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주요 순간 닥쳐오는 심한 불안감·좌절감반복된 연습이 최선의 방책

베이징 올림픽 남자 수영 자유형 400m 결승전이 시작하려는 순간, 보는 사람마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보는 이의 심정도 이런데 경기에 출전한 박태환 선수는 얼마나 떨렸을까?

박 선수는 4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직후 모 방송국과 가진 인터뷰에서 "엄청난 심리적 부담으로 결승전 전날 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박 선수가 심리적 부담을 잘 관리하지 못했다면 금메달을 따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평소 좋은 기록을 가진 선수가 지나친 스트레스와 불안 때문에 중요한 실전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닥쳐오는 불안심리.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 결정적인 순간에 닥쳐오는 불안, 극복하지 못하면 계속 결과만 망쳐

운동경기 뿐만이 아니다. 일생을 살면서 누구나 대입, 입사 면접 등 불안을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들을 맞게 마련이다.

수험생 김모(20) 군은 모의고사 때는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정작 대입시험장에 가서는 너무 불안해한 나머지 집중력이 저하돼 낙방하게 됐다.

최모(19) 양 역시 지난해 대입시험장에서 심한 불안과 함께 '시험을 망치고 말 것'이라는 부정적인 사고에 휩싸여 시험을 망치고 말았다.

3년 째 취직을 못하고 있는 박모(29)씨는 취업의 마지막 관문인 회사 임원들과의 면접 때마다 온몸이 심하게 떨리면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다.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경험하는 심한 불안감과 좌절감을 ‘수행불안’이라 부른다. 수행불안을 겪으면 지나친 긴장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맥박과 호흡이 빨라지고 혈압이 올라간다. 또, 몸은 굳어지고 머리는 어지러우며, 때로는 두통이 생기기도 하고, 집중력이 저하된다. 동공이 확장되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는데, 불안이 심하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기도 한다.

수행불안을 한 두 번 겪다보면 부정적인 사고가 계속 생기고, 다시 도전할 자신감마저 상실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심하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조차 두려운 사회불안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 중에는 내성적이거나 소심한 성격이 많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 않더라도 수행불안이나 사회불안증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고 정신과 전문의들은 충고한다. 청소년기나 성인기 초기에 남들 앞에서 심한 불안을 경험한 후 이것이 조건화되면서 만성화되는 경우도 많다.

■ 수행불안 극복엔 반복된 연습이 최고

소아 정신과 치료

남들 앞에서 승부를 겨뤄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심한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은 이들이 이를 특별한 질환으로 생각하지 않고 성격적으로 수줍음이 많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불안이 실패의 원인을 제공할 정도로 조절이 안 된다면 이는 치료가 필요한 정신과적 질환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불안을 조절할 수 있을까?

경희의료원 부속병원 정신과 백종우 교수는 반복된 연습이 가장 중요한 치료법이라고 소개한다. 반복되는 연습은 사람의 뇌 속에서 측두엽 우회하는 현상을 만들어낸다. 어떤 상황을 판단하거나 해석할 때 주로 전두엽을 사용한다. 그러나 측두엽 우회현상으로 전두엽을 거치지 않고 측두엽에서 자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이는 감정의 개입 없이 평소처럼 실력을 발휘하게 도와준다.

정신과에서 불안치료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는 것이 노출이다. 반복적으로 부딪히고 실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학습하게 되면 불안감을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단, 지금 내가 견딜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

연습은 실제해볼 수도 있지만 상상을 통해서도 할 수 있다. 이를 '인지적 리허설'이라고 하는데, 해야 할 과제와 상황을 머릿속에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상상해보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미리 대처하는 방법을 생각해 두는 것이다.

백 교수는 "실수를 하더라도 이로 인해 벌어질 최악의 일이 무엇인지, 최선의 일이 무엇인지, 또 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방법으로 수행불안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병원을 찾아 약물치료를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수행불안만 보이는 경우는 스트레스 상황에 앞서 소량의 프로프라노롤(propranonol)을 복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프로프라노롤은 졸림 없이 흥분한 교감신경을 가라앉혀 식은땀이나 심장의 두근거림을 줄여준다. 수행불안이 너무 심하거나 사회불안증이 있는 경우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와 같은 약물치료를 사용해 볼 수 있다.

백 교수는 "약물치료와 함께 '나는 실패할 거야', '난 할 수 없어' 등 불안과 관련된 부정적인 사고를 반복적으로 교정하는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불안심리 극복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움말: 경희의료원 부속병원 정신과 백종우 교수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