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져 곤혹스런 입장에 처한 한 대기업 내부에서 ‘회장님’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 그룹은 지난 정권 때부터 꽤나 몸집이 큰 회사를 인수하면서 자산규모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당시 이 회사는 특정 은행으로부터 막대한 금융지원을 받아 인수자금을 충당하면서 인수전(戰)에서 승승장구했다.

과식한 탓일까. 이 그룹은 갑자기 사채만기가 도래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끝내는 그룹 전체가 휘청거리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이 회사가 대형 인수전을 벌이면서 자금을 빌리는 과정에 무리한 상환조건을 내거는 바람에 결국 이 조건이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금충당을 위해 내건 채무조건이 최고경영자인 총수의 말 한마디에 결정됐다는 점이다. “무조건 인수전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물불 가리지 않고 무리한 채무조건을 받아들인 결과가 종국에는 그룹을 위기에 빠트리게 됐다는 얘기다.

사실 이런 상황은 대형 인수합병(M&A)에 성공한 상당수 대기업에서 비슷하게 벌어지는 장면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명 회사였지만 어느날 대형 M&A에 성공하면서 급부상한 한 대기업 총수는 “돈은 신경 쓰지 말고 인수만 해라”는 식으로 지시해 시장에 나온 중위권 회사 매물을 싹쓸이했단다.

그런데 문제의 이 대기업은 인수전을 시작하기 직전, 당시 유력 금융기관장의 친인척을 계열사 경영인으로 영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뒷말이 무성하게 나돌고 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이라는 회사를 두고 재벌급 대기업들이 치열하게 맞붙은 상황도 비슷하다. 물론 대우조선해양은 초우량 회사인 까닭에 누구나 군침을 삼킬 만한 대상이다.

하지만 인수전에 나선 기업들을 보면 딱하기 그지 없다. 어떤 곳은 “조선사업 진출을 위해서”라고 하고, 어떤 곳은 “그룹의 시너지 효과 때문”이라고 명분을 밝힌다. 사실 표현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 기업의 인수의 변(辯) 뒤에는 “회장님 지시니까”라는 공통된 속사정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렇다면 M&A의 결과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까. 잘 되면야 회장님이 “탁월한 경영인”으로 칭송을 한 몸에 받겠지만, 잘못되면 주주와 회사가 치명상을 입는다. 경영이란 과오도 있고, 실패도 있기 마련이다. 만사가 성공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재계에서 펼쳐지는 기업 인수전을 보면 참여 기업들이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자기 몸집보다 훨씬 더 큰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금융 공기업인 산업은행은 최근 파산보호 신청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파를 몰고 온 미국의 초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하려다 금융위원회 등 정부 당국의 반대로 막판에 인수 의사를 철회한 바 있다.

리먼 출신인 지금의 산업은행장이 회사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인수 시도를 했겠지만, 만약 그의 의지대로 인수가 이뤄졌다면 가늠하기조차 힘든 후유증이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했을지도 모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인수나 대형 M&A는 경영인 혼자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많은 주변 사람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손익을 잘 따져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래도 M&A의 성공확률은 50% 미만이라는 게 세계시장의 통계다.

재벌닷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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