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8일 오후 북핵 6자회담의 우리측 신임 수석대표인 김숙 외교부 차관보를 맞은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수석대표(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표정은 밝았다.

CIA와 백악관이 밝힌 시리아에 대한 북한의 핵 개발지원사실 발표, 새 주한대사 내정자(캐서린 스티븐슨)에 대한 미국 상원의 인준보류 등 여러 악재 속에서도 힐 차관보는 웃으면서 여유를 잃지 않았다.

힐 차관보는 김 대표를 만난 후 기자들에게 말했다.

<<성 김 국무부 한국과장의 지난 주(22-24일) 방문결과와 6자회담 다음관계 조치 등 여러 면에 대해 다양하게 (김숙 차관보와) 논의했다. 6자회담을 계속 진행해 나가면서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북한이 그들의 요구사항과 그들의 의무를 이행하면 우리는 우리의 요구사항과 의무를 확실히 이행할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힐 차관보는 이에 앞서 일본 TV 인터뷰에서 북한과 시리아 간 핵 협력이 북미 핵 협상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은 과거의 일이라는 게 미국당국의 판단이다. 우리는 6자회담에서 다뤄질 다른 의제와 똑 같은 수준에서 이 문제를 다뤄 나갈 것이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가 철저하면 ‘시리아 핵 협력’ 문제는 “문제될 게 없다”는 견해였다.

이에 대해 북한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만 26일 노동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서울-평양 연락사무소 설치에 대해 논평을 냈다.

<<(연락사무소 제안은) 새 것이 아니며 이미 오래 전에 남조선 선임자들이 분열을 영구화하기 위한 방패로 들고 나온 것으로 오물장에 처박힌 것이다. 반통일 골동품이다.… 이명박 패당은 미국을 등에 업고 반공화국 대결을 정책화하면서 6.15이후 북남 사이에 이룩된 모든 것을 뒤엎으려 한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이 대통령을 ‘이명박 역도’, ‘일자 무식쟁이’, ‘정치 몽유병환자’, ‘얼뜨기’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동관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을 냈다.

<<(연락사무소 제안은) 대북전략 차원의 제안이 아닌 만큼 북측의 거부의사에 대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남북 연락사무소는 진정성을 가지고 실질적인 남북한 대화와 협력을 위해 상시적인 채널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구상한 것이다.>>

북한의 이런 통미봉한(通美封韓)의 자세는 미국 의회에 아직도 건재한 네오콘의 반발을 사고 있다.

공화당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은 힐 차관보의 국무부 인맥으로 통하는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미대사 내정자의 상원 인준을 보류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원 정보위 공화당 간사인 피트 호에크스트라 의원은 “부시 행정부가 이 문제를 아주 잘못 다뤘다”면서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문제에 반대할 뜻을 비쳤다.

이런 때에 레이건, 클린턴 대통령 때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였던 윈스턴 로드와 카터 때 정치담당 차관보였던 레슬리 겔브는 워싱턴 포스트에 4월 26일 공동 기고문을 냈다. 제목은 “너무 자주 북한에 양보 한다”. 이를 요약하면.

<<부시 정부는 북한과의 핵 협상에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나쁜 결과를 낳으려 한다…북한은 지난해 10월3일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벽하고 정확하게 연말까지 제출한다”고 약속했다. 프루토늄은 소량이라고 했고 우라늄에 대해서는 미국의 주장을 ‘인지’ (acknowledge)한다고 했다. 외교적 용어로 ‘인지’가 ‘수락’(accept)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고 “당신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는 정도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미국의 대 북한 자세가 확고하다고 했다. 그렇기를 바라지만 걱정 스럽기도 하다. 그는 대외정책에서 이루어 놓은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업적을 남기기 위해 돌진할지 모른다. 그의 후계 대통령(여자 일수도 있다)이 부담 없이 서명할 수 있도록 여러 비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 두 사람은 북한에 대해 강경파가 아니며 북한이 핵 제조와 확산을 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측에 있다.>>

지난주 ‘어제와 오늘’에서 빅터 차 교수도 ‘인지’ (acknowledge)라는 말을 썼다. ‘수락’(accept)대신 ‘인정’(admit)이란 말도 썼다. 요약한다.

<<대북 정책 측면에서, 양국은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핵 포기와 남북 협력을 연계시키려 한다는 점 때문에 앞으로 매우 긴밀한 정책 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북한간 소위 ‘싱가포르 합의의 구체적 내용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양국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짚을 부분은 북한이 스스로 과거 핵확산 활동을 ‘인정’(admit) 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이 발표를 대신해주고 북한은 이를 단순히 ‘인지’(acknowledge)하는 형식을 취할 것인지가 아니다. 이 합의가 북한의 우라늄 농축과 시리아로의 핵확산 등에 대한 우려를 감독하고 검증할 수단을 제공하는가 여부다>>

이명박 정부는 빅토르 차, 윈스턴 로드, 레슬리 겔브 등을 초청해 북한 핵의 ‘인정’과 ‘인지’, ‘수락’에 관한 세미나를 한번 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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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