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MS 전략적 제휴… 세계 자동차업계 '지능형 자동차' 기술개발 박차

‘자동차의 미래, IT(정보기술)가 좌우한다.’

지난 5월초 세계 자동차업계의 시선은 서울에 집중됐다. 신흥 강호로 자리잡은 현대ㆍ기아차그룹(이하 현대차)과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가 차량용 IT분야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수 년 동안 물밑에서 상호협력 과제를 논의해온 두 회사는 첫 번째 공동사업으로 차세대 차량용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information과 entertainment의 합성어) 시스템의 개발 및 보급에 나서기로 했다. 인포테인먼트는 정보와 오락, 통신 등을 차량 내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장치나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현대차와 MS가 손을 맞잡은 것은 자동차와 IT의 본격적인 접목이라는 점에서 자동차산업이 ‘역사적 대전환’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즉 자동차가 더 이상 굴러다니는 기계에 머무르지 않고 지능형 이동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자동차에 장착되는 전자부품 비중은 1980년대 고작 1%에 불과했지만 2010년쯤이면 40%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전자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최근 자동차산업 혁신의 80~90%는 전자 및 IT 분야에서 이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자동차의 눈부신 진화를 손쉽게 목격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근 몇 년 사이 널리 보급된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다. 차량의 현재 위치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와 교통상황 등을 고려해 최적의 경로를 운전자에게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90년대만 해도 꿈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아직은 주로 고급차량에만 적용되는 편의사양이지만 차량간 거리제어, 차선이탈 경보, 사각(死角)감지 기능 등도 모두 첨단 ITㆍ전자기술 덕분에 이룬 개가다.

그렇다면 IT와 결합한 자동차의 진화는 어떤 방향으로, 어느 정도까지 이뤄질 것인가. 최근 세계 각국의 연구개발 동향에는 그 해답의 상당 부분이 나타나 있다.

현대차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적 제휴 체결식.

지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내비게이션 유럽 2007 컨퍼런스’에서는 내비게이션의 미래를 예측하는 내용이 풍성하게 발표됐다. 한 유력 시장조사기관 보고서에 따르면, 음성인식 기능이 향후 내비게이션 단말기의 핵심 솔루션으로 부각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 2006년 말 유럽시장에서는 음성인식 기술이 내장된 단말기가 출시 첫날 매진될 만큼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또한 현재 내비게이션 단말기는 크게 인포테인먼트와 운행보조(assistance)의 양대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앞으로는 운행보조 기술로 무게중심이 쏠릴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텔레매틱스 리서치 그룹’의 수석 분석가 에질 율루센 같은 연구자에 따르면, 현재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차량위치 및 최적 이동경로 등 정적(靜的) 교통정보 안내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미래에는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동적(動的) 교통정보를 제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단순한 교통정보 안내 기능을 뛰어넘어 첨단운전보조시스템(ADASㆍ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 나아가 자율주행(Automatic Driving) 제어시스템으로 진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SF영화에서나 봤던 ‘지능형 자동차’의 두뇌에 해당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망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를 나타낸다. 따라서 향후 내비게이션 시스템에서는 외부 시스템과의 연결을 통한 쌍방향 정보처리 여부가 핵심적 기술과제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와 텔레매틱스(Telematicsㆍ차량용 무선통신 서비스) 업체들이 대거 참여하는 ‘텔레매틱스 디트로이트 컨퍼런스’도 자동차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중요한 국제행사다.

여기에서도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동적 교통정보 제공 기능은 핫이슈다. 지난해 회의 때는 미리 입력된 교통정보가 아닌 실시간 교통정보, 차량 근처 주차공간 실시간 안내, 인근 주유소 기름값 안내 기능 등이 향후 핵심 서비스로 부상할 것으로 관측됐다.

또 하나 주목할 이슈는 차량추적 기능이다. 이 기능은 가령 물류회사가 운송차량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데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도난당한 차량을 추적하는 것은 물론 차량운행을 원격 제어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도를 찾은 관광객이 텔레매틱스 단말기로 길안내를 받고 있다.

‘웹 접근성’(Web Access)도 차세대 텔레매틱스 서비스로 매우 주목받고 있다. 움직이는 차량 안에서 인터넷을 원활하게 사용할 수만 있다면, 현재 내비게이션 기능 정도에 머물고 있는 텔레매틱스 서비스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가 이미 휴대인터넷(와이브로)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적잖이 고무적이다.

세계 자동차업계의 기술개발 방향과 전문가들의 전망을 종합해보면, 머지않아 자동차는 ‘전자화’에서 ‘디지털화’로 한 걸음 더 진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쯤에는 이른바 ‘디지털 카’(Digital Car)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디지털 카’는 다양한 통신채널을 통해 정보, 콘텐츠를 외부와 주고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달리는 컴퓨터’인 셈이다.

컴퓨터는 하드웨어를 그대로 두고 소프트웨어만 교체해도 성능이 업그레이드된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카’도 운전자의 요구나 기호에 따라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장착함으로써 원하는 대로 튜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가 규정하는 자동차’(SW Defined Car)의 시대가 2020년 무렵에는 펼쳐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