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열기가 많이 식기는 했지만, 몇 해 전까지도 대학가에서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과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의 경영철학을 배우는 게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지금도 몇몇 대학에는 ‘이병철학(學)’과 ‘정주영학(學)’이라는 과목이 있다고 전해 듣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을 일궈낸 그들의 정신과 경영비법을 연구하고 배울 가치가 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고(故) 이병철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최고 갑부였다. 본인이나 가족들은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재산이 많았으면 그의 이름 앞에 ‘돈’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정도였다.

고 이 회장은 타계하기 몇 년 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명사들을 초청해 인생관이나 숨은 얘기를 들려주는 일요일 아침 대담 프로였다.

평소 대중들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그의 방송 출연은 당시 장안의 큰 화제였다. 당시 대학생이던 필자도 그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방송 내용 중 필자가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가 말한 ‘돈 버는 비결’이었다. 그는 “어떻게 한국 최고의 갑부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물건을 만들어 양심껏 팔면 돈은 저절로 벌게 됩니다”하고 답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의 말이 선문답처럼 들릴 지 모르지만, 필자는 지금도 그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생각하고 있다.

사실 사업을 하다 보면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물건을 양심껏 팔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게 된다.

필자는 고 정주영 회장 생전에 두어 번 정도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돈 버는 비결’을 물은 적이 있다. 필자의 질문에 고 정 회장은 빙긋이 웃으며 “돈을 벌려고 하지 말고 사람을 벌려고 하면 성공할 게요.”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과 같은 비범한 사업가의 철학을 다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지만, 곱씹어 보면 요즘 기업인들에게 꼭 필요한 철학이 아닐까 여겨진다.

세상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 분유회사의 기업주는 상상을 초월하는 치사한(?) 방법으로 수백억 원의 개인 비자금을 만들다 사정기관에 꼬리가 잡혔다고 한다.

내용인즉슨, 이 회사는 분유를 만드는 과정에 추출되는 맹독성 폐찌꺼기 수백 톤을 회사 명의로 사들인 경기도 인근 야산에 수년 동안 몰래 파묻어 오다가 뒤늦게 주민들에게 꼬리가 잡혔다는 것이다.

사정기관이 수사를 해보니 이 회사는 폐찌꺼기를 한 푼 안들이고 암장하면서 회사 장부에서 수백억 원을 빼돌려 기업주가 착복했다는 것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회사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결손가정 입양아 기관이 부족한 재원 탓에 분유조달이 어려워 분유 한 통 당 가격에서 몇 원을 할인해달라고 하자 매몰차게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런 이 회사가 얼마 전 사회복지재단을 만들겠다고 언론에 홍보자료를 냈다고 한다. 기업주의 비리를 가려보려는 속보이는 처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기업 프렌들리’ 슬로건을 내건 이후 요즘 재계의 분위기는 상당히 고무된 듯하다. 투자를 활성화하고, 연구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기업도 많고, 신제품 개발에 힘을 쏟는 곳도 많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들의 이런 선순환적 경영과는 달리, 기업규제 완화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기업도 적지 않아 보인다. 어떤 대기업은 출자총액제한제나 공정거래법이 느슨해질 것을 예상하고 회사 지분을 노골적으로 자녀들에게 넘기는가 하면, 어린 자녀들이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 기업을 통해 회사의 이권을 특수거래로 넘겨주는 배임도 일어나고 있다.

규제가 완화되고, 자율의 폭이 넓어질수록 기업가의 책임의식과 양심이 요구되는 때다. 고 이병철 회장의 말처럼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물건을 만들어 양심껏 파는’ 기업가 정신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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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