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건설 업체·홈쇼핑 상품 등 줄줄이 의뢰… 흥행 보증수표

“제 옷이 대중성은 없죠. 기성복을 직접 만들지 않거든요. 대신 라이선스 계약으로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아이템을 출시했죠. 원하시면 누구든지 부담 없이 구입하실 수 있게.”

몇 해 전부터 출시된 ‘앙드레 김’ 속옷과 골프웨어, 청바지에 대해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이렇게 말했다. 앙드레 김을 좋아하는 일반인들이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게’ 대중적인 제품을 만든다는 말이다. 그러나 브랜드 <앙드레 김>을 딴 이런 상품들은 같은 매스티지 상품 군에서 최고가를 달린다.

홈쇼핑 사상 처음으로 디자이너 속옷 <엔카르타>를 출시했던2005년 당시 15만원 대의 파격가로 선보였지만, 방송시간 당 4~5억 원을 너끈히 팔며 ‘대박’을 터뜨렸다.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분명한데다 의상이란 기존 모(母)브랜드와 유사한 제품군이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제품에 기업이 고가 전략을 세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제조업체가 디자이너 브랜드와 손을 잡고 제품을 출시하는 ‘크로스오버’ 현상이 유행하면서 앙드레 김은 대기업이 가장 먼저 러브콜을 보내는 디자이너가 됐다. 모 브랜드와 연관성이 없다는 점이 다소 리스크로 작용하지만, 기업의 고가전략을 추구하기에 고급스럽고 화려한 앙드레 김의 이미지는 더 없이 좋은 소재다.

기업의 관심과 비례해 앙드레 김이 참여한 기업의 상품은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앙드레 김은 삼성전자의 에어컨, 냉장고 등 가전제품 디자인을 비롯해 KB카드의 기프트 카드와 포인트 리 카드 등을 디자인해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가전제품과 건설업체, 홈쇼핑 상품과 할인점 침구 세트까지 디자인 의뢰가 줄을 이었던 2005년에는 ‘앙드레 김은 흥행 보증 수표’라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다.

2005년 인테리어 디자인은 선보였던 삼성 래미안, 2007년 조명 디자인을 했던 대방포스텍, 올해 초 도자기 디자인 작업을 함께 했던 한국도자기 담당자로부터 기획과 작업 과정, 소비자 반응을 들어보았다.

■ 삼성래미안

래미안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브랜드를 차별화하기 위해 앙드레 김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동으로 진행했다. 삼성물산 브랜드 팀 김상미 주임은 “동서양의 미를 섞어 가장 고급스러운 작품을 만들고자 의상 디자이너 앙드레 김과 제휴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래미안이 앙드레 김과 공동으로 작업한 프로젝트는 2005년 7월에 분양한 목동 트라팰리스와 11월에 분양한 래미안 수성(대구)이다. 목동 트라팰리스에는 미국 뉴욕맨하탄을 상징하는 건축가 프랭크 윌리엄스도 공동 작업자로 참여했다.

래미안은 2개의 프로젝트를 위해 2004년부터 앙드레 김과 디자인 회의를 하며 의상 컨셉트를 아파트 인테리어에 적용하기 위해 연구했다. 김상미 주임은 “앙드레 김이 전체적인 공간의 컨셉트와 구조, 배치를 디자인한 후 래미안의 상품개발실 인테리어 디자인 팀에서 기술적인 측면을 돕고, 다시 앙드레 김으로부터 감수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디자인 컨셉트는 화려함과 로맨틱함을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드레스의 유려한 선에서 영감을 받은 비잔틴 시대 문양의 벽지와 타일을 배치하고 강렬한 색상의 디즈플레이를 매치시켰다.

