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UCC·유튜브… 대중이 창작·유통 주도권 행사, 대변화에 예술계 적응 못해

웹 2.0이 사회 전반에 힘을 발휘하고 있다. 참여ㆍ개방ㆍ공유를 키워드로 하는 웹2.0은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참여민주주의 양태를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문화에도 새 조류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 웹 2.0 현상은 주체와 소통의 양식을 바꾸면서 문화계의 지형마저 흔들고 있는 양상이다. 쌍방향성에 강점이 있는 웹1.0 시대를 넘어 다중이 예술 창작과 유통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웹 2.0 시대 우리 문화의 현주소를 짚어 본다

#1. A씨는 매일 <텔레가든>(www.usc.edu/dept/garden/)에 들어간다. 웹상에서 로봇팔처럼 생긴 장치를 작동시켜 자신만의 정원에 있는 꽃과 식물에 물을 준다. 날씨가 맑으면 햇빛을 쪼여 광합성을 시키기도 한다. 놀랍게도 A씨의 정원 관리는 실제 오스트리아 린츠에 있는 정원 관리에 그대로 반영된다.

#2. B씨는 가끔 <커뮤니마주>(www.communimage.ch)에 접속한다. B씨는 접속할 때마다 자신이 만든 그래픽을 업로드한다. 그는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자신 역시 창작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B씨는 웹상의 미술관에서 작가면서 관람객이다.

A씨가 관리한 오스트리아의 꽃밭은 어떻게 됐을까. 예상을 깨고 꽃과 식물은 잘 자랐다. 정원관리에 참여한 네티즌들이 채팅을 통해 서로 의논하며 의사소통을 꾀했기 때문이다.

B씨가 업로드한 그래픽 역시 다른 네티즌의 것들과 합쳐져 하나의 콜라주로 완성했다. A씨와 B씨는 이제 더 이상 관람객에 머물지 않고 관람객면서 동시에 한 미술작품, 퍼포먼스의 작가가 된 것이다.

비단 A씨와 B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술계 전반에 전문 작가와 수용자의 경계를 뛰어넘는‘웹2.0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예술의 ‘주도권’을 다중(多衆)에 돌렸다. 뿐만 아니라 ‘예술형태’를 다양화 한다. ‘수용’의 즐거움도 높이고 있다. 이런 웹2.0 현상은 미술, 영화, 음악 등 예술 전반에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화예술계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주체'와 '형식' 확 바뀐 미술계

미술가 앤 푸차런, 마크 아고가 2006년 12월 아트센터 나비에 전시한 작품‘풋 프린트' 설치 모습. 휴대폰 이용자들이 직접보낸 발 사진을 모니터 화면에 담아 전시했다. (사진제공=아트센터 나비)(위)
한 웹 화랑(www.0100101110101101.org)의 첫화면. 네티즌들이 직접 올린 그래픽 미술작품이 보인다.(자료제공=조충연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아래·왼)
포테이토랜드닷오알지(www.Potatoland.org) 첫 화면에 찌그러진 건물 이미지가 보인다. 사용자가 직접 그래픽으로 만든 미술 작품을 올리고 중요도에 따라 배치하는 웹 미술관이다. (자료제공=조충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아래·오른)
미술가 앤 푸차런, 마크 아고가 2006년 12월 아트센터 나비에 전시한 작품'풋 프린트' 설치 모습. 휴대폰 이용자들이 직접보낸 발 사진을 모니터 화면에 담아 전시했다. (사진제공=아트센터 나비)(위)
한 웹 화랑(www.0100101110101101.org)의 첫화면. 네티즌들이 직접 올린 그래픽 미술작품이 보인다.(자료제공=조충연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아래·왼)
포테이토랜드닷오알지(www.Potatoland.org) 첫 화면에 찌그러진 건물 이미지가 보인다. 사용자가 직접 그래픽으로 만든 미술 작품을 올리고 중요도에 따라 배치하는 웹 미술관이다. (자료제공=조충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아래·오른)

웹2.0으로 제작 ‘주체’가 가장 다중화한 곳은 미술계다. 웹 사이트 (Jodi.org, 0100101110101101.org, Potatoland.org 등)에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HTML을 이용한 흑백과 칼라의 혼합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미술가로 정평 난 작가가 아니더라도 그래픽 프로그램에 익숙한 누구나 웹상에서 미술 작품을 만들어 올릴 수 있다.

작품의 ‘형식’ 역시 바뀌었다. 포테이토랜드닷오알지(Potatoland.org)에는 찌그러진 건물 상 등의 사용자 제작 그림이 있다. 때로 사용자가 모니터를 옆으로 돌려서 감상하도록 만드는 작품들을 웹상에 전시했다.

서울시는 작년 12월부터 올 2월까지 신청자들의 연인에 대한 프로포즈 동영상이나 편지를 특정 날짜와 시기에 청계천 9가 그물다리 밑의 워터스크린에 쏴주는 ‘청원의 벽’ 행사를 하기도 했다.

지난 2006년 12월 아트센터 나비에서 열린 "모바일 아시아 2006" 국제공모전에서는 바닥에 30여대의 모니터를 설치하고 SK텔레콤 휴대폰 이용자들이 전송한 발 사진을 보여준 앤 푸차런 , 마크 아고 작(作), ‘풋 프린트(Footprints)’가 대상을 수상했다.

