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화·유화 중심 현대미술 양대축… 미국·영국 이어 세계 3위 경매시장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엇갈린다. 그렇다면 중국의 미술시장은 어떨까? 최근 중국 경제의 불안감이 과연 미술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술시장은 자본의 흐름

과 아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 경기변화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본가 개인의 감성적인 기호나 시대적 트렌드라는 변수가 작용한다는 점에서 정확한 예측은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중국 경제 전반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현대미술 시장규모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북경이 뉴욕과 런던에 이어 세계 3대 미술시장이란 말은 이미 당연시 된 옛말이다.

중국 본토의 경매기록만으로도 런던과 뉴욕, 홍콩을 추월하여 독자적인 시장의 규모가 형성되어 있다. 북경은 물론 상하이, 홍콩 등의 활약은 침체된 국제 미술시장의 새로운 원동력이란 말까지 나돌 정도. 요즘 유행하는 시쳇말로 ‘안 가봤으면 말을 말고’라는 비유처럼 중국의 무서운 변화는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

솔직히 바로 옆에서 보고 있어도 종잡을 수 없는 급변화에 정신없을 정도다. 어떤 이는 최근 한 달에 한 번 꼴로 예술특구를 방문하지만 갈 때마다 길을 잃을 정도라고 너스레다.

그렇다면 중국 미술시장의 규모나 거래량은 얼마나 될까? 정확히 말하자면 수치화된 통계가 시장의 변화속도를 못 쫓아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록이 경신된다. 이런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2006년 2월 초 중국 문화보(文化報)는 예술품 컬렉터들을 약 7,000만명 이상으로 발표했다.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사와 컨설팅 회사 캡제미니가 공동으로 조사한 ‘세계 부유 보고서’(World Wealth Report)에 따르면, 중국의 백만장자는 2006년 대비 2007년에 41만5,000명으로 20.3% 증가했다.

참고로 2005년엔 32만명, 2006년엔 34만5,000명이었다. 중국은 이미 백만장자의 증가수치가 가장 높은 나라로써,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다섯 번째로 백만장자가 많다. 그렇다보니 평생 돈 걱정 없이 사는 인구가 서울인구 몇 배라는 말도 있다.

중국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경매다. 1997년 경매법이 발표된 이후 전국적으로 경매사 설립 붐이 확산됐다. 현재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예술품 경매회사만 200개가 넘고, 연간 1000회가 넘는 메인 경매가 열리고 있으며, 2007년도 경매 낙찰액은 한화로 3조원에 육박할 정도라고 한다.

급성장에 따른 거품론이 나오면서 다소 주춤한 면도 없진 않지만 중국의 자국 내 경매시장이 미국, 영국에 이어 부동의 세계 3위 규모라는 점은 이견이 없다.

이러한 중국의 경매시장을 이끌고 있는 6대 경매사로 중국지아더(中國嘉德), 종마오청지아(中貿聖佳), 베이징한하이(北京翰海), 베이징롱바오(北京榮寶), 베이징바오리(北京保利), 항저우시링(抗州西冷) 등이 꼽힌다. 또한 이들 주요 경매를 통해 거래되는 물량만도 2만 여점을 훌쩍 넘기고 있다.

위에민쥔 <자유로운 놀이> 2004

최근엔 가히 폭발적으로 팽창중인 시장관련 소식만을 전하는 매체까지 다량 출간되고 있다. 불과 몇 달 만에 창간되고 폐간된 잡지들이 수십 종에 이를 정도고, 북경 시내의 예술특구엔 전 세계 주요 미술지의 집합소를 방불케 한다.