당시 삼성물산은 인테리어 작품을 기념해 그의 패션쇼를 모델하우스에서 개최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목동 트라팰리스는 최고 3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앙드레 김 도자기 '한국도자기'

■ 조명 기구 대방포스텍

6,000 여 개의 군소업체로 이뤄진 국내 조명 시장에서 대방포스텍은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앙드레김 라이팅’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대방포스텍의 이현도 대표이사는 “지난 해 4월 562개 업체가 참여한 밀라노 라이팅 쇼에서 국내 조명 업체는 단 한곳도 참여하지 못했다.

아직 국내 조명산업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 디자이너 앙드레 김과 함께 명품 조명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자 ‘앙드레 김 라이팅’을 런칭했다”고 말했다.

조명기구 역시 래미안의 디자인 작업과 과정이 비슷하다. 앙드레 김이 제품의 기본 컨셉트와 기본 문양을 제공하고, 디자인 시안을 대방포스텍으로 넘겨주면 대방포스텍은 자사의 조명 디자이너와 외주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세부 디자인을 만들고 앙드레 김의 감수를 받았다. 다시 이를 바탕으로 당사 디자이너가 시제품을 만들어 앙드레 김에게 2차 감수를 받은 후 제품으로 선보였다.

화려한 장식이 돋보인 ‘앙드레 김 라이팅’은 우선 기업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한 몫 했다. 앙드레 김이 디자인 한 조명이 올해 한국 최초로 프랑크 푸르트 조명박람회 출품 전시에 이어 내년 4월 밀라노 박람회 참가가 확정되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

허기복 기획실장은 “고급 아파트 전략을 취하는 건설사에서 브랜드 조명을 선호하면서 앙드레 김 라이팅을 구매하게 됐고, 기사를 본 일반소비자의 제품 문의가 지금도 쇄도한다”고 말했다.

■ 한국도자기

30일 오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에서 열린 삼성전자‘하반기 신제품 발표회'에 참석한 (왼쪽부터) 이현봉 삼성생활가전 사장, 이다혜 탤런트(삼선전자 전속 모델),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앙드레김 디자인 <지펠냉장고>를 선보이고 있다. 김동호기자
30일 오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에서 열린 삼성전자'하반기 신제품 발표회'에 참석한 (왼쪽부터) 이현봉 삼성생활가전 사장, 이다혜 탤런트(삼선전자 전속 모델),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앙드레김 디자인 <지펠냉장고>를 선보이고 있다. 김동호기자

가장 최근에 앙드레 김이 제조업체와 공동 작업한 것은 한국도자기의 디자인 작업이다. 한국도자기 홍보실 염창선 씨는 “앙드레 김은 대중적 지지도를 지니고 있어 그를 통해 예술성과 상품성을 충족시키고 싶었다. 앙드레 김의 디자인은 한국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우리 소비자들의 호감도가 높은 것이 강점이다”이라고 기획 취지를 밝혔다.

올해 1월 앙드레 김과 공동으로 디자인 개발에 참여해 3월에 제품을 출시했다. 앙드레 김의 디자인 시안과 무늬를 받아 한국도자기 디자이너가 디자인 했는데, 회의를 통해 앙드레 김이 컨셉트와 방향을 정하면 자사의 디자이너들이 맡아서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디자이너들은 주로 유니세프 후원 패션쇼와 앙코르와트 패션쇼 등 해외 패션쇼에 출품된 의상을 참조 했다.

앙드레 김 웨딩드레스를 모티프로 디자인한 ‘웨딩마치’, 잉어와 사슴, 나비 등 장수와 부를 상징하는 동물로 디자인 된 단반상기 세트, 커피 세트와 칠첩 반상기 등은 이를 모티프로 출시된 제품이다.

출시된 제품은 결혼 시즌을 맞아 신혼부부에게 인기가 좋았는데, 특히 ‘웨딩마치’ 홈세트와 ‘금리’단반상이 인기를 모았다. 지난 8~10일에는 ‘2008 두바이 국제 호텔산업 박람회’에 출품돼 중동의 바이어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