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5일부터 신문 등 언론에 등장한 ‘이 대통령’이란 말과 활자에 깜짝 놀랐다.

필자(1939년생)의 세대에게는 ‘이 대통령…’하면 초대 이승만 대통령(1875~1965)이 바로 연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1955년 그의 80세 생일에 성동원두(城東原頭) 서울운동장에서 “해피 버스데이, 아우어 프레지던트(Happy Birthday Our President)”를 합창했던 서울 중.고들, 경기여 중.고 출신들에게 ‘이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의 약칭으로 쉽게 다가올까.

이승만 대통령의 약칭이었던 ‘이 대통령’이 심어온 이미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 대통령’과 너무나 다르다.

이승만 대통령의 취임사 첫 머리 부분을 기억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여러 번 죽었던 이 몸이 하느님 은혜와 동포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에 이와 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는 나로서는 일변 감격한 마음과 일변 감당키 어려운 책임을 지고 두려운 생각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기쁨이 극하면 웃음이 변하여 눈물이 된다는 것을 글에서 보고 말로 들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나에게 치하하러 오는 남녀 동포가 모두 눈물을 씻으며 고개를 돌립니다. 각처에서 축전이 오는 것을 보면 눈물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본래 나의 감성으로 남에게 촉감될 말을 하지 않기로 매양 힘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목석간장이 아닌 만치 나도 뼈에 사무치는 눈물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40년 전에 잃었던 나라를 다시 찾은 것이오. 죽었던 민족이 다시 사는 것이 오늘 이어서 표명되는 까닭 입니다.>>

대한민국 첫 대통령 취임사 첫 대목을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박성희 교수<1963년생. 미 컬럼비아대 사회학과. 퍼듀 대학원 언론학 박사. 조선일보 기자.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는 ‘역대 대통령 취임사 분석’이란 논문(월간조선 2008년 2월호)에서 요약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유장미<悠長美ㆍ 서두르지 않고 마음에 여유있음> 넘치는 노래를 한 이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다. 광복의 기쁨과 정부수립의 감격이 넘실대던 1948년의 기운이 취임사 곳곳에 배어 있다.… 자신을 줄곧 ‘나’로 지칭한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청중을 ‘백성’, ‘민중’, ‘동포’, ‘애국남녀’, ‘나의 사랑하는 3,000만 남녀’로 불렀다. “정부 일이 좋은 시계 속처럼 잘 돌아가기”를 바란 그의 연설문은 ‘바입니다’, ‘부탁합니다’, ‘바랍니다’ 등의 건조한 문어체형 어미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어투를 잃지 않고 있다.>>

박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2월25일 8,700여자 취임사 중 마지막 부분을 읽고 이승만 대통령의 ‘유장미’를 느꼈을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노점상, 고학생, 일용노동자, 샐러리맨을 두루 거쳐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꿈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저는 이 소중한 땅에 기회가 넘치게 하고 싶습니다. 가난해도 희망이 있는 나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수 있는 나라, 땀 흘려 노력한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대한민국 지도를 세계로 넓히겠습니다. 세계의 문물이 거침없이 들어와서 이 땅에서 새로운 가치로 창조되게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내보내는 나라, 선진 일류국가가 되게 하겠습니다. 선대의 기원이고 당대의 희망이며, 후대와의 약속 입니다. 저, 이명박이 앞장 서겠습니다.>>

한국일보에 의하면 이 취임연설은 예정(36분)보다 11분이나 길어졌고 40차례 박수가 나왔고(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때는 22 차례)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대한민국’이 17번, 핵심 키워드인 ‘선진’과 ‘경제’는 15번, 11번이 나왔다.

조선일보는 “취임사 중 가장 많이 쓴 단어는 ‘국민’으로 30회였으며, ‘한없이 자랑스런 나라, 한없이 위대한 국민’ 등이었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 주용중 기자는 “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 부분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사 초안을 재검토해 추가한 것이다”고 썼다. 이 대목은 류우익 청와대 비서실장, 박재완, 박형준 의원, 신재민(전 주간조선 편집장) 전 인수위 정무팀장 등이 모여 다시 썼다는 것이다.

박성희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까지 지난 아홉 명의 대통령 취임사를 분석한 결론은 “국민은 ‘백성’에서 ‘위대한 국민’으로, 가르침의 대상에서 존중 대상으로 승격”된 것이 다른 것이었다.

그렇다. 이승만 대통령이 아닌 또 다른 이 대통령은 ‘국민’을 존중에서 섬김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맹약했다. 그 담보물은 그가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에서 대통령이 되게 한 “나라와 겨레의 꿈이 있다”는 확신이었다. 이 확신이 다시 피어 나길 바란다. 그래야 ‘이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의 약칭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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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