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기자·CEO 등 거친 독특한 이력… '궁즉통' 정신으로 난관 극복

“최근 파주에 가 보셨나요?” 필자가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그만큼 파주의 변화는 상전벽해란 말을 연상시킨다. 몇 달 전 파주시의 초청으로 시민 대상 강의를 했다. 강의 전에 금촌 지역을 구경하고 직원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필자는 충격을 받았다. 몇 년 전 금촌의 모습과 너무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동네가 너무 깨끗했다. 쓰레기가 없고 불법주차 차량을 볼 수 없었다. 불법 부착물도 없고 간판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행인들의 모습도 건강하고 씩씩해 보였다. 강의 때 시민들의 반응도 좋았고 시민들과 공무원 사이에 친밀감이 느껴졌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

필자를 안내한 공무원은 파주 자랑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냥 하는 자랑이 아니라 진정성이 느껴졌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파주는 제일 잘 나가는 지자체입니다. LG그룹 같은 기업도 많이 유치했고 이화여대를 비롯해 파주에 오기로 한 대학만 대여섯 개는 됩니다. 활발한 혁신활동으로 최근 4년간 총 95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상금만 41억 원이 됩니다. 몸은 고되지만 정말 일할 맛이 납니다.” 그날 필자는 강의를 마치고 오면서 파주 혁신의 주인공 류화선(60) 시장을 인터뷰하기로 결심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고, 어디서 이런 리더십을 배운 것일까? 경력이 특이하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에서 10여 년을 근무했다. 비서실을 거쳐 삼성전자에서 마케팅과 홍보 등을 했다. 하지만 어느날 사표를 내고 한국경제신문사에 중견기자로 입사를 한다.

젊은 시절의 꿈인 기자 생활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직장이 아닌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는 뜨거운 맛을 보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신문사의 꽃인 편집국장까지 오른다. 독학으로 글쓰기와 편집 공부까지 한 덕분이다. 이어 한국경제 자회사인 와우TV 사장을 거쳐 파주시장까지 이르렀다.

그의 말이다. “저는 끊임없이 배우는 데 익숙한 사람입니다. 무언가를 배울 때는 에너지도 생기고 신이 납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재미가 사라지고 또 다른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집니다. 파주시장을 하게 된 것도 이런 제 성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는 일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지금 할 일과 나중에 할 일, 자신이 할 일과 직원들이 할 일이 무언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그는 민원처리 기간 단축, 깨끗한 도시 만들기, 동절기 공사 추방을 3대 시책으로 내놓았고 이를 성취했다. 그 중 민원처리 기간 단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유는 민원이 여러 부서를 돌다 보니 늦어지는 것이었다.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여러 부서가 동시에 모여 민원에 대해 검토를 끝내라는 것이다.

그는 업무개시 전에 민원 관련 미팅을 하게 했다. 그 결과 처리시간이 50% 이상 단축되었다. 물론 직원들은 힘들었지만 류 시장의 의견은 명확했다. “우리가 왜 존재합니까?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우리가 힘드냐 힘들지 않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또 일류 조직의 구성원은 늘 힘든 겁니다. 힘들지 않고 어떻게 일류 조직이 됩니까?”

파주는 4가지가 없는 도시다. 담배꽁초나 쓰레기더미가 없다. 불법주차가 없다. 불법부착물이 없다. 노점상도 없다. 그 결과 도시가 무척 깨끗하고 차량 속도도 빠르다.

그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잘 활용해 파주시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란 사소해 보이는 것이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는 이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이나 변화도 거창한 것이 아닌 사소한 것을 잡을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혁신은 크고 거창한 것에서 하면 안됩니다. 별 것 아닌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작은 것에서 성공을 거두면 그런 것이 쌓여 자신감이 생기고 나중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겨본 사람이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시장에 도전하게 된 것은 이즈모라는 일본 지방도시의 성공 스토리를 들은 이후이다. 도대체 시골도시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했기에 도요타, 소니 같은 회사와 함께 최우수 조직으로 선정된 것일까? 그 중심에는 이와쿠니 데쓴도 시장이 있었다. 그는 세계적인 증권사 메릴린치의 수석부사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그가 기업에서 익힌 노하우를 시정에 접목시켜 시골도시를 확 바꾼 것이었다. 그런 기사를 보고 류 시장도 자신의 고향 파주를 바꾸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아마 민간기업 사장으로서 지루함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위기에 대해 질문을 했다. “한경 와우TV 사장으로 근무할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부도 직전의 회사였습니다. 직원 월급도 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모회사가 보증을 설 수 없다고 해서 할 수 없이 개인보증으로 돈을 꾸어 직원들 월급을 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나가야 할 직원들은 나가지 않고 꼭 필요한 직원들이 자꾸 나가는 겁니다.”

그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 “분기별로 평가를 해서 급여와 연계를 했습니다. 하위 20% 직원의 인센티브를 줄여 이를 상위 20% 직원에게 주는 식으로 경영을 했습니다. 계속 연봉이 깎이자 무능한 직원들은 견디질 못하더군요. 또 버는 범위 내에서만 돈을 쓰게끔 했지요. 6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3년 만에 코스닥에 상장을 시켰습니다. 연 100억 원 이상의 이익을 내기도 했지요.”

그런 경험이 그에게는 좋은 양약이 된 듯하다.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경우는 직업이 바뀔 때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낯선 곳에서는 살아 남기 위해 궁리를 합니다. 그러면 방법이 보이고, 한 단계 ‘점프업’을 하게 되지요. 궁하면 통합니다. 궁즉통이지요.”

그는 늘 일류를 지향한다.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의 생활신조는 ‘공짜 점심은 없다’이다. 독종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시장으로서 못할 일은 없다고 주장한다. 만약 자신이 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 안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시장은 없다고 말할 만큼 자신감에 넘쳐 있다. 그런 자부심이 오늘날의 파주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책을 많이 읽는다. 그의 방은 온갖 종류의 책으로 차고 넘친다. 와우TV 사장 시절에는 테드 터너와 블룸버그 이야기를 여러 번 읽고 그들을 벤치마킹했다. 사소한 것부터 고쳐 나가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아마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란 책을 읽고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다. 그는 요즘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심취해 있다. “다산은 직접 백성을 다스린 경험이 없습니다. 마음으로 생각을 한 것이죠. 그래서 심서입니다. 백성이 편안하다면 그가 곧 훌륭한 수령이라는 대목이 있는데 100% 공감을 합니다.”

어떤 대통령을 갖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잘 살던 필리핀이 몰락한 것도, 별 볼일 없던 싱가폴이 일등 국가가 된 것도 지도자 때문이다. 변방의 군사도시에 불과하던 파주가 이렇게 각광을 받게 된 것도 역시 류화선이란 인물 덕분이다. 앞으로 그가 얼마나 더 파주를 바꾸어 놓을지 다들 감상해봐도 좋을 것 같다.

■ 한근태 약력

한스컨설팅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