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추가하락 기대보다 분할매수·투자재원 확보에 관심 둬야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소설가 최인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개봉 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면서 흥행에도 성공했다.

평론가나 일부 영화 마니아들은 한국영화의 걸작으로 손꼽기도 한다. 암울한 유신 시대를 사는 평범한 젊은이들의 사랑과 좌절, 자유를 향한 갈구 등을 재치와 해학으로 그려낸 점이 후한 점수를 받은 것이다. 이 영화에서 ‘바보’는 일종의 패러독스적인 표현일 뿐, 흔히 말하는 덜 떨어진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주가 하락 덕분(?)에 요즘 재무설계 강의를 할 때마다 질문 공세가 밀려들고 있다. 질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 고점에서 거치식 펀드 투자를 했는데 손실 폭이 커져 고민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립식 투자를 계속해야 할지 중단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약 6개월 동안 미국 증시를 비롯한 글로벌 시장과 함께 우리 시장도 한 바탕 큰 홍역을 치렀고 아직도 치유는 계속되고 있다. 단기간에 워낙 빠른 속도의 조정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본디 시장은 언제나 등락을 겪게 되어 있다.

글로벌 시장의 철저한 동조화 현상으로 말미암아 분산투자를 통한 리스크 헤지 전략이나 단기 급락장에서의 분할매수 전술도 무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중장기 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에 근본적인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섣부른 판단이다.

물론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악재들은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냉정함을 잃어버리는 현상은 무척 안타깝다. 주가가 좋았던 시기에 위험성향에 개의치 않고 추격매수를 감행했던 투자자들의 과단성은 지금 시장에 대한 불신과 의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 펀드평가회사의 분석에 의하면 시장이 급등했던 2007년에는 상반기보다 3분기 고점을 전후로 상대적으로 많은 주식형 펀드 자금이 들어왔다고 한다

. 결과적으로 2007년 주식형 펀드의 연 수익률은 높았지만 그 수혜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일까? 바로 시장상황과 엇갈리는 투자행태 때문인데, 이 현상은 주가 급등락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최근의 조정이 우리 시장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라면 사태 파악이 좀 더 쉬웠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 ‘과민반응’ 현상으로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도 서브 프라임의 손실규모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하니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 미국 시장은 안정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신속하고도 실효적인 금리인하와 주요 금융기관들의 유기적인 협조체제 덕분이다.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다는 조심스러운 낙관론과 함께 금융주를 중심으로 투자심리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시장도 3월 중순을 단기 저점으로 반등을 시도하고 있다.

<그림1>은 다우지수와 코스피의 최근 6개월 일봉 그래프다. 상대적으로 코스피의 하락 폭이 컸다는 점 말고는 매우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최근의 반등이 전 고점을 돌파하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는지를 한 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중간의 붉은 색 실선이 그 기준임을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신중한 성향이라면 말이다.

기존의 투자자들 중 자금여력이 있는 경우라면 투자 예비재원을 다시 점검해보고 추가 투자를 통해 매입단가를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새롭게 투자를 시작하는 경우라면 추가하락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보다는 일부 분할 매수를 하고 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투자금액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점을 예상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닥을 확인하는 것이다. 어디가 바닥이냐 하는 것은 치열한 논쟁만큼이나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바닥을 고집하다가 결과적으로 더 높은 지수에 올라서야 투자를 시작하는 경우를 많이 보지 않았는가.

<표1>은 지금 투자를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한 시뮬레이션이다.

1,650포인트를 기준으로 단계적으로 5%씩 하락하다가 1,400포인트를 바닥으로 반등하는 경우를 가정해본 것이다. 바닥을 확인하는 시점에서는 추가 투입을 못 했지만 평균 매입단가를 낮춘 결과 약 1,550포인트 수준이 손익분기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수많은 투자이론 중 가장 큰 설득력을 가진 것이 바로 ‘역투자 전략’이다. 시장 상황과 반대되는 투자를 강조하는 전략으로 주가가 좋지 않을 때 투자를 늘려가고 주가가 좋을 때 비중을 축소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위험관리와 수익률 제고를 위해 가장 무난한 방법이라는 것이 골자다. 적립식 펀드는 이 전략을 활용한 것에 불과하다.

지난 28년 동안 우리는 지수 200도 봤고 2,000도 경험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언제가 투자 적기였고 어느 시점이 수익 실현의 타이밍이었는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주가 상승기에는 더 높은 수익률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락기에는 커져 가는 두려움으로 인해 기회를 놓쳐버리는 악순환의 반복이 최근 6개월 동안 여실히 드러났다.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마라’는 투자격언이 있다. 조정장에서는 반등을 확인한 이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인데, 다만 전문가들이 투자를 권유하는 시점은 이미 상당 수준까지 반등한 이후라는 점을 기억하자.

떨어지는 칼날을 무턱대고 맨손으로 움켜쥐는 것은 분명 무모한 짓이지만 전술적인 차원에서 장갑 끼고 슬쩍 잡아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알 수 없는 바닥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보다는 총 투자자금 중 일부라도 투자하고 시장을 지켜보면서 비중을 유지할지 혹은 확대할지 판단해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예상 외로 빠른 반등이 나오면 일부 투자분에서 수익을 실현할 것이고(물론 대박은 어렵겠지만) 추가하락을 거친다면 표1과 유사한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적립식 펀드 투자의 경우라면 지금은 투자를 중단할 시점이 결코 아니다. 비싼 값에 확보해 놓은 경우 손 놓고 반등만 기다린다면 손익분기점은 상당히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투자이론 중에 ‘더 큰 바보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주가가 오를 대로 오른 시기에 주식을 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지만 투자자는 ‘나보다 더 비싼 값에 사주는 더 큰 바보가 있을 거야’라는 기대심리로 투자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심리는 주가 하락기에도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영화 속의 바보들은 실제로는 바보가 아니었으나 최근에 나타난 일부 투자자들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겨울이 좀 길어져도 봄은 오기 마련이다.

■ 장우 약력

법인대상 재테크 및 재무설계 강의/세미나

기업컨설팅전문업체 ㈜엑스퍼트 강사

FPSB지정교육기관 위드 FP 교수

케이리치 자산운용연구소 책임연구원


장우 CFP (국제공인재무설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