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눈높이에서 가급적 일찍, 일상적으로 해야만 효과 있어경제교육은 자녀 성장 후까지 가치 발휘하는 가장 큰 '선물'

20세기 대표시인 중 한 사람인 T.S 엘리엇은 현대 사회에서 봄이 더 이상 재생의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없다는 그의 상실감을 ‘잔인한 4월’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의 5월은 어떨까? 가정을 가진 직장인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자신들에게 가장 잔인한 때가 5월이라고 자조 섞인 웃음으로 답하곤 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비롯하여 각종 행사와 기념일이 많이 몰려 있어 주부들의 명절증후군에 버금갈 만큼 가장들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준다. 평소 부모로서의 역할, 자식으로서의 본분에 소홀히 하고 사는 일상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바람직한 이벤트임에는 분명하나 문제는 얄팍한 지갑에 비해 높아져만 가는 가족들의 기대 수준이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평범한 가정이라면 큰 경제적 궁핍이나 배고픔을 모르고 자라왔고 또래끼리 형성된 트렌드에 매우 민감한 탓에 때론 부모들을 당황하게 하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아이와의 줄다리기는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어서 웬만한 요구에 대해서는 그 끈질김에 결국 손을 들고 만다.

하지만 부모들은 정작 자녀들에게 중요한 ‘선물’을 망각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자녀에게 반드시 해줘야 하고 또한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다름 아닌 ‘기초 경제교육’이다.

같은 나이에 같은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상태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자주 보곤 한다.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다.

잡은 물고기를 잘 보관하는 법이나 더 많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사회 초년기부터도 나타난다. 심지어 취업 후에도 돈 관리를 부모에게 의지하는 ‘경제적 미성년자’도 적지 않다. 물고기는 소중하니 아껴 먹어야 한다는 훈계 외에는 기억 나는 이렇다 할 경제교육이라는 것이 없었던 탓이 아닐까?

자녀 경제교육에 대한 훌륭한 지침 등은 많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들려주고 보여줘야 할지에 대해 함께 살펴보자.

첫째, 늦기 전에 빨리 시작하자. 유행처럼 한때 아이들 대상의 재테크 서적들이 큰 인기를 끌었고 요즘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 특강도 심심치 않게 열리곤 한다. 하지만 책이나 강연회를 통해 느낀 테마들이 과연 얼마나 실생활에 스며들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중ㆍ고등학생만 되어도 ‘교육’이라는 말을 곧 강제와 타의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유년기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왕성한 호기심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충만한 아이들에게 첫 경제교육은 평생을 두고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둘째, 자녀를 위한 교육이지 자기만족을 위한 교육이 아님을 자각하자. 교육이라고 하면 자칫 의욕만 앞서 도그마를 강제로 주입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교육을 위한 교육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부모들부터 교육에 대한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경제에 대해 상식을 넓혀가는 기회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언론의 경제 섹션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거나 각종 강연회 등에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 자녀 경제교육을 위해 특별히 시간과 비용을 들일 필요까지는 없다. 자신이 당면했던 경제적 문제와 그에 대한 대응 등을 곰곰이 돌이켜보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가령 돈을 대하는 자신의 모습은 어땠는지, 또 어떻게 돈 관리를 했는지, 재테크에 대한 관심 정도와 성공적인 재테크에 대한 척도는 무엇인지 등이다.

셋째,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부모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은 생각보다 예리하며 인상적인 모습에 대한 기억력 또한 매우 뛰어나다. 자녀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큰 충격과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부부싸움이 끝나고 정작 어른들은 잊고 살았던 언쟁 내용을 한참이 흐른 후에 아이 입을 통해 듣고는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자녀 경제교육 10계명이니, 재테크를 위한 아이 교육지침이니 하는 것들은 많다. 그러나 일방적인 훈계나 가르침은 그리 큰 효과가 없다. 시간에 쫓겨 급한 마음에 한적한 거리에서 교통신호를 무시한 적이 있었다.

“아빠, 빨간불인데 왜 가요?” 함께 차를 타고 있던 6살 딸아이의 의문에 할 말이 없었다. 이리저리 궁리를 해봤으나 묘안이 떠오르지 않으니 그냥 “미안해. 앞으로 안 그럴게”라고 할 수밖에. 아이 키우기가 만만치 않은 일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돈 관리나 합리적 소비에 대한 교육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예를 들어 저금통을 사다 주고 저축의 중요성에 대해 한참을 얘기할 게 아니라 아이 저금통 옆에 아빠, 엄마 저금통도 함께 두고 정말로 같이 동전을 모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모인 동전으로 예금을 하든, 펀드를 하든 관계없다. 그냥 소비를 해도 나쁘진 않다. 결과물에 대한 보상을 경험하는 것은 더 큰 시작을 위한 좋은 자극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넷째, 교육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경제교육은 마음 다잡고 몇 달, 혹은 몇 년 만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과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습관과 태도를 만들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습관과 태도는 급조가 불가능하다. 영어단어나 한자는 시간투자와 독려에 따라 단기에 많은 양을 암기할 수 있지만 이를 두고 ‘안다’라고 할 수 있을까?

큰아이가 요즘 그림을 그리듯 영어일기 쓰기 흉내를 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일자가 바뀌어도 날씨는 항상 ‘sunny and hot’이라는 점이다. 아이의 머릿속은 온통 밝고 강렬한 햇살로 가득한 모양이다.

‘cloudy and cool’이라고 고쳐주기는 쉬우나 아이 머릿속의 영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학습이나 교육을 놀이로 받아들이고 즐기지 못한다고 교육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경제교육이라도 물 흐르듯 편안하고 일상적인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강의나 개인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기회가 좀 일찍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실제로 체계적인 돈 관리나 저축, 투자에 대해 합리적 가이드가 있었다면 현재보다 훨씬 나은 상태가 될 수 있었던 경우를 자주 접한다. 그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조금만 더 길게 소급해 보자. 망해도 최소한 3대가 지탱할 만큼 큰 재산을 상속해줄 자신이 없다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해 보자.

아이들이 자라나서 좋은 직장에서 남들보다 많은 물고기를 받길 바라는 집념 못지않게 그 물고기를 어떻게 잘 관리하며 더 많은 물고기를 잡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체득하도록 말이다. ‘맨땅축구’에서 펠레와 같은 선수를 기대할 수 없듯이 암기만 잘하는 경제적 저능아를 양산하는 교육이 계속되는 한, 세계 최고의 투자자 워렌 버핏의 일화는 또 다른 암기사항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 장우 약력

법인대상 재테크 및 재무설계 강의/세미나

기업컨설팅전문업체 ㈜엑스퍼트 강사

FPSB지정교육기관 위드 FP 교수

케이리치 자산운용연구소 책임연구원


장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