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는 콘텐츠 전문화·저자양성등노력, 개인은 독서 생활화

출판 불황이 심각하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가계의 가처분소득 감소로 인해 생활필수품이 아닌 책의 판매량이 격감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출판사들이 감원과 비정규직 전환 등으로 감량경영에 나서고 발행 종수를 줄이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 출판시장 성장동력 구축이 관건

그런데 오늘의 출판 불황은 단지 경기 침체의 여파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즉 경기순환에서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디지털화, 글로벌화, 그리고 다매체 다채널 기반의 영상사회화, 활자매체의 퇴조 등과 같은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에 출판 관련 기업들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구조불황’이 더욱 심화될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첫째, 출판사의 특성화된 콘텐츠 전문화가 필수적이다. 불황 속에서도 특정 분야의 책을 펴내는 출판사들은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건재한 모습을 보이는 점이 시사적이다.

특화된 분야의 지식·정보·교양·오락 콘텐츠를 종이책과 디지털출판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 형태와 상품화로 연결시키는 전문 콘텐츠 생산력이야말로 향후 출판시장 발전의 요체가 될 전망이다.

둘째, 저자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 출판은 신간 3권 중 1권, 팔리는 책 2권 중 1권꼴로 번역서일 만큼 외국 콘텐츠 의존도가 높다. 달리 말해 국산 콘텐츠의 경쟁력이 빈약하다.

거액의 로열티를 불사하며 외국 번역서를 펴내기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외수(해외) 시장 창출을 위해 세계적 수준의 국내 저자 양성에 투자할 때 그 과실과 가치사슬은 더욱 커질 것이고, 비로소 한국 출판은 ‘보따리 수입상’의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청소년 출판의 급성장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근년에 여럿 제정된 청소년문학상의 공이 크다.

셋째, 유통구조 경색을 극복해야 한다. 출판시장의 모세혈관인 전국의 중소서점들이 가격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 폐업하는 등 책 구매의 접근성과 마케팅 소구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다.

어쩌면 불황의 심화는 유통 측면에서 예고된 것이었다. 소수의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만으로 시장의 잠재수요를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일본은 도서시장 규모가 우리의 3배이지만 서점 총면적은 우리의 10배나 된다. 좌판조차 제대로 펴지 않고 손님이 없다고 하거나 국민의 독서율 탓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일상적으로 책을 접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서점 및 책 판매 공간을 대폭 확충하는 한편, 확고한 도서정가제 정립을 위한 법제 개선이 요구된다.

넷째, <출판문화산업진흥법> 명칭에 걸맞게 국가 차원에서 출판 진흥을 추동하는 법정기관이 설립되어야 한다. 중소형 업체들의 과당경쟁 체제인 우리 출판산업이 지식기반 정보사회에서 중추적인 문화콘텐츠 업종으로 발전하려면 종합적인 지원기구가 긴요하다. 상업성이 높은 게임이나 영화산업에도 법정기구가 있는 반면 문화와 지식 콘텐츠의 저수지인 출판 분야에는 구시대적인 심의기관만 존재하는 현실이다.

다섯째, 우리 출판의 해외 진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프랑스는 출판시장의 약 40퍼센트가 외수인데, 단지 프랑스어의 국제적 영향력이나 콘텐츠 경쟁력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성과이다.

프랑스 문화와 출판물을 국제무대에서 폭넓게 홍보하고 체계적으로 수출을 지원하는 프랑스출판국제사무소(BIEF) 같은 곳이 주목되는 이유이다. 근래 우리 정부도 출판수출 활성화를 위한 각종 정책을 펴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글로벌 출판시장의 흐름을 꿰뚫고 양질의 콘텐츠, 고급 번역, 해외 네트워크의 3박자를 갖춰야 한다. 중국이나 동남아 각국에서 급증하는 한국 책의 번역출판 수요를 볼 때 외수시장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 '독서권' 보장하는 삶의 질 높은 사회 만들어야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독서실태 조사> 연차 통계를 보면 우리 국민들이 책을 많이 읽지 못하는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이 ‘바빠서’이다. 학생들은 공부 때문에, 성인들은 일 때문에 바빠서 책을 읽지 못 한다고 ‘핑계’를 댄다.

그것이 핑계인 이유는, 바쁘다는 와중에도 텔레비전 시청이나 인터넷 이용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고 주5일 근무 등으로 여가시간이 늘었음에도 책 읽는 시간은 10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쇠는 독서 생활화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런데 독서습관은 대부분 독서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맹모삼천지교라 했던가. ‘아침 10분 독서’ 시간이 있거나 도서관 시설이 좋고 사서교사까지 둔 학교의 학생들, 그리고 ‘독서경영’을 하는 기업의 사원들은 평균치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읽는다. 당연한 결과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이 주관하는 영유아 대상의 ‘북스타트’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지역의 아기들은 자연스럽게 책 읽는 아이, 생애의 독자로 자란다.

독서습관의 힘은 대단하다. 하루 30분이면 1년에 웬만한 책 30권을 읽을 수 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도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거나 일정 시간을 할애하기에 가능하다.

이때 개인적인 타성을 극복하려면 독서모임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생활 거점이나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읽고 토론하는 ‘함께하는 독서’로 각종 취미 모임 못지않은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공공도서관들이 이러한 독서모임을 후원한다.

독서가 개인의 기호나 취미로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다. 끊임없이 지적 재충전이 필요한 평생학습사회를 맞아, 이제 국민 누구에게나 생존권적 기본권 차원에서 독서권(책 읽을 권리)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법리를 담아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것이 <독서문화진흥법>이고, 올해 6월 정부는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까지 발표했다.

부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와 직장, 군부대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이 책과 관련된 편리한 시설(공공도서관), 좋은 책, 독서시간을 향유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바빠도 책을 읽는’ 이들이 많아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일상의 풍경에서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꿈과 희망이 있는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