■ '제작자'와 '유통'양식 바뀌는 영화계

영화 ‘제작자’와 ‘유통’양식 역시 웹 2.0으로 인한 변화를 겪고 있다. 독립 영화를 만들어도 유통이 힘들었던 과거와 달리 유튜브와 같은 웹상의 유통망에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디지털카메라 등 가격이 떨어짐에 따라 자재 구입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것 역시 한 원인이다.

무엇보다 온라인으로 보급된‘편집 도구’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이런 변화를 이끌었다. 온라인에서 프리미어 같은 동영상 편집기를 내려 받아 편집 프로그램에 전문적 지식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도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 2006년 독립영화 감독 7명이 5분씩 만든 영화를 이어 붙인 <불타는 필름>은 웹2.0의 시대 편집환경과 유통망 변화에 따른 국내 사례로 볼 수 있다.

‘할리우드’역시 웹2.0 이용에 ‘적극적’이다. 2000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블레어 위치2>는 유튜브 등의 오픈 커뮤니티에 예고편을 올리는 등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영화가 재밌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개봉 뒤 흥행가도를 달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후 많은 영화들이 <블레어 위치2>를 따라 오픈 커뮤니티를 공략하기 시작한다.

■ '웹 2.0'선율 따라 흐르는 음악

‘음악선율’ 역시 ‘웹2.0’을 따라 흐른다. ‘영미권의 싸이월드’같은 마이스페이스닷컴( www.myspace.com )에는 가수들이 자기 음악을 홍보하기 위해 음원을 올리고 있다. 영국가수 린디 알렌은 마이스페이스닷컴에 일부 가수의 음악을 비판하는 직설적 내용이 담긴 가사의 노래를 올려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는 정식으로 음반을 취입하고 가수로 데뷔하는 기회를 잡았다.

‘스타’들 역시 ‘웹2.0’에 적응하고 있다. 라디오 헤드는 작년 신보 ‘In Rainbow’를 음반으로 발매하기 전 MP3 음원 파일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놀라운 것은 가격을 소비자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게 했다는 것. 소비자가 음원을 공짜로 가져가도 상관 없도록 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음원을 내려 받은 100만여명 중 40만여명이 돈을 냈고 라디오 헤드는 300만 달러의 수익을 얻는 ‘대박’을 터트렸다.

‘직거래’는 확실히‘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될 수 있다. 음악 전문 웹진, 웨이브(http://www.weiv.co.kr) 편집장인 최민우 씨는“라디오 헤드는 웹2.0 환경을 잘 활용한 음원 판매 전략으로 소속사에서 음반을 팔 때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었다”며 “자신이 원하는 가격에 구입한 소비자 역시 득을 본 것”이라고 말한다.

■ '적응' 못하는 국내 예술계

웹 사이트 커뮤니마주(www.communimage.ch)에 오른 사용자 제작그림. (자료제공=조충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맨아래)

‘주제’와 ‘소통’의 자유. 웹2.0이 준 선물을 과연 우리는 잘 활용하고 있을까. 미술평론가 반이정 씨는 “제도권 미술계에서 (웹2.0을 활용한) UCC로 작업했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반 씨는 이어 “UCC 작품 중에도 예술적인 창작물들이 있지만 제도권 미술계에서는 이를 작품으로 보지 않는다”며 분위기를 설명한다.

‘영화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원승환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 소장은 “6mm 카메라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용량이 올라가고 공개된 편집 프로그램이 많아져 영화제작에 누구나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면서도 “아직 국내에는 웹2.0의 사례로 내세울만한 이렇다 할 작품이 없어 아쉽다”고 밝혔다. 국내영화계가 호기를 잘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음악계’의 적응도는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음반제작자협회 등은 불법 음원 다운로드를 받지 말자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지만 디지털 싱글 발매 등 웹2.0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지는 못하다.

큐베이스, 프로툴 같은 작곡 프로그램을 누구나 다운 받아 손쉽게 음반을 제작할 수 있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파일공유 사이트에 언제든지 음악을 띄워 평가 받을 수 있는 대중적 음악 제작, 유통 환경과 동떨어져 있는 실정이다.

음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대중음악계는 웹2.0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중과 괴리돼 있다”며 “소비자들이 다양한 루트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기 보다는 불법 음원을 다운로드 받으면 혼난다는 계도 차원에 머무르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한다.

■ 웹2.0시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게 전문가 조언이다. <디지털 아트>라는 책을 쓴 조충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강사는 “‘다중의 자기선언’시대인 웹2.0에 걸맞게 작가와 수용자가 역전되는 상황을 뛰어넘어 이제는 대중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예술의 주체가 ‘누구나’가 된다는 것을 예술계가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설명한다.

‘쌍방향성’에 강점이 있는 웹1.0 시대를 넘어 다중이 예술 창작과 유통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시대가 웹 2.0 시대이며 “이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다.

조 강사는 “블로그를 통해 다중 개개인이 예술작품을 올리고 편집하고 접근권을 행사하는 것”을 그 예로 꼽는다. 마치 신문은 기사를 쓰고 대중은 읽기만 하는 기성언론 시대에서 벗어나, 다중이 기사를 쓸 뿐 아니라 우선 순위를 가르는 등 편집권을 행사하는 뉴미디어 시대를 맞은 것과 같다.

대중은 이미 여의도 정치를 뛰어넘은 스스로의 힘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인터넷방송과 통신수단 등 각종 웹기반을 활용해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예술계가 이제 고민을 시작할 시점이라는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무게감이 있다. ‘집단지성’으로 만든 ‘꽃밭’도 아름답게 자랄 수 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