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에 새로운 해석 제공… 독자적 예술 장르로 지속 성장

진화가 눈부시다.

불과 한세기 전만해도 사진은 정통 미술의 범주에 들지 못하거나 변방에 머무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셔터 스피드만큼이나 빠르게 변모를 거듭해 오늘날 독자적인 예술장르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디지털시대의 발전과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는 사진이 미술의 중심 매체로 부상하는 단계를 넘어 현대미술을 리드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그러한 사진의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진이 미술 장르로서 진화해 온 자취와 배경, 그리고 앞으로의 위상에 대해 사진심리학자인 신수진 연세대 연구교수의 견해를 들었다.

신수진 교수는 연세대 심리학과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사진학회 학술출판 담당 이사이며, 저서로는 <사진, 읽기 혹은 보기>, <거울신화>, <마음의 정원>이 있다.

- 우선 사진심리학이란 학문이 궁금하다

“사진심리학이란 사진으로 매개되는 인간의 모든 사고와 정서를 연구하는 복합과학이다. 어떤 사진을 보았을 때 감상자가 경험하게 되는 생각이나 느낌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나는 주로 감성과학적인 연구방법으로 색이나 형태와 같은 사진의 시각적 구성요소들의 효과를 연구하고 있다”

- 다른 미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사진 역시 인간과 사회와 소통하면서 발전해 왔다. 사진심리학 관점에서 사진이현대미술에서 갖는 의미를 말한다면

“사진은 다른 시각 예술 장르에 비해 젊은 매체로 취급되어왔지만 그것은 회화와 비교했을 때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시각 매체의 역사를 살펴보면 회화가 유일한 장르였던 오랜 시간을 지나 19세기에 사진이 등장했고 그 이후로 빠른 속도로 영화와 멀티미디어가 자리를 잡았다. 현재 전체적인 매체 환경 속에서 사진의 위치는 이제 더 이상 젊은 매체가 아니다. 오히려 사진 이후에 매체들이 모두 카메라라는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사진을 가장 현대적인 시각적 소통의 출발점이라고 보는 시각이 옳다. 사진은 이미 20 세기 전반에 걸쳐 현대미술의 개념을 바꾸어 놓은 획기적인 매체이며, 현대인의 일상적 소통에 있어서 필수적인 도구이다. 사진은 현대미술에서 자체 가치를 갖지만 다른 장르의 존재와 가치를 알리는 거의 유일한 매개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 일부에선 사진의 ‘복제성’을 이유로 미술적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사진의 복제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견해라고 본다. 흔히 사진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장의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낮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오히려 복제성은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보였다. 신문에 실리는 사진이나 광고 이미지처럼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정보를 얻거나 정서적 감흥을 받게 되는 모든 사진의 힘은 복제성에서 나온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고 해도 복제가 불가능하다면 만인의 언어가 될 수 없다. 제 아무리 거장의 그림이라 해도 사진적인 방법으로 복제되고 인쇄된 이미지가 없다면 우리가 그 가치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 현대미술에서 예술장르로서의 사진이 차지하는 위상은

“예술로서의 사진에 대한 고민은 유럽을 중심으로 이미 19 세기에 종결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예술의 장르로서 사진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한 시점은 대체로 1980년대 이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대 미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어놓는 주관적 시선’이 되면서, 사진의 보는 방식이 존중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지난 십여년 간 국제예술품시장에서 사진 작품의 거래 비중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임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예술적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다”

- 사진이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잡게 된 배경과 이후 폭발적인 증가추세를 보이는 원인을 꼽는다면

“우선은 감수성의 변화를 꼽아야 할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지닌 예술적 가치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 매체의 고유한 형식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사진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감상자들의 감수성이 사진 고유의 특성들을 아름답다고 여기도록 변화한 것이다. 특히 디지털 매체 환경이 일반화되면서 누구나 사진과 관련된 정보의 생산자가 되었다는 점은 사진이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높인 중요한 계기가 됐다. 과거에는 소수의 사람들의 기술이었던 것이 만인의 기술이 되면서 좀더 정교한 이야기와 가치의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완성도 높은 사진 작품에 대한 선호도 높아졌다고 본다”

- 현대미술에서 앞으로 사진의 위상을 전망한다면

“당분간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이다. 일단은 인터액티브 미디어 아트의 공세가 생각보다 거세지 않고, 사진은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애호가층의 저변 확대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의 수공적 완성도는 희소성을 가지게 될 것이므로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생각되며 인접 장르와의 융합도 중요한 흐름이 될 것이다”

-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한국 사진(예술)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개선 내지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문화 예술 분야에서 국제적 위상은 하루 아침에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 이지만 오랜 역사적 배경만큼 든든한 자원도 없다.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교육되어야 한다. 예술적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가 있다면 약간의 불편함이나 비용을 감수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작가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지니려면 예술활동에만 전념할 수가 없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직접 작품을 싸들고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화랑 문을 두드리는 한국의 작가들이 많다. 문화 선진국에선 흔한 풍경은 아니다. 한 사람의 작가가 개별적으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려니와 당연히 작업에 몰두하기도 쉽지 않으니 여러모로 손해이다. 미술관이나 화랑, 콜렉터, 기업 등 모든 주체들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해서 작가는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 사진 관련 학회나 행사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데 향후 계획이 있다면

“사진과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면에서 창조적인 인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만큼 학문적 신념을 공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관계들을 소중하게 만들어 나가고 싶다. 한국사진학회의 학술출판담당 이사를 올해로 9년째 맡고 있는데 이제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서 젊은 후배들이 더 넓은 장에서 주역으로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도 가까운 미래에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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