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길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경쟁사회 속 열등감 등 원인… 강력한 제도적 대응 필요

“악플에는 개인의 문제와 사회구조의 문제가 중첩해 있어, 이로 인한 폐해를 100% 개인 혹은 사회적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

7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의 진찰실에서 만난 만난 민성길 교수의 말이다.

민 교수는 아주 바빠보였다. 환자 상담을 마친 그는 인터뷰 직전에도 우울증의 원인을 묻는 홍보팀 직원의 질문에 간단히 답하고 있었다. 배우 안재환, 최진실에서 김지후까지. 연이은 연예인의 자살에 일부 네티즌의 ‘악플’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정신과 의사들이 바빠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게다.

상황과 달리, 민교수는 진료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백양목의 캠퍼스와 잘 어울리는 차분한 표정과 흰 가운 차림으로 말문을 연다.

실생활에서 분노나 폭력을 표현하는 것과 온라인상의 악플이 다를 바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악플 다는 것은 사회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고, 악플러는 화난 사람들”이라며 “악플은 막연한 불만, 패배의식, 열등감 등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한다.

‘열등감’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민 교수는 “패배는 근본적으로 상대보다 약해서”라며 “악플은 아무리 애써도 무능이나 다른 사람의 방해로 뜻을 이룰 수 없다는 피해의식에 싸인 사람들이 열등감, 패배감, 상실감에 빠져 나름대로 자기 감정을 풀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론에도 그의 원인 분석은 일관성을 유지한다. 임수경 씨의 아들 사망 때 악플을 단 사람들이 경찰 추적한 결과, 대부분의 악플러는 대기업 중견간부 등 사회 고위층이었지 않느냐고 묻자, 민 교수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들 역시 패배자”라며 “임수경 씨가 대표하는 그룹에 위기를 느껴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그룹이 수단이 없다 보니 악플을 택한 것 아니겠나”라고 지적한다.

‘상대’를 찾는 게 가장 빠른 해법이라는 지적이다. 민 교수는 “흔히 폭력적인 방법으로 화를 표출하는 사람들은 우체통을 발로 찬다든가 노상방뇨를 한다든가 한다”며 “성내고 싶은데 들어주는 사람 없으니 고립감, 외로움을 느껴 온라인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사회적 의사소통 구조와 악플의 상관 관계를 묻자 민 교수는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을 5:5정도로 보는 게 옳을 것”이라며 “하지만 사회구조상 의사소통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악플러들이 나는 전혀 잘못이 없는데 사회의 부조리 때문이라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한가지 원인만 강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한다.

최근 급증하는 악플 역시 사회적 문제와 연관이 있다는 설명이다. 민 교수는 “최근에 우리나라가 살벌해진 게 사실”이라며 “난폭한 사회가 돼가는 것이 악플의 급증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겠나”라고 말한다. IMF체제로 불리며 1997년 이후 전면화한 사회 전반의 경쟁으로 개인의 스트레스가 극심해졌다는 점에서 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 징후를 코미디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 새롭다. 민 교수는 “우리나라 코미디는 무대에 나와서 악을 쓰거나, 상대의 외모 등을 비하하며 인격모독성 공격을 끊임 없이 질질 끌며 계속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며 “김수현씨가 ‘엄마가 뿔났다’란 표현을 쓴 것 역시 자극적이고 미워하는 내용이 아니면 사람들이 쳐다보기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고리를 끊는 방법은 ‘단칼’이다. 악플 뿐 아니라, 술, 담배, 도박, 게임 등 중독성이 있는 것을 하다보면 의지가 몸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의지에 끌려가게 돼있기 때문이다. 민 교수는 “술을 먹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몸이 힘들지만 조금씩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세포수준에서 몸의 분자가 술에 적응해 양이 점점 늘기 시작한다”며 “알코올 중독자를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강제입원이 최선이듯이 악플도 단칼에 끊지 못하면 영원히 끊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의사적 방법’을 악플의 사회적 문제 해결에도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민 교수는 “자살하겠다는 사람을 강제 입원시켜 묶어놓으면 처음에는 반항하다가도, 이불 덮어주고 혈압을 체크하고 밥 먹여주는 등 보살펴주는 모습을 보고 나면 감동해서 반성하기 시작한다”며 “인권유린 논란보다 생명이 더 중요한 만큼 의사들이 이런 방법을 법에 의해 동원한다”고 말한다.

민 교수가 ‘최진실 법’의 도입을 적극 지지하는 이유다. 그는 “악플을 하는 사람 자신이나 피해자 모두를 위해서 악플에 대한 강력한 제도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악플하는 사람, 악플 때문에 상처 입는 사람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의’ 역시 필요하는 지적이다. 문제가 드러났으니 실증적 연구를 통해 효과가 큰 것을 택하되 의사소통의 통로를 제한하는 정도까지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댓글의 내용이 악의 요소인 폭력, 저주, 비난, 욕설에 해당한다면 제재하는 게 올바르다”면서도“비판까지 막는 것은 당연히 말이 안된다”고 설명한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