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시장 촉진 순기능 시장 왜곡 역기능… 건강한 경쟁 확보 관건

북경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개막식에서의 화려한 장면들은 세계인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수많은 인원이 동원된 규모의 미학은 중국이라는 물리적 크기를 유감없이 느끼게 해 주었으며, 노랗고 빨간 색을 기조로 한 현란한 색채 연출은 중국 특유의 색채 심미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새 둥지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북경 올림픽 주경기장의 밤하늘을 밝힌 화려한 불꽃놀이는 분명 볼만한 장관이었지만, 동시에 알지 못 할 일말의 불안감, 혹은 두려움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 두려움, 혹은 불안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오늘의 중국은 과거 병든 종이호랑이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경 70조원을 쏟아 부어 올림픽을 유치한 중국인들이 꿈꾸는 것이 단순히 성공한 올림픽이었을까? 그것은 거대한 자본의 퍼포먼스를 통해 역사 속에 잠들어 있던 중화민족의 영혼을 일깨우려는 각성의 북소리는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그들이기에 북경 올림픽주경기장을 물들인 황금빛의 노란색과 선홍빛 붉은색의 물결은 마치 한(漢), 당(唐)으로 이어지는 중국문화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녕 정치, 경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문화에 있어서도 한 없는 자국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세계 문화무대의 전면에 나서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경기장을 가득 매운 노랗고 붉은 색감으로 표출된 것이다.

유교문화권, 혹은 한자문화권으로 구분되는 동북아에 속한 우리나라는 중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할 것이다.

과거 역사적으로도 그러하거니와 이념과 사상이 경제라는 실용적 가치 앞에 이미 폐기처분된 오늘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제 중국은 세계의 자본을 끌어 들이는 강력한 자장이자 세계경제를 견인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고 있다. 미술에 있어서의 중국의 영향 역시 날로 배가되며 그 대상과 내용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문화는 마치 물과 같은 것이어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또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속성이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최근 우리미술에 일고 있는 중국미술 바람은 작금의 세태, 그리고 중국미술이 지니고 있는 본질을 통해 볼 때 몇 가지 현상들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와 인식이 필요한 때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미술시장의 열기는 대단히 뜨거운 것이다. 연일 신기록을 세우며 낙찰가를 경신하였던 경매시장의 열기가 그러할 뿐 아니라 전시장마다 매진 열풍역시 전에 없던 것이었다.

소더비의 미술품 경매에서 중국 미술품은 세계적인 선호와 함께 고가에 팔리고 있다.

적어도 요즘만큼 우리 국민들이 미술품에 관심을 가진 경우는 없지 않았나 싶다. 이는 미술품이 부동산이나 증권에 버금가는 투자대상으로 인식되면서 시중의 자금이 몰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당연히 미술품이 돈이 된다는 단순한 논리가 작용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미술품 열풍은 경매시장에서 비롯되었다. 그중에서도 중국의 끝자락에 있는 홍콩의 경매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달아오르더니 급기야 국내시장에 전면적으로 옮겨 붙는 양상을 보였다.

그간 국내시장에서 별반 관심을 끌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홍콩 크리스티에 출품되면서 전원 매진된 것은 기억할만한 사건임에 분명하였다. 더욱이 이들 작품들의 낙찰 가격은 국내시장의 중견작가들의 그것을 훌쩍 뛰어 넘는 것이었다.

이들은 일약 스타작가로 떠오르며 한국의 미술시장을 주도하였고, 이들의 작품가격이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임에 따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동반상승의 양태를 보이게 되었다. 이후 연이은 크리스티 출품 때마다 매진에 가격 폭등의 초강세 장세가 지속되면서 국내 미술시장은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크리스티에서의 선전은 우리미술 자체의 역량과 평가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무엇보다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중국미술 열풍이다. 개혁, 개방에 따른 성과가 점차 가시화되며 경제적인 성장을 거듭하던 중국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이었다.

특히 화교들을 중심으로 한 중국투자 열풍은 부동산을 비롯해 증권에까지 미처 전에 없던 호황의 장세를 연출하였다. 이에 서구의 관심이 모아짐에 따라 중국미술은 단연 세계미술의 총아로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미술의 호황은 분명 이러한 중국미술 열풍에 편승한 부분이 없지 않다.

중국미술이 각광을 받게 되자 화랑계가 바빠졌다. 앞 다투어 중국작가들의 작품을 취급하더니 급기야는 중국에 분점을 내고, 급기야는 주력 사업체를 아예 중국으로 옮기는 사태에 까지 이르렀다.

연일 중국미술에 대한 기사와 보도가 이어지더니 서울 인사동에서도 중국작가들의 작품전을 심심치 않게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미술은 오늘의 세태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작가들의 중국에 대한 관심도 날로 증가하여 이제는 우리미술에 직접적인 영향으로 까지 작용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현재에도 수많은 작가들이 중국에서의 전시를 계획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은 기회만 있다면 중국에서의 전시를 꿈꾸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중국미술은 아주 가깝고 극히 현실적인 문제로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르러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먼저 오늘의 미술시장의 편향된 시장이다. 물론 오늘의 중국미술이 대단한 붐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이러한 붐에 편승하여 우리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게 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은 결코 건강한 것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화, 국제화는 이미 대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미술의 출구가 오로지 중국이라는 단일 창구로 제한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불어 그것이 수입만 있고 수출은 없는 일방적인 것이었을 때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이익을 추구하는 화랑의 경우 돈이 되는 중국미술을 취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를 통해 왜곡될 수 있는 시장의 동향과 다양성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지 시장의 다변화라는 상투적인 해석 이외에도 우리미술의 건강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고민하여야 할 문제라 여겨진다.

현재 적잖은 이들이 중국 유학을 하고 있거나 마치고 돌아와 교육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이들은 중국의 제도권 미술을 본격적으로 수학한 첫 번째 세대에 해당한다. 중국미술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문화적 우월감에 더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여타 미술과는 다른 발전 과정을 겪었었다. 엄격히 말하자면 오늘날 세계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중국의 이른바 비 제도권에서 생산된 사회비판적이고 정치 냉소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김상철 미술평론가 ksx@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