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미지 중시 트렌드 반영… 유명 디자이너·작가 작품 활용 제품 봇물

이젠 생활이 아트다.

하상림, 김중만, 김기창, 육심원, 이상민, 낸시랭, 김지아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만 볼 수 있는 이름들이 아니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또 길거리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전제품을 비롯해 휴대전화, 자동차, 화장품, 패션에 이르기까지 유명 디자이너와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한 예술작품 같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제품의 ‘기능’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디자인’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감각적인 소비자로 변화했다. 그들은 마치 예술작품을 고르듯 세련되고 멋스러운 제품을 선호한다.

보다 특별하기를 원하고, 개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로 인해 ‘디자인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기업들은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데 있어 품질이나 가격과 같은 유형의 요소들을 중시했던 과거와는 달리 ‘감성적’이고 ‘무형적’인 요소를 중요시하며, 디자이너와 작가들의 작업장을 제품으로 옮겨놓고 있다.

가전시장의 아트 열풍을 불러일으킨 LG전자는 해를 더해갈수록 업그레이드된 디자인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서양화가 ‘하상림’과 유리조각가 ‘이상민’, 공예 디자이너 ‘김지아나’, 산업 디자이너 ‘김영세’가 있다.

‘갤러리 키친’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LG전자의 포부는 ‘아트 디오스’를 통해 첫 물꼬를 텄다. 꽃의 화가로 유명한 ‘하상림’ 작가의 작품을 디자인으로 적용해 ‘냉장고=흰색’이라는 공식을 깨뜨린 것이다. 하상림 작가는 꽃을 묘사하기보다는 순수한 색채로 자유와 생명력을 표현하기로 유명한 중견 화가이다.

김선미‘Zen Flower’가구,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활용한‘Z:IN 아트타일’제품(위)
디오스 모노블랙, 아트 디오스, 로얄휘센(아래)
김선미'Zen Flower'가구,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활용한'Z:IN 아트타일'제품(위)
디오스 모노블랙, 아트 디오스, 로얄휘센(아래)

하상림 작가가 막 피어나는 꽃의 모습을 디자인해 순수한 예술적 모티브를 아트 디오스에 접목시켰고, 레드 컬러 바탕에 수놓아진 ‘아트 플라워(Art Flower)’ 디자인은 세련되고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LG휘센은 올해 유리조각가 ‘이상민’ 작가의 작품을 적용한 에어컨 ‘로얄모델’을 내놓았다. 이와 함께 <바람이 머무는 공간-2008 휘센 초대전>이라는 전시회를 개최, 마치 에어컨을 하나의 예술 작품인 것처럼 전시해 주목을 받았다.

이상민 작가는 어린 시절 강가에서 놀던 동심의 추억을 투명한 물결무늬 유리를 통해 표현한 “Violet Wave”라는 작품을 적용해 제품의 자연스럽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특히 이 물결무늬는 컬러웨이브무드 조명을 이용해 12가지 색상으로 자연스럽게 변할 수 있고, 원하는 색상으로 설정도 가능해 인기를 끌고 있다.

프리미엄 냉장고 ‘디오스 모노블랙’은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김영세’와 만났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블랙 컬러를 바탕으로 김영세 디자이너의 ‘T-LINE’ 디자인과 스와로브스키의 유리 장식이 조화를 이뤄 고급스러운 느낌을 부각시켰다. 그간 ‘T-LINE’ 디자인은 MP3플레이어와 같은 디지털 기기와 사무용품, 패션 스카프 등 다양한 제품 영역에 적용돼 인기를 모은바 있다.

이처럼 LG전자는 디자인 경영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최근 디자인 중심으로 조직개편을 강행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 디자이너를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슈퍼디자이너(Super Designer)제도를 도입,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신제품을 내놓는 디자이너는 파격적으로 대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와 관련해 LG전자 홍보실 김병탁 차장은 “고객이 진짜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감성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디자인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술계 거장으로 손꼽히는 작가들도 미술관과 갤러리를 벗어나 일상 속을 파고들며 소비자와 가까워 지고 있다.

