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바젤·프랑스 피악·미국 시카고 역사와 전통에 독자적 경쟁력 갖춰

연간 100여 회에 걸쳐 세계 곳곳에서는 국경을 뛰어넘는 전세계의 미술축제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아트페어가 개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그 규모와 인지도, 영향력을 인정 받는 페어는 열 개가 채 안 된다. 게다가 이마저도 예술 분야 전반에서의 강세를 대변하듯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 편중돼 있다.

최근 들어 경제 성장을 이루고 미술 시장의 기반을 형성한 아시아권이나 중동권 국가들이 점차 아트페어의 새로운 장을 형성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속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일종의 시장과 같이 자금 유통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아트페어의 특성 상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미술 시장의 불황은 영원할 줄만 알았던 메이저급 아트페어들의 위상에도 위기의식을 가져왔다. 이에 따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키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원조격 아트페어들도 계속해서 나름대로의 특색과 형태를 갖추고 미술 시장에서의 독자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자리를 잡아가는 신생 아트페어들의 향후 방향을 제시해 주는 본보기로서의 역할에도 충실이다.

3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위스의 ‘아트 바젤(Art Basel)’

. 금융자유지대로 일컬어지는 스위스의 특성 또한 바젤 아트페어를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아트페어로 이끄는데 한 몫을 했다. 게다가 아트페어와 더불어 인접 지역인 베니스에서 비엔날레가 열리는 해에는 유럽 전역이 떠들썩할 정도다.

본래 바젤 아트페어는 여러 개의 다양한 행사로 이루어져 있다.

300여 개의 화랑이 참여하는 갤러리 프로그램과 대형 프로젝트로 구성되는 전시 형식의 ‘아트 언리미티드(Art Unlimited)’, 아트페어가 열리는 메세플라츠 광장에 대형 옥외 조각품을 설치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Public Art Project)’, 마지막으로 기존의 아트페어 형식과 달리 하나의 화랑이 한 명의 작가만을 홍보하는 ‘아트 스테이트먼트(Art Statements)’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이와 더불어 필름 프로그램, 작가, 큐레이터와의 대담, 특별 강연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페어 기간 동안 진행된다.

한국 작가 ‘양혜규’ 역시 지난해 아트 스테이트먼트의 개인전을 통해 바젤 아트페어에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렸다.

한편 다른 대형 아트페어와 마찬가지로 바젤 아트페어 기간에도 여러 개의 중소 아트페어가 열린다.

리스테(Liste), 볼타쇼(Volta Show), 스코프바젤(Scope Basel), 솔로프로젝트(Solo Project) 등이 그것이다. 이들 아트페어에는 주로 중소 규모의 화랑들이 참여해 비교적 젊고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한 작가들을 홍보하고 그들의 작품을 판매한다.

한국에서는 ‘원앤제이갤러리’가 스코프바젤에 참여해 권경한, 김수영, 박진아 등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한 바 있다.

특히 바젤 아트페어는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근대미술까지를 포괄하는 폭 넓은 작품을 다루는 것이 특색인데 20세기는 물론 21세기 유럽과 미주대륙, 아시아, 호주로부터 온 최고의 갤러리들을 비롯해 미술 애호가와 아티스트, 미술계 관계자들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매년 6월이면 베일을 벗는 바젤 아트페어는 올해엔 특별히 유럽축구연맹에서 개최하는 UEFA 챔피언스 리그와 함께 문을 열어 그 열기를 더했다.

스위스 바젤에 이어 전 세계 예술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피악(FIAC, Foreign Investment Advisory Council)’ 1974년 낡은 바스티유 기차역에서 80여 명의 갤러리와 딜러들이 모여 행사를 기획한 것이 시초가 됐다.

현재 피악은 110여 개의 갤러리가 참여하고, 1천 여명이 넘는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전시하는 대규모의 역량 있는 아트페어로 거듭났다.

1999년 피악에는 5일 동안 8만 여명의 관람객이 방문했고, 바스티유 역사에서의 마지막 행사였던 2000년 26회째를 맞은 피악은 새로운 전시장 그랑 빨레(Grand Palais)에서 진행됐다. 파리 퐁피두 센터가 설립된 이후부터는 피악이 급변하는 문화흐름의 핵심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피악은 활발한 작품 판매 보다는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람객들의 행렬로 더욱 유명하다. 2000년 이후부터는 개인전 형식을 도입해 다른 국제 아트페어와 차별성을 시도했고, 전 세계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며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열린 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해 33회를 맞은 피악 행사는 파리 뿐만 아니라 뉴욕, 베니스, 브뤼셀, 런던 등 세계 주요도시의 내로라 하는 갤러리 230여 곳에서 100명 이상 되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고, 7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유치했다.

