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집권 후 불안 느낀 군중 선거에 대한 자기 합리화 필요숭례문 화재·한미 쇠고기 협상 등 맞물리면서 확대·재생산

“미국인이 먹는 쇠고기와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쇠고기는 다르다”

“수돗물 하루 요금은 170원이지만 민영화되면 14만원이 된다”

요즘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이른바 ‘광우병 괴담“과 ‘수돗물 괴담’의 한토막이다.

하지만 그러한 내용이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오히려 뜬소문에 가깝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괴담과 소문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확산일로에 있다.

게다가 종래 연예계의 단골 메뉴에 머물렀던 루머는 이제 사회 이슈가 되고 정치적 여론을 형성하는 등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숭례문 화재사건으로 떠돈 ‘정도전 예언’ 이나 ‘독도 포기설’, 한미 쇠고기협정과 맞물린 ‘광우병 괴담’, ‘수도 민영화설’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루머가 들끓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 심리전문가 니콜라스 디폰조와 프라샨트 보르디아는 책 <루머 심리학>에서 루머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생산되고 유포되는 지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루머를 ‘모호하고 위험하거나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정보’라고 정의한다. 이는 사교적 잡담인 ‘가십’과 구분된다. 저자는 “루머는 단순한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못 박는다.

이 정의에 따르면 올초 기자회견으로 화제가 된 나훈아 괴담과 인기 연예인 강호동의 염문설은 가십이지 루머가 아니다. 이에 반해 정도전 예언이나 광우병 괴담은 그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루머’라고 볼 수 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보, 즉 루머는 대중에게 믿음을 주고 루머의 주체가 신뢰성을 잃었을 경우 더 빠르게 전파되는 속성을 지닌다. 이때 부인이나 해명과 같은 공식적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하지 않으면 불확실성이 높아져 루머에 대한 수용성은 더 높아지게 된다. 잘못된 루머가 생성되면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 광우병 루머의 프로세스

이 책은 글로벌 기업인 의 사탄숭배 루머나 바그다드의 자살폭탄테러에 관한 루머 등 해외사례를 중심으로 연구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를 강타한 루머 역시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는 듯하다.

숭례문이 불타면 국운이 다해 큰 재앙이 닥친다는 이른바 ‘정도전의 예언’은 사회불안은 야기 시키는 대표적인 괴담이었다. 정부가 독도 주권을 포기했다는 것도 근거 없는 괴담으로 밝혀졌다.

한 네티즌이 자신을 AI 발생지역인 서울 광진구청 직원이라고 소개한 뒤 “서울에서 AI가 발생됐다는 보도가 나갔는데 정부가 이를 광우병 논란의 국면 전환용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사건이 확대 되자 “구청 직원이 아니며 재미삼아 글을 올렸다”고 자백한 사건도 있었다.

이 밖에 KT, 하나로 텔레콤 등 통신업체 들이 인터넷 요금을 종량제로 전환한다는 인터넷 종량제설, 수도 민영화설 등이 떠돌았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 같은 루머의 생산, 전파되는 이유에 대해 사회 불안 요소가 커지게 되면서 활발해졌다고 분석했다. 정부나 전문가가 진실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형성되면 대중은 근거가 없더라도 쉽게 동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최근의 루머는 루머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속성을 먼저 봐야 한다”고 말한다. 새 정부가 집권 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중은 불안감을 느끼고 자신들의 선거 행위에 대한 일종의 근거를 찾고 싶어 하는 심리가 형성됐다.

이 상황에서 숭례문 화재, 한미 쇠고기 협상, 독도 망언과 같은 정보가 쏟아지고 자신을 합리화를 하는 수단으로 루머를 유포시킨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이런 현상을 ‘자기 합리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광우병 괴담, 정도전 예언 등 이성적으로 판단해 전혀 사실이 아닌 소문에도 사람들이 쉽게 동요하는 것은 ‘그렇게 믿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루머의 주체이자 이를 통제해야 할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권위와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국민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상실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또한 명쾌하지 않은 대처가 불신감을 높이면서 루머에 힘을 실어 주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쇠고기 수입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공기업 민영화와 한미 FTA등 정부 개혁 정책을 내세우며 아젠다를 돌리려 했던 것이 오히려 역 효과를 내었다는 설명이다.

한 심리분석 전문가는 “많은 언론에서 ‘인터넷 발달’을 루머 확산의 원인으로 분석하지만, 실제 인터넷 문화가 발달한 미국과 일본에서 이런 현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인터넷은 절대 변수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 루머, 막을 수 있다

<루머 심리학>에서는 루머의 생성 과정을 이해하면 루머의 전파를 막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일단 루머가 유포되기 시작하면 점점 더 ‘믿을 만한 버전’으로 바뀐다. 그리고 루머를 듣는 횟수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루머를 믿을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루머의 내용은 초기 5~6명의 입을 거치면서 원래 메시지의 70%가 사라지는 대신 특정 내용이 또렷해진다.

전문가들은 루머 전파의 초기 단계에서 전략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략은 대개 루머 유포자를 밝혀 처벌하는 전략과 루머 주체와 중립 기관의 해명, 무시 전략 등이 있다.

최근 일련의 루머에 대해 정부가 취한 전략은 처벌 전략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처벌 전략의 경우 단기적 전략에 불과하며 성공확률 또한 높지 않다고 지적한다.

루머 대처에 관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은 루머의 주체가 이를 해명하는 일이다. 그러나 루머 주체가 신뢰를 잃었을 경우 효과가 없다. 한미쇠고기 협상에서 정부 측에서 미국으로 조사관을 파견하고 ‘이상 없음’을 공표함에도 대중이 이를 믿지 못하는 것은 정부의 권위와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이 중립자에 의한 해명이다. 이해 관계가 없는 중립자가 루머의 진상을 파악해 이를 알리는 것이다. 특히 대중에게 신뢰받는 권위자의 해명은 루머를 불식 시킬 수 있다. 독도 망언과 숭례문 화재와 같은 ‘허무 맹랑한’ 루머는 이 과정에서 모두 불식됐다. 그러나 한미 쇠고기협상의 경우 중립자에 해당하는 매스컴이 이에 대해 오히려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터라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황상민 교수는 “루머의 주체가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루머의 주체인 정부가 신뢰를 가져야 할 때다. 진정성을 보여주어 대중이 스스로 믿게 만들어야 풀릴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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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