 단조로운 색상과 수직 수평분할을 디자인핵심으로 삼았던 프라다가 99년 봄여름을 위해 스포티한 의상을 선보였다. 옷의 곳곳에 거울을 주렁주렁 달아 성찰을 암시했으며 여러형태의 주머니를 허리 다리에 달아 미래로 떠나는 여행을 권유하는 듯 했다.

전세계 디자이너들이 이렇듯 갑자기 미래예찬론자가 된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패션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이다. 어둡고 칙칙한 의상은 벌써 옷장에 가득하다. 섬유업체들의 수요창출도 한 몫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국에서 개발돼 21세기 소재로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는 텐셀. 목재의 펄프를 원료로 하는 텐셀은 생산공정에서 공해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데다 소재의 느낌이 가볍고 부드러워 패션의 자연주의경향과 궁합이 잘 맞는 것. 텐셀은 컬렉션에서 인기소재로 이용됐다.

미래는 광고이미지와 패션컬렉션을 통해 벌써 우리 삶 속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 20세기의 마지막 봄 여름, ‘보다 가볍고 우아하게 낙천적으로 사고하고 생활하는 사람이 21세기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 고 전세게 디자이너들은 합창하고 있다.

김동선·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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