파리 피악의 경우는 참가국들이 주로 유럽국가에 치중되는 경향이 있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게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듯 해마다 10월이면 열리는 피악은 오는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프랑스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서른 네 번째 행사를 진행한다.

‘아트 바젤’이나 ‘피악’처럼 역사가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명성만큼은 이들 못 지 않은 아트페어가 있다.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마지막 주자인 미국 시카고의 ‘시카고 아트페어(Chicago Art Fair)’.

시카고 아트페어는 올해로 16회를 맞는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조직력과 홍보, 미국의 경기 호황에 힘입어 대표적인 아트페어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현역 작가들을 주로 소개하는 시카고 아트페어는 지난해 4월 15회를 맞아 시카고의 머천다이즈 마트에서 페어를 개최했다. 이는 시카고 아트페어의 주최가 머천다이즈 마트 프로퍼티사로 넘어감에 따라 새롭게 변화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행보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약 125개의 갤러리들이 참여한 제15회 시카고 아트페어에는 뉴욕에서 온 38곳 갤러리들과 19개의 시카고 갤러리들,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참여한 33개의 갤러리들이 함께 모여 성대한 미술 축제의 장을 펼쳐보였다.

한국에서는 ‘갤러리 아트사이드’, ‘박영덕 갤러리’, ‘두루아트 스페이스’, ‘금산갤러리’, ‘표갤러리’ 등이 지난해 시카고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시카고 아트페어도 마찬가지로 본 행사와 더불어 세니마와 중소규모의 아트페어, 공연, 특별행사 등이 수반된다.

100명의 신생 갤러리 작가들에 초점을 맞춘 브리지아트페어와 민속미술을 조명하는 이누이트 민속쇼, 아웃사이더 아트페어가 시카고 아트페어와 함께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고, 특히 지난해 시카고 아트페어에서 동시에 선을 보인 국제앤티크페어는 굉장한 호응을 받기도 했다.

그밖에 튼튼한 컬렉터 집단을 자랑하며 41년이라는 정통성을 강조하는 독일의 ‘쾰른 아트페어(Art Cologne)’·,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술 축제이자 250여 곳 이상의 갤러리들이 참가하는 ‘아르코 아트페어(Feria International de Arte Contemporaneo)’

, 설치미술, 비디오아트, 뉴미디어, 판화 등 현대미술의 전 분야와 회화, 조각과 같은 전통미술 장르를 아우르며 세계 미술계의 흐름을 한 눈에 보여주는 아트페어로 유명하다.

■ 한국 최대 미술전람회 KIAF


한국국제아트페어(이하 KIAF)는 해마다 열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국제 미술 전람회다.

동시대 세계 미술의 정점을 보여주고 미술 시장의 활성화와 미술의 대중화에 이바지한다는 취지로 2002년 첫 선을 보였다.

국내외 100여 개 이상의 화랑들이 KIAF에 참여해 다양한 작품들과 작가들을 소개한다.

특히 KIAF를 통해 국내 작가들은 국제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얻는 셈이다. 더불어 전 세계 화랑들 간의 활발한 교류는 국내 화랑가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한국 미술 시장의 잠재력과 우수성을 발견해 국내 미술계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역할까지도 수행한다.

2002년 부산전시컨벤션센터(BEXCO)에서 열린 제1회 아트페어를 필두로 2003년 서울 한국종합전시관(COEX)에서 열린 2회 페어에는 독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캐나다, 일본, 중국, 타이완 등 해외 화랑 30여 곳과 국내 75개 화랑에서 400여명의 작가들을 소개하며,회화 조각, 영상, 설치미술, 판화, 드로잉, 사진 작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3,000여 점 이상을 선보였다.

계속해서 지난해 다섯번째 KIAF는 국내 미술 시장의 유례없는 호황과 맞물려 그 규모면에서 최대를 이루었고, 국제적인 행사로서 KIAF 이미지 제고에 크게 이바지했다.

반면 확대된 규모에 비해 내용면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는 지적을 받은 2006 KIAF는 그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세계적인 한국 작가를 양성하고 지원하는데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에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오광수 미술평론가는 “국내 미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금까지의 미술 정책을 되돌아보고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해외 교류전을 물론이고 해외에서의 한국전이나 한국 작가의 전시 유치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세계적인 한국 작가의 수를 늘림으로써 한국 미술이 당당히 국제적인 반열에 들어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KIAF만의 차별성과 독립성을 갖추고 한국식 국제 행사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한국을 세계적인 미술 강국으로 만드는 방법이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오는 9월 21일에 여섯번째 막을 올리는 2008 KIAF에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기대가 쏠리고 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