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한반도, 평화, 전쟁을 생각할 때면 우리는 어느 사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남과 북에 긴장이 일 때마다 김 위원장은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살펴 보게 된다.

‘어제와 오늘’ 칼럼에는 5월20일호에 “장진성, 젠킨스 그리고 김정일”을 썼다. 5월27일호에는 “란돌프 박사가 본 김정일”을 썼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많은 기자들이 “한반도 통일문제의 헨리 키신저”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지난 10일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7ㆍ 7선언으로 시작된 새로운 남북관계와 북핵 20년에 관해 ‘피스메이커’라는 회고록을 쓴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다. 그는 1934년 평북생으로 51년 선천 신성고 재학시절 남하해 육사13기(57년), 서울대 철학과(61년), 서울대 행정대학원(석사), 육사 교수(64-69), 합참 전략기획처 과장(73-76), 육본 전략처장(77-80년), 소장 예편(80년), 호주대사(84-87), 외교안보연구원 원장(88-92), 남북고위급회담 대표(90-93년), 통일원 차관(92-93), 남북고위급회담 대표(90-93년), 통일원 차관(92-93),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원(94-), 아태 평화재단 사무총장(95-98),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98-99), 25대 통일부 장관(99.5-99.12), 국정원장(99-2001), 통일부 장관(2001.3-2001.9),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2001-2003)를 지냈다.

그는 2000년 6월3일 국정원장으로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특사가 되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처음 만났다. 그 후 두 차례 더 김 위원장을 만났다. 임 특보는 김 위원장을 어떻게 봤을까. 이를 요약한다.

<<“반갑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갈색 점퍼 차림의 복장, 굽이 높은 키높이 구두, 뚱뚱한 몸매, 머리칼을 올려 세운 헤어스타일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5월29일부터 31일까지 중국을 다녀오는 길에 이곳에(신의주) 머물게 되었습니다. 멀리 이곳까지 오시라고 해서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안녕하십니까?” (정상회담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1시간여 경청)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야당시절 오랫동안 고난과 납치, 사형선고 등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민주화 투쟁을 계속하여 마침내 대통령이 된 성공한 노정치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도 매우 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김 대통령을 존경해마지 않는다는 점부터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김 대통령은 겸허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양에 오시면 존경하는 어른으로, 전혀 불편이 없도록 품위를 높여 잘 모시겠습니다. 공산당 잡는 국정원장이 오셨으니 솔직하게 말하겠는데, 과거 중국 장쩌민 총서기나 그 어떤 외국정상의 평양방문 때보다 더 성대하게 최고로 모시겠습니다. 기쁜 여행이 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모실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김위원장의 말투는 정중하면서도 화끈했다. ‘음습하고 괴팍한 성격파탄자’라는 세간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김 대통령에게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첫 인상을 이렇게 보고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며 말하기를 즐기는 타입입니다. 식견이 있고 두뇌가 명석하며 판단력이 빨랐습니다. 명랑하고 유머감각이 풍부한 스타일입니다. 수긍이 되면 즉각 받아들이고 결단하는 성격입니다.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말이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주제의 핵심을 잃지 않는, 좋은 대화 상대자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연장자를 깍듯이 예우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의 보고를 듣고 난 김 대통령은 이제 안심이 된다며 특사방문의 성과에 만족해 했다.

2000년 6월13일 오전 10시30분 공군1호기는 평양 순안비행장에 안착했다.… 김 대통령과 점퍼차림의 김 위원장이 반갑게 악수하며 첫 상봉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목격하며 나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특히 김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나란히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분열을 받는 모습은 너무도 감격적이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총사령관인 대통령이 아직도 법적으로는 ‘전쟁상태’에 있는 적군의 의장대를 사열하다니,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던가!>>

김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서 받은 첫 인상은 임 국정원장으로부터 보고 받았던 내용과 비슷했다. 매를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부 장관은 남북정상회담 후 며칠 뒤인 6월 23일 방한해 김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 어땠어요?”라고 물었다. 올브라이트가 2003년에 낸 회고록 ‘마담 세크러터리(madam Secretary)’에 나오는 대목을 요약한다.

<<김 위원장과 적어도 여섯 시간 이상을 이야기한 경험을 가진 김 대통령으로부터 김 위원장의 인격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지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게 무언지를 알았다. 그는 조금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보는 충분히 갖고 있었다. 북의 극난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절망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 차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정상적 관계였다. 그것만이 미국의 위협에서 빠져 나오고 세계와 함께 갈수 있는 길임을 알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임동원 전 외교안보통일 특보, 매를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부 장관을 평양에 초청해 그들이 쓴 ‘회고록’에 대해 정담(鼎談)을 나누길 바란다.

<저작권자 ⓒ 한국미디어네트워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