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후원·프로 자동차 경주 스폰서 등 삼성이 손 뗀 사업에 앞장우연일까 필연일까 의혹

‘박세리부터 레이싱까지…공교롭게도 삼성이 안하는 것만 하네?!’

CJ(구 제일제당)그룹의 틈새 스포츠 마케팅 전략이 재계와 스포츠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무엇 보다 삼성과의 ‘미묘한’(?) 관계를 감안할 때 혹시라도 ‘안티(Anti) 삼성’적인 요소가 감안돼 있지 않냐는 ‘의혹’에서다.

비록 뿌리는 같지만 CJ와 삼성과의 ‘복잡미묘한’ 관계는 90년대로도 거슬러 올라간다. 일단 CJ그룹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형인 고 이맹희씨에게 넘긴 회사.

1993~94년 삼성그룹으로부터 경영 분리되면서 당시 제일제당이 보유한 부동산, 삼성생명주식 평가방법 등을 놓고 양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상당 기간 삼촌(이건희 회장)과 조카(이재현 회장) 간에 계속된 신경전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CJ는 지난 2002년 미국 여자프로골프투어(LPGA)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박세리와 전격 계약을 체결하며 스포츠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당시 계약 금액만 연 30억원(인센티브 포함)으로 무려 5년간 150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계약이었다.

하지만 이 때 박세리는 후원사이던 삼성전자와 재계약 여부를 놓고 ‘심한’ 갈등을 벌이고 있던 시기. 그 간 박세리를 지원해 오던 삼성전자가 계약금 등의 문제로 서로간에 커다란 이견을 보이고 있었던 것. 이 전까지 우승가도를 달려 오던 박세리는 쓰고 있던 모자에 새겨진 삼성 로고가 선글라스로 가려지는 바람에 후원사와의 갈등이 있지 않느냐는 관측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삼성과 박세리의 지난 5년간의 계약 금액은 10년간 8억원에 부가 장비와 경비 지원 등이 전부. 하지만 이 사이 ‘주가가 엄청 뛰어 버린’ 박세리를 붙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는 것이 당시의 평가였다.

이 때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 CJ. CJ는 ‘예상 외로’ 큰 금액인 5년간 150억원을 베팅하며 박세리를 붙잡고 나섰다. 재계 일부에서 “(삼성에게) 보란 듯이 ‘너희가 안 잡아도 우리는 확실하게 하고 만다’는 각오를 보여줬다”는 관측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CJ가 삼성을 겨냥(?)해 선뜻 거금을 계약했다고 공언하거나 드러내놓고 얘기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게만 보인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박세리 이후 삼성은 지금까지 골프와 큰 인연을 이어오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CJ도 마냥 승자만은 아니다. 비록 일부에서 지적하는대로 ‘짜다고 소문난’ CJ가 거금을 투자했지만 한 때 박세리의 부진한 성적에 ‘적잖은’ 마음 고생을 했던 때문이다.

그리고 2008년 CJ는 대한민국 프로 자동차 경주의 최대 후원자로 우뚝 서 있다. 타이틀 스폰서로 나서고 있는 2008 CJ슈퍼레이스 챔피언십 대회 개최의 최대 공신인 것. 지난 2006년 별다른 기업의 스폰서 없이 경기를 꾸려 나가던 프로 레이싱 경기에 적잖은 자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고사 직전의 스포츠이던 레이싱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레이싱 또한 삼성과는 ‘악연(?)이 있지 않냐’는 의문을 불러 일으키는 분야로 꼽힌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4대 스포츠는 물론, 아마추어 종목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스포츠 후원과 마케팅에 나서는 삼성 그룹이 유독 레이싱에 있어서는 뚜렷한 족적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자동차광(마니아)로 알려진 사실을 감안할 때도 ‘왜 삼성이 레이싱을 가만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 자동차 회사까지 만들 정도로 이건희 회장은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이미 공인돼 있다.

또 삼성은 90년대 용인 에버랜드에 스피드 트랙을 만들기까지 했다. 당시 삼성은 이 트랙을 넓혀 F1경기를 벌일 계획이라는 얘기도 공공연히 흘러 나왔다. 지금도 이 트랙은 국내 프로자동차 경주의 유일한 경주장으로 애용되고 있다.

하지만 레이싱 관계자들 사이에서 삼성과 F1간의 ‘악연’ 스토리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F1 대회 유치를 위해 협상을 벌이던 삼성과 F1의 고위급 임원들 간에 ‘심한’ 의견 불일치와 심지어는 ‘고성이 오가는 언쟁’까지 있었다는 것. 레이싱 스포츠계 일부에서는 여전히 ‘소문’으로만 돌아 다니는 이 얘기를 지금도 삼성이 레이싱 후원에 나서지 않는 이유로 받아들이고 있을 정도다. 물론 공식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얘기는 아니다.

어쨌든 삼성과 레이싱의 ‘인연이 없는’ 관계에도 불구하고 CJ는 국내 레이싱 스포츠 지원에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 형국이다. 이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삼성이 하지 않는’ 것을 또 하게 된 셈인 것.

