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신수정·이경숙 성악가 박수길 밀고 사물놀이 김덕수 명창 안숙선 끌고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이 영입 된 이후 서울시향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서울시가 문화행사를 접하기 어려운 소외 지역의 주민과 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펼친 ‘찾아가는 음악회’는 총 40회 공연 내내 공간이 미어터질 듯이 관객들로 가득 차서 연일 화제가 됐고 초대권 관객으로 가득 채워지던 정기연주회는 한해 33억이 넘는 수익을 거둬들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서울시향의 공연은 ‘기존의 서울시향의 소리가 아니’라는 찬사를 받으며 이전보다 눈부시게 발전한 실력을 자랑했다.

리더로서의 정명훈의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로, 과거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다면 현재 그는 클래식계의 거인이자 리더로서 국내 클래식 역사에 또 하나의 커다란 획을 긋고 있다. 피아노를 전공한 정명훈은 1974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준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후 지휘자로 전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시작해 8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데뷔하며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감독 재직 당시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 드뇌르’ 훈장을 수상한 그다.

97년에는 아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며 2000년부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 2001년부터 도쿄필하모닉의 특별 예술고문의 역할을 동시에 해오고 있다.

정명훈과 더불어 국내 클래식계를 이끌어 가는 이들은 주로 60대에서 70대에 포진 되어있다. 피아니스트 신수정과 이경숙, 바이올리니스트 김민과 김남윤, 성악가 박수길 등이 꼽힌다. 더불어 우리 음악인 국악계에서는 가야금 명인 황병기, 사물놀이패 김덕수, 명창 안숙선, 작곡가 백대웅이 대표적 인물이다.

각각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신수정과 이경숙은 40년 가까이 연주자이자 교육자로 국내 피아노 음악계를 끌어왔다.

서울대, 빈국립음대, 피바디 대학 등에서 수학한 그녀는 2005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서울대 음대 학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현재 그녀는 국제 클래식음악제인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국내 클래식 전공생들이 해외 유명 앙상블과 연주자와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한편 이경숙은 커티스 음악원 졸업후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를 무대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1988년 국내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 32곡을 완주한 것으로도 유명한 그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음악원장을 역임, 연세대 음악대 학장과 예술의 전당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지연, 백주영, 이유라 등 차세대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사사하며 바이올린의 대모로 불리는 김남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문화예술계에 공헌한 이들에게 수상하는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올해 수상했다.

후학양성과 더불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등의 심사위원으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김남윤과 더불어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은 다양한 음악적 활동으로 잘 알려있다.

3- 피아니스트 신수정
4-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5- 가야금 명인 황병기

KBS 교향악단 단원을 시작으로 서울시향, 국립교향악단, 독일 NDR 방송교향악단, 현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서 초청단원과 악장으로 40여년 넘는 연주인생을 살아왔다.

이후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하며 실내악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 27년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작하며 서울대 최초로 연속 3선 음대학장으로 선출되기도 하는 등 연주자와 교육자의 인생을 병행해가고 있다.

현재 한양대 음대 명예교수 바리톤 박수길은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한국슈베르트 협회회장, 한국 바그너협회 이사 등을 두루 거친 성악계 인사다. 한국오페라 60주년을 맞아 발족된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공동대표를 맡아 공연사업을 추진했던 그는 예울음악무대를 통해 소극장 오페라를 활성화와 성악도들을 위한 음악캠프를 매년 여름 개최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국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야금 명인 황병기.그의 작품을 모르고 국악을 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국악계에서 그의 의미는 각별하다.

2000년대 초반 황병기의 곡 ‘미궁’을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괴소문 덕에 그의 작품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확대되기도 했다. 현재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예술감독으로 있는 그는 서울남산국악당에서 ‘황병기 명인의 창작이야기’라는 타이틀로 그의 음악세계를 들여 다 보는 기획을 9월과 10월 두 달간 진행하며 대중에 한층 가까이 다가갔다.

사물놀이패 한울림의 대표인 김덕수는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일생을 바쳤다. 1978년 ‘김덕수 사물놀이패’ 창단 이후 공연만 7천 여 회, 그 중 절반은 해외에서 전세계인과 신명 나는 가락을 선보였다.

사물놀이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93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참여, 95년 창단된 ‘한울림예술단’을 통해 클래식, 무용, 재즈, 월드뮤직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는 실험적인 예술활동을 계속해왔다. 해외에서 그의 명성은, 김덕수가 지지한다면 미국에서 한국인 주지사도 배출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이다.

명창의 보통명사가 된 안숙선은 1986년 판소리 다섯 마당을 완창하며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판소리뿐 아니라 창극, 가야금 산조, 가야금 병창 등에도 재능이 출중한 그녀는 1997년 인간문화재가 되었는데,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로서다. 98년에는 세계인물연감에 기록되기도 한 그녀는 현재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로 국악계에 이바지 하고 있다.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교수 퇴임한 백대웅은 한국음악 작곡분야의 1세대이자 수많은 국악 이론서를 펴낸 인물이다. KBS PD, 중앙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한예종 전통예술원 초대 원장을 지냈다. 1990년대 말 독주 악기인 가야금의 음역대별 특성에 맞춰 파헬벨의 '캐논'을 편곡한 바 있는 국악과 서양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국악에 화성을 도입한 인물이다.



글 이인선 객원기자 sun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