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진 빚 음악으로 갚을 수 있도록..."

08/11(수) 15:37

록그룹 들국화의 리더 전인권에 대한 선배 김민기의 사랑과 함께 기막힌 사연이 PC통신에 공개되어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PC통신 천리안 게시판의 ‘나도 한마디’코너에 지난 6월 히로뽕 상습복용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에 계류중인 전인권의 담당 변호사 엄상익씨의 칼럼과 함께 게재된 김민기의 편지는 5일 현재 340여건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70여명으로부터 동조표를 얻고 있다.

김민기의 편지와 엄 변호사가 인터뷰에서 밝힌 전인권의 사연을 공개한다. 물론 현재 재판에 계류중인 피고인의 개인적인 사정을 다룬다는 것에 대한 염려는 없지 않다. 하지만 한때 ‘가공되지 않은 원시인의 목소리’라고 칭송받은 전도유망했던 한 음악인을 구하겠다는 김민기 등 선배음악인들의 후배사랑을 묻기 아까워 소개한다.

전인권은 지난 87년 12월 히로뽕 상습투약 혐의로 처음 구속된 이후 92년과 97년 각각 대마초와 히로뽕 흡입으로 재차 구속됐으며 97년 8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이 채 끝나기 전인 지난 6월 다시 히로뽕 상습투약 혐의로 구속됐다.

집행유예 기간에 재범혐의로 구속된 전인권의 사건을 위임받고 돌파구를 찾느라 동분서주하던 엄 변호사는 지난 달 중순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아침이슬’의 작사 작곡가 김민기가 쓴 것이었다.

이 편지는 “저는 가요 ‘아침이슬’과 ‘상록수’ 등을 작사 작곡한 김민기입니다. 주제넘게 이런 글을 올리게 된 것은 제가 너무도 아끼는 음악 후배인 가수 전인권에 대한 저의 안타까운 심정을 제 마음속에 그대로 묻어둘 수가 없어서입니다”로 시작한다.

“흔히 대중음악인을 ‘딴따라’라고 불러 폄하하지만 저는 전인권씨를 감히 예술가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그의 음악 속에는 아직 충분히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여느 상업적인 대중가요와는 다른 인간과 자연에 대한 한없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특이한 일탈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는 유쾌한 것일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사회규범을 해치고 도덕적으로,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분명히 해악이 되는 경우도 더러 보았습니다. 저는 예술가들의 모든 일탈을 두둔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전인권씨의 경우 분명 후자의 부정적인 경우임에 틀림없습니다.(중략)

존경하는 변호사님.

자식이 죄를 지었다면 부모의 죄라고 합니다. 전인권씨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그를 너무도 아끼는 선배인 바로 저의 죄입니다.

이미 최선의 변론을 해주시고 계신줄 잘 알고 있습니다만 부디 관대한 판결이 내려져 그의 인격적 완성과 그가 세상에 진 빚을 보다 높게 승화된 그의 음악을 통해 세상에 되갚을 수 있도록 제가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주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 스스로 세상에 대해 떳떳할 것 하나 없는 한없이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인권과 같은 실수 투성이의 후배를 도와 세상에 무언가 밀린 빚을 갚고 싶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받은 직후 선배 김민기의 진한 사랑을 전하러 수원구치소의 전인권을 찾아간 엄 변호사는 그 자리에서 전인권의 ‘불행한 친구’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버거시병으로 양다리와 손가락을 절단하고 나머지 부위마저 썩어가는 가수 하모씨. 진통제와 모르핀, 그리고 히로뽕으로 얼마남지 않은 생명을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베이스 기타리스트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이 가수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미인 탤런트와 결혼도 했지만 이젠 모두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음악을 함께 하며 하씨를 알게된 전인권은 병상의 하씨를 즐겨 찾았다. 하씨는 병상에서도 작곡을 했으며 전인권에게 음악이론도 가르쳐 주었다. 그게 하씨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들국화의 ‘늦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작해’가 하씨의 곡이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고 환자의 85%가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다는 버거시병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 하씨는 히로뽕에 손을 댔다. 전인권은 그 친구의 수술비를 전부 대고 밤새 간호하기를 마다않았다. 둘은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울만큼 사랑과 우정으로 맺어졌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병원침대에서 드링크제 한 병을 권했다. 멋모르고 마시던 전인권은 아무소리 않고 조용히 버렸다. 그 속에 히로뽕이 들어있었다. 친구의 고통이라도 실제 함께 나누고 싶던 전인권은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은 또 한 차례 더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전인권은 구속되었다.

엄 변호사는 “누군들 사연이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인권은 히로뽕을 복용한 가수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의미는 크게 달라집니다. 결코 매도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엄 변호사에 따르면 김민기 이외에도 가수 양희은을 비롯해 대중가요 쪽에서는 물론 문화 각계에서 탄원서가 답지하고 있다고 했다.

선후배 가수 사이의 뜨거운 사랑이 사이버세상을 통해 뜨거운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박창진·일간스포츠 연예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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