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유형을 그 감정 표현 정도에 따라서 세가지로 나누면 폭발형volatile, 확인형validator, 그리고 회피형avoider으로 나눌 수 있다.

폭발형은 감정의 표현이 급하고 그 정도가 심하여 상대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교환도 풍부하지만, 감정이 상하면 다시는 상대하지 않을 것처럼 심하게 싸우며 주변 사람이 말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화해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좋은 관계로 회복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언제나 자기 위주의 변덕쟁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

확인형은 일단 감정의 표현보다 자신이나 상대가 납득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면 몹시 즐거워하며 그 목표를 추구한다. 하지만 때로는 사소한 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며, 자신의 합리적인 의도가 통하지 않으면 심하게 화를 내어 주변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회피형은 불만스러운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갈등으로 드러나는 것을 회피한다. 따라서 이런 사람이 어떤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 하는 일은 드물며, 이런 때에도 정확히 그가 원하는 것을 알기 쉽지 않다. 자신의 의견이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으면 쉽게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은 더 큰 감정의 상처를 받지않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부부 간에 이러한 유형이 일치하는 경우에는 대체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부부 모두가 폭발형인 경우에는 서로 주고받는 감정이 풍부하여 애정의 표현도 거리낄 것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싸움에 들어가면 언제 어떻게 끝이 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부부는 “이제는 도저히 못 참겠으니 갈라서자”는 말도 쉽게 하고 화해도 비교적 쉽게 하지만, 막상 이혼을 결행하고 나서는 서로 후회하기도 한다. 이들은 부부 사움을 하다가 감정이 격앙되어 합리적인 판단이 곤란하게 되기 쉬우므로, 사전에 어느 한 사람의 요청이 있으면 쉬는 시간을 갖도록 약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부 모두 확인형인 경우에는 폭발형처럼 감정이 격앙되기는 드물다. 하지만 서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다 보면 상대의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상처를 받은 쪽에서는 그 불쾌한 기억이 의외로 깊고 오래 갈 수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따지기를 좋아하던 배우자가 어느 날 다짜고짜 최후 통첩을 해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 정도로 오래 묵은 상처는 나중에 치유하기 상당히 힘들다. 이런 부부들은 이성적으로 보이는 상호 주장의 이면에 있는 감정의 상처에 주목하여야 한다. 즉 상대를 설득하여 굴복시키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는 방법이나, 상대가 힘들어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줄 줄 알아야 한다. 부부 사이에서 이러한 조정자 역할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다.

부부 모두 회피형인 경우에는 싸움이 잘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 재미없이 사는 부부로 보일 수 있으나 자신들은 깊은 정을 주고받으며 사는 경우도 있고, 뜻밖에 큰 실망을 지닌 채 포기하고 사는 경우도 있다. 이들 부부에게는 부부 모두를 잘 알아서 자신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부부 상호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부부 관계가 서서히 식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부부 간에 유형이 다른 경우에 나타난다.

폭발형과 확인형은 애초에 상대가 가지고 있는 성격 특성에 반하여 결혼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 후에 함께 살면서 폭발형은 확인형인 배우자가 몹시 냉정한 성격이며 또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거나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며, 확인형은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자기 감정만 내세우는 철부지처럼 느끼게 될 가능성이 많다.

확인형과 회피형이 함께 사는 경우에는 전형적인 추적자pursuer와 도망자withdrawer의 형태가 나타난다. 아내는 남편에 대한 애정의 표현으로 하루에 있었던 일을 다 이야기하고 또 남편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지만, 남편은 하루의 업무를 마친 후에 휴식을 갖기를 바라는 경우에서 볼 수 있다. 자신과 상대에 대한 적적한 이해가 없으면, 상대의 행동을 자신에 대한 분노의 표현으로 해석하게 된다. 결국 확인형은 더 열심히 추적하고 회피형은 필사적으로 도망하게 되어 부부관계가 점점 더 악화되기 쉽다.

회피형과 폭발형으로 이루어진 부부에서 도망자 / 추적자 유형의 최악의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 회피형인 배우자는 자신이 ‘막 돼먹은 형편없는 정신 이상자’와 잘못 결혼하였다고 생각하기 쉬우며, 폭발형인 배우자는 자신이야말로 속아서 ‘나를 사랑하지도 않고 인정머리도 없는 사람’에게 결혼하였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자신의 유형과 다른 배우자를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과 다른 점이 신선하고 믿음직스럽게 보여서 결혼하게 되지만, 막상 결혼한 이후에는 자신이 제대로 이해 받거나 사랑 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어 결혼 생활이 불행하게 되기 쉽다. 또 자신과 유형이 다른 상대도 역시 힘들어 하면서도 결혼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기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맹목적적인 부부간의 노력이나 합의만으로는 근원적인 부부 불화를 해소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서로의 입장을 정확하게 해석하여 배우자에게 전달해 주기도 하고 또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달 방법을 알려주는 등의 치료적 개입이 필요하게 된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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