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과 금리 피할 수 없는 정책대결… 시장 혼란은 금물

1990년대 후반, 일본 대장성 국제금융국장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현 와세다대학교 교수)였다.

그의 별명은 '미스터 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외환시장에서 엔화 환율이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 등 춤을 추었기에 외신 기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당시의 상황은 엔화가 연일 강세를 나타내어 일본정부로서는 환율정책에 애를 먹을 때였다.

환율이란 너무 오르거나 너무 내려도 바람직하지 않다.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사카키바라는 엔화 환율이 너무 오른다고 생각되면 즉각 시장에 경고를 보내었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일본 정부가 엔화환율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시장에 전달하여 환율이 안정되도록 애썼다.

특히 일본의 외환정책은 철저하게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고,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환율에 대한 모든 창구는 사카키바라 국제금융국장으로 일원화되었다. 그가 '미스터 엔'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그의 능력이 출중하였을 수도 있으나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 위치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의 양상은 좀 다르다. 환율과 금리가 정책 당국자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따라 크게 오르고 내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움직임에 일관성이 없다. 한국은행과 정부의 입장이 다르게 비쳐지고 있어서 환율과 금리가 하루가 다르게 등락을 반복하는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예컨대 달러/원 환율이 연일 상승세를 거듭하여 1,030원을 넘어서려던 지난 3월25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한 강연회에서 행한 "달러/원 환율이 이제 천정을 친 것으로 생각된다"는 발언이 외환시장에 알려지자 환율이 하루 동안 무려 20원 이상 추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자 즉각 기획재정부 최중경 차관이 "환율이 급격히 하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환율은 하루 만에 10원 이상 치솟았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정책당국자의 말 한마디에 따라 환율이 롤러코스터를 탄 셈.

사실 어느 나라이건 정부의 입장과 중앙은행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다.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지만, 정부의 입장으로는 아무래도 성장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러다보니 정부는 물가가 좀 희생되더라도 성장을 부추기고 싶은 반면, 중앙은행은 성장보다는 물가를 잡는 쪽에 정책의 초점을 맞춘다.

일본정부와 일본은행의 입장이 서로 다르고, 미국정부와 미 연방준비위원회의 생각이 같을 수 없다. 다만 속내는 서로 다를지라도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충돌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은행과 정부의 환율 혹은 금리에 대한 시각이 상반되는 것은 물론이고,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당국자들이 대놓고 자신의 견해만을 강조하고 나선다.

시장은 그로 인하여 급등락을 반복한다. 기획재정부로서야 당연히 환율이 오르기를 바란다.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경제 특성을 고려할 때 올해 경제성장률이 최소한 5% 이상 되려면 환율이 더 오르고, 수출이 더 늘어나야 한다.

특히 과거 직접적으로 외환정책을 담당한 경험이 있는 강만수 장관이나 혹은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정책으로 "최틀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최중경 차관이나 모두 환율에는 "왕년에 한 가락"하던 사람들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여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가고 싶을 터.

하지만 한국은행의 생각은 다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도 늘어나지만 반면 수입원가가 오르고, 해외부문 통화량도 늘어나므로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하여야 한다.

명동 은행회관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회동을 갖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국제 원유가는 배럴당 100 달러 부근에서 내려올 기색이 없고, 국제원자재 가격도 연일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의 고삐를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으로서도 성장의 필요성을 모르는 바 아닐 터이나, 물가가 급하다.

금리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행은 3월초에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정책금리인 기준금리를 5%로 유지하였다. 이에 따라 정책금리는 지난해 8월 4.75%에서 5%로 인상된 뒤 일곱 달 연속 동결됐다.

반면에 정부는 금리가 인하되지 않는 것이 불만스럽다. 경기에 활력을 불어 넣으려면 금리가 내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답답하기만 하다.

결국 강만수 장관은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 차가 2.75%포인트까지 벌어진 것은 과유불급"이라는 발언을 던졌다. 미국과의 금리차가 너무 많이 벌어져 있으니 지나친 상황이고, 그러기에 우리나라도 빨리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은행으로서도 미국이 금리를 인하한데다 추가적으로 또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미국 달러금리와 우리나라의 금리차이가 커지면 해외 핫머니가 빠르게 유입되었다가 빠져나가면서 시장에 혼란을 줄 우려가 있다는 사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원화 금리를 선뜻 내리지 못하는 것은 금리인하가 가져올 물가불안 우려 때문이다. 성장에 대한 확신도 없는 판국에 자칫 물가불안마저 나타난다면 이래저래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한국은행으로서야 일단은 물가안정에 주력하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참가자들도 정부와 한국은행간의 금리 혹은 환율을 둘러싼 줄다리기를 이해한다. 양쪽의 입장이 다르기에 갈등이 나타날 법 하다.

하지만 설령 충돌이 있더라도 과거 일본은행과 정부가 사카키바라 대장상 국제금융국장을 전면에 내세웠듯이 속으로만 삭히고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은 너무 정부 따로, 한국은행 따로 가는 양상이므로 시장만 혼란스럽다.

어차피 현재의 상황이라면 결국 시기가 문제이지 금리는 인하되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한국은행으로서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국면이다. 그건 다 안다.

또한 환율의 경우도 경상수지가 연속 적자를 나타내는 상황에서는 되도록 오름세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정부와 한국은행의 다툼이 너무 드러나는 통에 시장에 혼란을 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램이다.


김중근 메버릭 코리아 대표 jayk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