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치고 자녀에게 좋은 것 주기를 싫어하고 자녀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래서 부모들은 누구나 최선을 다해서 자녀에게 좋은 음식, 좋은 환경, 좋은 교육을 제공해주고, 할 수만 있다면 좋은 배우자까지도 마련해 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부부상담과 가족치료를 하는 필자가 보기에 부모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녀의 부모인 자신의 배우자와 서로 사랑하는 좋은 가정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리 오랫동안 연애를 하고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여 사는 부부라도 살다 보면 갈등을 겪게 되기 마련이다.

행복한 부부는 이러한 갈등들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반면, 불행한 부부는 갈등을 풀어보려는 시도가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 결국 모두가 고통을 겪는다. 부부는 한 가정을 지탱하는 튼튼한 두 개의 기둥이어야 하는데, 이 두 기둥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그 가정은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

가정이 불안정할 때 가장 큰 피해자는 아직 어린 자녀들일 가능성이 많다. 부부의 불화는 자녀가 어릴수록 치명적 영향을 주는데, 임신 중의 부부 갈등은 산모의 우울증을 야기하고 이후 자녀의 성장 및 학업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영아기나 유아기의 자녀에게 부모의 싸움은 단순한 말다툼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학령기 자녀에게 부모의 불화는 공포와 불안을 유발하여 자녀를 위축시키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공격적인 아이로 자라게 할 수도 있다.

부부가 정서적 이혼 상태에 있을 때 그 자녀는 자신의 발전을 희생시켜서라도 부모가 결혼을 유지하게 하려는 무의식적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우울이나 불안, 행동장애, 틱 장애나 식이장애 등을 보이는 아동들을 진료하다 보면 그 배경으로 부모가 만성적인 갈등 상태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랫동안 냉담한 관계로 지내면서 부모의 역할만 하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하고 살아가는 부부들도 있다. 비록 드러나게 싸우지는 않더라도 이처럼 서로를 무시하며 지내다 보면, 이들은 부지불식간에 자녀가 ‘내 편’이 되어줄 것을 기대하게 된다.

이럴 때 그 자녀는, 자신이 누구의 편을 들거나 들지 않거나 에 관계없이 결과적으로는 불가피하게 부모 중의 어느 한 분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부모 사이에서 ‘충성심 갈등’을 경험한다. 따라서 그 자녀는 자신의 명확하고 건강한 주체성을 수립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비슷한 경우로 부부 중의 어느 한 편이 지나치게 주도적으로 자신의 결정을 강요하면서 다른 가족들의 감정 상태는 무시하면, 다른 한 편은 나약하고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더 큰 갈등을 회피하려는 반응을 보이기 쉽다.

그러나 비록 싸움은 피했더라도 자연스러운 의견 표현을 억압받은 한 편은 그 내면에 적잖은 분노가 쌓여 있어서, 자식들과 ‘은밀한 연합’을 이루어 강한 상대에 대항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경우 그 자녀는 심정적으로는 약한 부모의 편을 들게 되지만, 반대로 강한 부모에 대해서는 배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느 경우에나 그 자녀는 융통성이 있으면서도 분명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데 실패를 겪고 결과적으로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겪게 될 수 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하더라도 부모 자신들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면, 그 자녀들은 이성교제를 포함한 대인관계에서나 배우자 선택에서 건강하지 못할 수 있다. 때문에 자녀를 잘 키우려는 부모들의 많은 노력의 일부는 부부 자신들의 관계 개선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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