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 명목으로 노골적 주식 넘기기 횡행저비용 재산 대물림 뿌리칠 수 없는 유혹

얼마 전 필자가 경영하는 재벌닷컴에서 대기업 오너 가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무리 없이 재산을 자녀나 가족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대답 속에는 ‘적은 비용으로’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었다. 세금을 줄이고, 비용을 절감해서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마음은 부자들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당연히 가지는 인지상정이다.

국내 사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특검’이라는 전대미문의 조사를 받은 삼성그룹의 비자금사건도 속사정을 따지고 보면 재산 대물림 과정의 불투명성에서 시작됐고, 지난 2006년 터진 현대ㆍ기아차그룹 비자금사건도 똑같은 이유가 발단이었다. 이로 인해 두 재벌가의 오너와 가족들은 ‘죄인’처럼 검찰청 문을 드나들어야 했고, 급기야 재판정에 서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재벌가 사람들은 ‘저비용 재산 대물림’이라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모양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라는 단서를 달긴 하지만.

기업 오너 가족들 사이에 가장 통상적인 재산 대물림 방식은 ‘주식 넘기기’다. 기업주에게는 회사가 전재산이니 주식을 넘기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증여’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주식 넘기기가 너무 노골적으로 횡행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한 젖먹이 어린이에게 회사 주식을 수십억 원 어치나 주는가 하면, 돌이 채 안 지난 손자에게 생일기념으로 억대 주식을 주는 사례도 있다. 회사측은 증여세를 냈으니 문제될 게 없지 않느냐며 큰 소리다. 세금을 냈다고 하니 할 말은 없지만, 국민들은 어딘가 찜찜하다.

몇 년 전 한국의 10대 그룹 가문 중 한 곳인 G그룹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비상장 계열사인 C사를 가족과 계열사에 넘기면서 주식가치를 주당 1원으로 평가해서 판 것이다. 자산가치만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회사를 단돈 500만 원에 가족과 계열사들이 인수했는데, 회사측은 “적자가 몇 년간 지속돼 처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적자 회사를 인수한 가족들은 바보일까?

실제로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월드라는 회사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충북 음성군에 골프장을 건설 중인 동부월드는 동부건설이 100% 출자해 만든 회사였다. 그런데 동부건설은 2003년에 갑자기 보유 중이던 주식 전량을 액면가의 1만분의 1인 주당 1원에 김준기 회장을 비롯한 계열사에 총 101만 원을 받고 팔았다.

당시 김준기 회장은 25만5,000원으로 이 회사 지분 25.2%를 소유해 최대주주가 됐다. 그런 뒤 이듬해에 김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 전량을 다시 동부건설에 넘겼다. 주당 가치를 얼마로 산정해 넘겼는지는 알 길이 없다. 결국 이 사건은 검찰 수사로 이어져 김 회장은 재판을 받았다.

또 다른 기막힌 사례는 자녀들을 비상장 계열사의 대주주로 올린 다음, 회사 이익을 높은 배당으로 모두 빼가게 하는 것이다. D그룹의 비상장 계열사인 E사는 계열사의 시스템통합(SI) 분야를 맡고 있는 회사로, 회사 수입은 모두 계열사에서 얻는다. 이 회사는 지난해 150억 원의 흑자를 냈는데, 그룹회장의 장남이자 이 회사의 지분 100%를 소유한 L씨가 받은 배당금액은 150억 원이었다. 결국 회사가 거둔 이익을 모두 자기 주머니로 넣어버린 것이다.

대기업들이 왜 출자총액제한제를 반대하고 경영권 보호를 명목으로 증여세나 상속세를 낮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지 그 이유를 알 듯도 하다.

재벌닷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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