그들의 작품으로 새롭게 거듭난 인테리어 자재업체 Z:IN(지:인)의 황토도예타일 ‘Z:IN(지:인) 테라트’가 대표적인 경우다.

디자이너스 커렉션‘네이키드 소울’라인(위)
김영세, 하상림, 김중만(아래)
디자이너스 커렉션'네이키드 소울'라인(위)
김영세, 하상림, 김중만(아래)

‘집안을 갤러리처럼’이라는 개념 아래 ‘운보(雲甫) 김기창’ 화백의 작품을 ‘Z:IN 테라트’로 구현해 집안을 갤러리 같은 공간으로 꾸밀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인간본연의 순수한 세계와 자연을 원동력으로 삼았던 김기창 화백의 정신을 집안에서도 느낄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고풍스러움과 편안함 까지 선사한다.

운보 선생의 작품과 더불어 Z:IN(지:인)은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 ‘수화(樹話) 김환기’ 화백의 ‘영원한 것들’ ‘달 두개’ ‘아침의 메아리’ 등의 작품을 벽 타일로 재현해 냈다.

밝고 따뜻한 캔버스 화면에 암청색을 조화시켜 사물을 현대적모티브로 재해석한 김환기 화백의 작품들이 새롭게 벽 타일로 재탄생 해 보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따뜻한 한국적 정서를 전달한다.

그밖에도 Z:IN(지:인)은 패브릭 패턴 디자이너 ‘김선미’ 작가의 작품을 활용한 Z:IN 가구 ‘Zen Flower’를 출시했고, 기발한 작품활동으로 주목 받는 ‘정연두’ 작가에게 Z:IN 벽지를 작품소재로 지원, 이 벽지를 활용한 작품이 <2007-올해의 작가 정연두 전>이라는 전시회를 통해 소개가 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계속해서 ‘아트’는 일상생활 곳곳에서 예술작품의 경지에 오른 제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한 예술인들의 작품을 활용하고 있는 제품들도 눈에 띈다.

FnC코오롱의 스포츠브랜드 ‘헤드’는 보다 역동적이고 패셔너블한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신세대 윈도우 아티스트 ‘나난’과 함께 손을 잡았다.

나난은 빛과 시간, 계절과 장소 등을 넘나드는 매력을 지닌 창문을 캔버스로 작업을 하고 있는 한국 최초의 윈도우 페인팅 아티스트다.

헤드는 나난의 작품을 매장 윈도우에 페인팅 해 매장 전체를 감각 있는 갤러리처럼 만드는가 하면, 나난이 디자인한 기획티셔츠를 제작해 아트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한편 ‘행남자기’의 ‘디자이너스 컬렉션(Designers’ Collection)’은 포토그래퍼의 작품이다.

사진작가 ‘김중만’이 제작한 디자이너스 컬렉션은 김 작가의 사진전 ‘네이키드 소울’에서 전시된 꽃의 모티브를 생생한 색감으로 도자기에 옮겨 표현한 것이다.

이른바 ‘네이키드 소울(Naked Soul)’ 라인이라고 불리는 그의 컬렉션은 촬영 이미지를 생활자기에 접목해 ‘이종(異種) 디자인 이식작업’ 형태로 진행시켰다.

이는 생활자기로서의 실용성뿐만 아니라 디자인 소품으로서의 미적가치까지 더함으로써 생활자기에 예술적 감성을 담아내겠다는 행남자기의 취지를 담고 있다.

행남자기의 노희웅 대표는 이에 대해 “김중만 사진작가와의 새롭고 파격적인 결합을 통해 이제 식기는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즐거움과 함께 시각적인 즐거움도 전해줄 것이다”며 “앞으로 이 같은 예술가와 제품을 접목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아트제품의 열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아트제품이 계속해서 그 프리미엄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디자이너 확보가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외부의 유명 디자이너를 활용하는 것은 단기적인 효과 창출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비싼 로열티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며 “결국 내부 디자이너 육성에 초점을 두고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고 설명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