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디자인 제품마다 변형 가능 기업 철학 담기 안성맞춤

디자이너 이상봉은 최근 기업이 ‘가장 사랑하는’ 패션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이다. 확실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앙드레 김과 비교해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이상봉의 디자인은 시즌마다 변하고 제품마다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에 각 기업의 철학을 녹여내기에 더 없이 좋다.

앙드레 김이 화려한 이미지로 마니아 계층의 지지를 받는다면 이상봉은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면서도 폭넓은 소비자에게 소구력을 지닌다. 때문에 ‘앙드레 김이 대세’이던 2000년대 중반을 넘어 요즘은 대기업의 고가 마케팅에서 이상봉의 디자인 작품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제까지 휴대폰, 침구, 주방용품, 심지어 담배까지 그의 이름으로 출시됐다. 신세계 이마트의 침구류 이상봉 메종(Liesangbong Maison)에서 시작해 행남자기의 에스프레소 커피잔 리미티드 에디션, KT&G 에쎄 골든 리프 스페셜 에디션 까지 줄줄이 히트를 쳤다.

최순화 삼성경제 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런 현상에 대해 “(이상봉의 디자인은) 대중매체에 많이 노출돼 비교적 친숙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강점이 있는데다 희소성이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이점 또한 있다”고 분석했다.

그의 디자인 상품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LG 싸이언의 휴대폰과 지난 해 12월 출시된 2008년 프랭클린 플래너, 올해 초 분양된 금호건설의 리첸시아의 기획 배경과 작업과정, 시장 반응을 분석했다.

■ LG 싸이언 샤인 디자이너스 에디션

2006년 12월 LG전자에서 내놓은 LG-SV420은 싸이언 블랙 라벨 시리즈 두 번째 제품으로 메탈릭 실버 컬러에 한글이 조화롭게 디자인 된 것이 특징이다. 이 상품을 기획한 LG전자 사업부 이종진 팀장은 “휴대폰을 패션 아이템으로 생각하는 젊은 고객이 많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한글 아이템을 패션화 시킨 분이니 이걸 단말기에 접목시키면 디자인 측면에서 발전하는 것은 물론, LG전자의 이미지가 상승될 거라 생각했다”고 기획의도를 말했다.

작업은 LG전자의 제품 컨셉트 회의 후 이상봉 디자이너와 LG전자 디자인연구소에서 공동디자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상봉 디자이너가 한글의 양각, 음각, 프린팅 기법과 글씨의 색깔을 제시하면 디자인연구소 직원들이 현실적으로 단말기에 어떻게 적용시킬지를 연구했다.

제품에 들어간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시구는 이종진 팀장의 아이디어다. 제품 이름인 ‘샤인’을 이미지화 하는 방법을 고민 하던 중 우연히 신문에서 본 윤동주의 시를 제품에 접목시키자는 아이디어를 이상봉 디자이너에게 전했고, 이상봉은 이를 디자인 작업으로 풀어냈다. 이상봉 디자이너가 천 여장의 디자인 시안을 그리는 데는 일주일, 이 중 하나를 고르고 제품으로 출시하는 데는 대략 세달이 걸렸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휴대전화 시장이 빨리 변하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됐다. 빠른 시일 안에 디자인을 하고 시장에 나와야 했기에 당시 계획된 여행을 취소하고, 일주일간 디자인만 그렸다”고 말했다.

3만대 한정판으로 나온 이 제품은 출고가 59만원의 고가였음에도 보름 만에 모두 팔렸다.

■ 프랭클린 플래너

MCM, 루이까또즈, 빈폴 등 중가 패션 업체들과 제휴디자인을 선보였던 프랭클린 플래너는 지난 해 2008년도 제품을 기획하며 ‘한국적인 느낌을 가미한 고급 다이어리’를 선보이기로 하고 이상봉 디자이너에게 시안을 맡겼다.

프랭클린 플래너의 국내 제작 유통을 담당하는 (주)한국성과향상센터 김진영 대리는 “원래 프랭클린 플래너는 미국에서 발명된 제품이지만, 국내 상품은 여기에 한국적인 느낌을 가미하고 싶었다. 한국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는 이상봉 디자이너와 제휴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처음 디자인 시안을 잡으면서 독특하면서도 한국적인 느낌이 강한 자개 소재가 거론됐지만, 현실적으로 생산이 어려워 포기했다. 그러던 중 이상봉 디자이너의 한글 디자인을 살려 가죽 다이어리를 만들기로 하고, 앞서 작업했던 LG샤인폰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2008년 프랭클린 플래너 ‘이상봉 바인더’는 장사익 선생의 서체로 윤동주의 <서시>를 양각처리 한 제품이다. 포켓용부터 커다란 클래식 사이즈까지 4가지 종류로 출시된 이 제품은 25만원에서 29만원의 고가임에도 출시 두 달 만에 2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김진영 대리는 “이상봉 바인더는 프랭클린 플래너 중 최고가 제품이지만, 아직까지 가장 잘 팔리는 상품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 금호건설 어울림 & 리첸시아

이상봉 디자이너가 가장 최근에 작업해 선보인 디자인은 금호건설의 벽지와 방화문이다.

금호건설 홍보팀 박창선 씨는 “국내 건설사들이 비슷해진 기술력으로 타사와 차별화하기 힘들다. 새로운 영역에서 경쟁력을 찾고자 했다. 기능성 뿐만 아니라 예술성을 가미해 소비자를 충족시키는 데는 감성 이미지가 확실한 이상봉 디자이너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금호건설 측은 모든 디자인 과정에서 이상봉 디자이너가 직접 참여하고 작업했다고 말했다. 금호건설 디자인 관계자는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 있으면 창고로 직접 뛰어가 샘플을 가져올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고 말했다.

중앙에 한글 무늬가 새겨진 방화문은 대문에 글씨를 써서 복을 불러왔던 옛 전통을 계승하는 의미다. 행복한 집이 되길 기원하는 의미에서 캘리그래피 디자인은 노래 <즐거운 나의 집>의 가사를 소재로 택했다. 벽지는 화선지에 먹으로 그림을 그린 듯한 먹 번짐을 패턴으로 쓴 포인트 벽지다. 모노톤과 컬러톤, 두 가지로 디자인해 소비자가 원하는 색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1월 11일 리첸시아 경기 부천 중동에서 주상복합 ‘중동 리첸시아’ 견본주택을 열면서 이 작품을 선보였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박창선 씨는 “특히 방화문의 경우 아파트 분양을 받지 않아도 개별적으로 구입할 수 있냐는 문의가 쇄도했다”고 덧붙였다.

이상봉이 디자인 한 한글 방화문과 벽지는 지난 11일 지식경제부가 주최하는 인증제도인 GD마크 심사에서 올해 주택설비용품류 ‘굿 디자인 상’을 수상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