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에 취해 1.4㎞ 트래킹… 가을이 익어가는 고향 풍경

전 국도가 개발 광풍에 휩싸여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제는 오지(奧地)라고 부를만한 지역이 그리 많지 않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태백산맥 아랫자락에 있는 강원도 일부와 경상북도 일부가 내륙의 숨겨진 땅 가운데 한 곳인데 강원도 태백 일부와 경북 봉화가 그 지역 안에 들어 있다. 그리고 그 곳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인 소나무의 귀족 금강송이 자라고 있다.

금강송은 해송과 육송의 교잡종으로 전봇대처럼 곧게 자라는데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푸른 가지가 선비의 기상과 닮아 있다. 때문에 꿋꿋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우리 기상을 표현하는 방법으로도 종종 활용된다.

그리고 예전부터 이 나무를 사용해 궁궐이나 세도가들의 집을 지었었기 때문에 문화재 보수용 나무로 사용된다. 몇 년 전 있었던 경복궁 보수공사 때도 이 나무 20여 그루가 사용되기도 했다.

금강송 가운데 봉화군 춘양면의 서벽리에서 자라는 금강송은 ‘춘양목’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금강송이 춘양역에서 기차에 실려 전국 각지로 보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춘양목이 명성을 날릴 때에는 어디 하나 굽은 곳 없이 하늘로 쭉 뻗은 소나무들이 문수산에 가득했다. 그렇지만 춘양목은 남벌로 인해 귀해졌고 지금은 축서사가 있는 문수산 반대쪽에 위치한 금강송 군락지에서만 겨우 찾아볼 수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서벽리의 금강송 군락지에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은 문화재 보수용으로 관리되고 있었기 때문에 산불이나 무단 벌목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산림청은 금강송의 중요성과 숲을 통한 우리 자연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제한적으로나마 개방을 하고 숲 해설가와 함께 솔 숲 트래킹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게 되었다.

서벽리 금강송 군락지는 춘양읍내에서 영월로 가는 88번 국지도를 따라가다 서벽삼거리에서 오전약수 이정표를 보고 915번 지방도로 내려서서 10여 분 달리면 서벽마을이 나타난다.

백두대간 남쪽에 위치한 서벽마을은 글자 그대로 서쪽의 벽(壁)이라는 뜻이다. 주실령이 뚫리기 전까지 이 마을은 서쪽의 옥돌봉(1242m)과 문수산(1205m) 줄기에 가로막혀 오랫동안 오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금강송 군락지가 남아있었다.

마을에서 금강송 군락지까지는 약 1.2km 정도. 어른 걸음으로는 20분 정도 걸린다. 대형버스는 마을에 세워두고 걸어 올라가야 하지만 작은 승합차나 승용차는 숲이 시작되는 곳까지 올라갈 수 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걸어 올라가는 것을 권한다. 금강송 군락지로 가는 임도는 가을이면 탐스럽게 달려있는 사과밭도 구경할 수 있고 도라지밭, 코스모스 등 가을이 익어가는 고향 풍경도 만날 수 있어 마음이 푸근해지기 때문이다.

금강송 군락지 가까이 오면 짙은 솔향이 코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시켜 주기 위해 간벌(間伐)을 하게 되는데 마침 간벌을 끝낸 탓인지 금강송 숲 여러 곳에는 건장한 남성의 허벅지 굵기만한 소나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고 짙은 솔향과 송진 냄새는 고요한 숲 속 여기저기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소나무 숲 산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소나무 밑둥 부근에 황색 페인트로 선을 그리고 일련번호를 적어놓은 것들을 만나게 된다. 숲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금강송 군락지 안에는 어른 한두 명이 겨우 껴안을 수 있을 정도로 굵은 소나무가 1500여 그루 정도 있는데 이 금강송들이 지난 2001년 궁궐이나 전통사찰 등 문화재의 보수 및 복원을 위한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으로 지정된 것 들이다.

군락지에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평탄한 임도들이 있어 솔향에 취해 개방된 길을 따라 자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소나무 가지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찬 금강송들 사이를 뚫려 있는 1.4km의 트래킹 코스를 약 45분 정도 숲 해설가와 함께 돌아보는 프로그램에도 참가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주말에만 운영되면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문의 영주 국유림관리소 054-630-4041) 트래킹 코스가 시작되는 곳에 있는 산림문화체험장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목공예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유서 깊은 고택에서 하룻밤 묵어가기


춘양면에는 금강송으로 만든 오래된 반가(班家) 만산고택이 있다. 을사조약 체결 후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한 강용(1846~1934)이 지은 집으로 전통적인 영남지방의 양반집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문화재이지만 지난 2005년부터 고택체험을 원하는 방문객에게 칠류헌과 서실을 개방하고 있다. 하룻밤 묵어가는 비용은 칠류헌 10만원(5인기준). 서실 5만원. 주문하면 종가댁 아침상도 맛볼 수 있다. (문의 054-672-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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