중국 내에서 최고의 맹위를 떨친다는 월간 <동방예술재경(東方藝術財經)>를 비롯해, 중앙미술대학에서 발행되는 격주간지 <예술재경(藝術財經)>의 경우 발행부수가 50만부를 넘을 정도다. 또한 중국 전역은 물론 같은 중화권인 홍콩, 대만, 싱카포르 등과 유럽과 미국, 아시아 등지에 동시 배포되는 책자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더불어 1차 미술시장인 갤러리는 중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예술특구를 중심으로 포진되어 있다.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798따산즈를 시작으로 지우창, 허거정, 관음당, 쏭장, 환티에, 차오창디 등 그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곳에 산재한 갤러리 수는 어림잡아 최소 500여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며, 작가 스튜디오 형식의 전시공간까지 포함한다면 그 이상일 것이다. 결국 경매를 통한 거래와 일반 화랑의 유통사례를 합친 시장규모는 기본 10조 원이 넘는다는 추정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지금의 중국 미술시장을 이끄는 주역은 크게 두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은 전통적으로 강세를 띠고 있는 고서화와 고미술품 그리고 수묵 중심의 중국화(中國畵)이다. 중국은 워낙 전통미술 시장이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유통 시스템 역시 안정적이다. 자국 내에서 이뤄지는 예술품 경매의 상당부분을 전통미술품이 차지하고 있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나머지 한 경우는 소위 말하는 유화중심의 현대미술 열풍이다. 문화대혁명과 천안문 사태 이후 형성된 새로운 현대미술 시류는 중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문화대국의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중국인의 중화사상과 맞물려 걷잡을 수 없이 세를 키우고 있다.

이들의 강력한 의지는 이번 북경올림픽을 통해서도 충분히 시사되었다.

국제 미술시장에서 가장 투자 메리트가 높은 작가로 역시 중국 현대미술가들이 일순위로 꼽힌다. 일부 신진 유망작가의 경우 3~4년간 최소 10배에서 최대 100배까지 오른 예도 있다. 하지만 이런 블루칩 작가를 일반 투자가들이 선별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만큼 위험요소 또한 높다. 그래서 중국의 현대미술을 보긴 좋아도 취하긴 힘들다하여 ‘활짝 핀 선인장 꽃’으로 비유된다.

지난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중국의 현대미술가 쩡판지의 1996년 <가면> 시리즈 작품이 무려 한화 100억 원이 넘게 낙찰된 바 있다. 이날 처음 아시아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을 통해 444억원 넘는 매출고를 올렸는데, 톱10 작품 중 9점이 중국 작품이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경매시장에서 비싸게 낙찰된 현대 미술작가 100명 중 36명이 중국 작가였다. 어떤 이는 영국을 대표하는 데미언 허스트의 170억원과 루치안 프로이드의 330억원, 미국의 제프 쿤스가 기록한 230억원 등의 최고가 기록을 비유하며 중국작가의 시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사는 적지 않다.

장샤오강, 웨민준, 쩡판즈 등 중장년층의 작가들은 이미 세계적 스타반열에 올랐으며, 지난 5월 중국 베이징 자더 경매에서 40대 생존 작가로서 중국 내 현대미술 유화 경매 사상 최고가인 81억원을 기록한 류샤오둥도 뒤따르고 있다. 세계 미술시장의 동향과 주요작가의 작품가격 변동을 집계해 발표하는 프랑스 아트프라이스닷컴(artprice.com) 역시 중국작가들을 주시하고 있다.

주로 이름이 거론되는 작가들은 위의 작가들을 비롯해 팡리준, 왕광위, 양샤오빈, 주던췬, 저우춘야, 차이구어치앙, 천단칭, 쉬삥, 친상이, 아이쉬엔, 천이페이, 왕이동 등 여럿이다. 참고로 인터넷 사이트 아트론(artron.net)의 경우 이들 이외에도 중국의 많은 작가들에 대한 정보를 누구나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실시간 중계해주고 있다.

중국은 미술시장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국제적으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시장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다가왔다. 국제 미술시장은 빠른 속도로 보편화되고 있다. 그 중심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장이 펼쳐지고 있으며, 한국 역시 큰 회전축에 걸쳐 있다. 중심축을 같이 잡는가 아니면 변방으로 치우치는가는 하기 나름이다. 지금이야말로 중국 미술시장의 흐름과 변화의 속성을 정확히 읽어낼 시기가 아닐까.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미술평론가 kami20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