지난해 HSBC대회에서 우승한 CJ소속 이선화 선수.

CJ가 레이싱 후원에 나서면서 국내 레이싱도 프로 스포츠로서 본격 틀을 갖춰 나가고 있다. 당장 참가 팀도 늘어나고 또 관객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은 외형상의 변화. 특히 생활용품 관련 기업이랄 수 있는 CJ그룹이 나서면서 GM대우, 르노삼성, 기아차, 심지어 일본 레이싱팀까지 새로이 레이싱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도 가시적인 소득이다.

무형의 소득도 만만치 않다. 그간 ‘춥고 배고팠던’ 레이싱 관계자들이 장기적이고도 안정적인 환경에서 경기에 임하게 될 수 있게 되서다. 그간 근시안적인 시각에 그쳤다면 이제는 장기적 투자도 가능하게 됐다는 것.

올해부터 배기량 6,000CC급의 스톡카 레이싱이 펼쳐지게 된 것도 달라진 변화의 하나다. 종전 경기 차량보다 출력이 커져 속도와 굉음이 뛰어난 차량을 메인 경기 종목으로 채택해 더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으겠다는 복안.

CJ의 레이싱에 대한 의지는 더 확고해 보인다. 올 해 홍일점 레이서인 강윤수와 국내 유일의 GT1시리즈 챔피언인 김의수를 영입하며 CJ레이싱팀을 창단까지 했다. 레이싱계의 한 인사는 “이전에는 하루하루가 어렵게 경기가 벌어지곤 했는데 지금은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 그 자체만으로도 대회를 알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뿌듯해 한다.

이에 대해 CJ그룹은 “삼성과 불편한(?) 관계나 삼성을 의식한 것은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룹의 철학과 방침을 따르고 있을 뿐인데 ‘불필요한 억측’을 불러 일으키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

단지 ‘남들이 안하는 차별화된 미래가 유망한’ 종목을 찾다 보니 골프와 레이싱, 그리고 e스포츠에 나서게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CJ는 그간 축구 야구 등 적잖은 종목의 협회와 구단으로부터 팀 창단이나 지원을 권유받아 왔지만 모두 거절해 왔다. CJ그룹은 사업철학처럼 스포츠 마케팅 방침 또한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벌이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 국내 프로 레이싱에 日 레이서 진출
일본 명문 '팀 레크리스' 소속 반바 타쿠씨 도전장

왼쪽부터 레크리스 팀 레이싱걸 장은정 , 레크리스 대표이사 토도우 신타로, 레이서 반바타쿠, KGTCR 홍원의 대표, 레이싱걸 윤정아씨

"한국의 레이싱 경기와 드라이버들의 기량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올 해 국내 프로 레이싱 경기에 일본 프로 선수 한 명이 뛰어 들었다. 레이서인 반바 타쿠씨. 일본 프로 레이싱 팀의 명문인 '팀 레크리스'(Team Reckless) 소속인 그는 올 한 해 CJ슈퍼레이스 챔피언십 슈퍼 6000클래스를 통해 한국 모터스포츠에 진출한다.

슈퍼카 판매와 자동차 튜닝 전문 기업인 레크리스 코리아 토도우 신타로 대표는 최근 국내 레이싱팀 창단을 발표했다. 이어 타쿠 선수와 함께 장은정, 윤정아 등 2명의 전속 레이싱 모델도 영입했다. 장은정양은 지난 해 일본 슈퍼GT에서 레크리스팀 레이싱 모델로 활동하며 여러 국제 대회에도 참가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윤정아양은 새로 발탁됐다.

팀 레크리스는 지난 해 11월에 개최된 '포뮬러3 마카오 그랑프리'에서 1위와 3위를 동시에 차지하며 세계 모터스포츠계의 이슈를 불러 일으켰던 팀이다. 일본을 거점으로 세계 유명 레이스에 참가하고 있는 일본 모터 스포츠의 신흥 명문이기도 하다.

일본 국내 투어링카 레이스의 최고 카테고리 중 하나인 '슈퍼GT'에서 시리즈 챔피언십을 획득한 것은 물론, 포뮬러 니폰, 포르쉐 카레라컵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 맹활약을 벌이고 있다.

드라이버로 영입된 반바 타쿠 선수는 2004년 슈퍼 내구선수권시리즈에 참전해 시리즈 챔피언을 거머쥔 레이싱계의 강자. 그는 "한국 선수들이 주목하고 또 주목해야만 하는 수준의 드라이빙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결의를 보였다.

또 "당장 기억하고 있는 한국 선수 이름은 없지만 한국 레이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자동차 세팅이 완벽하게 준비되는 대로 6월21일 벌어질 3전 대회부터 뛸 예정이다.

"2008년의 새로운 도전으로 한국의 투어링카 레이스를 선택했습니다." 토도우 신타로 대표는 "자동차 선진국에 들어와 있는 한국이 모터스포츠 세계에서도 확고한 지위를 확립하고 자동차 레이싱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