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더불어 사는 흑인들의 생존을 위한 삶 속에서 문화·역사의 참맛 깨달아

1989년 초가을에 나는 커피를 처음 만났다. 일본의 한 작은 도시 낡은 커피공장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생전 처음 별천지를 보았다. 공장안을 가득 메운 커피연기, 코끝을 휘감는 짙은 커피향.

잘 볶아진 커피를 꺼내기 직전 요란히 노래하는 팝핑 소리,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떠드는 소리..., 한순간 펼쳐진 이 뜻하지 않은 광경은 내게 일생일대의 큰 충격이었다. 가슴이 마구 쿵쾅거렸다. 공장을 나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내내 흥분한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다.

신선했던 그때의 충격은 지금 돌이켜봐도 생생하다.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어렵사리 구한 일본책과 씨름을 했다. 짧은 일본어 독해를 통해 알게 된 얕은 상식하나를 깨닫고는 마치 천하를 얻은 듯 득의양양 했었다.

흐린 스탠드 불빛 아래 큰 텅치를 책상 앞에 바짝 구부리고는 흠이 있는 결점두를 하나하나 골라내느라 동이 트는 줄 모르기도 했었다. 진정한 커피맛을 찾는다며 거푸 30잔의 커피를 마시고는 한참을 수전증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그 후 커피를 생업으로 삼으며 중남미와 남아시아의 어려 커피산지, 그리고 커피문화가 발달한 유럽과 미국 등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커피의 고향 아프리카에 대한 그리움은 채워지지 않았고 결국 짐을 꾸렸다.

인생에서 커피가 차지해버린 사람의 ‘귀소본능’이라하면, 조금은 쑥스러운 표현이 될지 모른다. 커피 한 잔이 오기까지 어떠한 손들을 거치는지, '커피‘를 둘러싼 문화와 역사는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부끄러운 자성은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돌았고, 마침내 일상에서 ’테이크아웃‘해 아프리카로 향하게 만들었다.

2006년 개관한 커피박물관에서 커피탐험대원 공고를 통해 수 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두 명의 대학생 김상범과 김의진을 선정하였고 여기에 박익찬 다큐멘터리 피디가 합세했다.

이렇게 커피에 대한 열정 하나로 뭉친 4명의 커피탐험대는 2007년 2월 커피의 본고장에서 1200년의 커피역사를 확인하다는 사명을 안고 검은 대륙 아프리카로 향했다.

케냐,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지부티와 예멘, 터키에 이르는 여정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커피가 전 세계로 펴지는 발자취를 담고 있다. 이 길을 ‘커피로드 -CoffeeRoad'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커피 수출이 국가 수입을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사람이 커피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다. 커피나무를 재배하는 커피공장, 가공·처리 과정을 담당하는 밀(Mill)과 공장, 수출을 담당하는 기업 그리고 제도적 지원을 하는 정부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커피로드에서도 삶의 명암은 분명했다. 케냐,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등지에서 ‘커피’는 경제 성장의 활로를 모색하는 중요한 기반이었지만 이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이들은 여전히 녹록치 않은 삶을 견디고 있었다. 여기다 마약의 한 종류인 카트가 유행하면서 많은 농민은 커피밭을 뒤엎고 있었다.

커피체리를 수확해 직접 가루를 내어 소중한 손님에게 대접하던 에티오피아의 ‘커피 세레모니’ 같은 전통문화 역시 테이크아웃 전문점의 무서운 기세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커피로드의 커피는 단순히 마시고 즐기는 음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귀한 식량인 동시에 신을 경배하는 신성한 예물이었으며 비통에 잠긴 이웃을 위로하는 친구이자 아픈 육체를 치유하는 따뜻한 손이었다. 우리는 아프리카 커피로드에서 비로소 ‘진짜커피’를 만났다.

<커피기행> 저자. 왈츠와 닥터만 커피 박물관 관장.


박종만 drmahn@wndcof.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