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선 후보자들 '표심 잡기'… 특화된 스타일로 메시지 전달

국내외를 막론하고 요즘 선거는 이미지전쟁을 방불케 한다. 내가 찍을 후보가 어떤 이미지를 가졌느냐에 따라 후보의 자질을 판단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오죽하면 선거판에 뛰어드는 정치인 치고, 내노라 하는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해 이미지전략을 세우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일까.

미국 대선전에서도 이미지전쟁이 치열하다. 더구나 이번 대선에는 민주당 여성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까지 포함돼 있어 주자들의 옷차림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다는 분석이다. 유권자들은 옷색깔이나 넥타이 매는 법까지, 주자의 스타일 하나하나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후보들은 패션이 표심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패션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다.

영국 가디언 지는 최근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의 스타일 비평 기사를 통해 선거 미국 선거판의 이미지전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리고 그들이 입는 옷과 표정, 제스처 등 이미지로부터 정치적 성향은 물론 후보자의 총체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고까지 강조했다.

미 대선 주자들의 패션에는 어떤 전략이 담겨 있을까.

여성 정치인의 스타일에 과도한 관심을 기울이는 국내 정치계와 크게 다르지 않게 해외언론도 여성후보자인 힐러리에게 먼저 비판의 잣대를 들이댔다.

가디언은 ‘힐러리는 왜 그렇게 옷을 못 입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선 캠페인에서 힐러리의 스타일 정책을 비난했다.

최초의 미국 여성 대통령을 노리는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적으로 보이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일부러 중성적이고, 볼품없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 가디언의 지적이다.

클린턴은 유세전에서 재킷이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바지정장을 주로 입고 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여성스럽고 세련된 스타일을 과시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지난해 미국 패션잡지 ‘보그’의 표지 모델로 나가기로 했다가 막판에 마음을 돌렸다. 패션지 모델로 나서면 지나치게 여성적으로 보여 선거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측근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자 이 잡지의 편집장이며, 세계 패션계를 좌지우지하는 ‘패션계의 대통령’(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안나 윈투어로부터 “남성적인 정장을 입어야 힘이 있어 보이던 것은 20년 전 얘기”라며 통렬한 비난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이 같은 여성스러움과 미적 감각을 일부러 감춘 클린턴의 이미지전략은 오히려 그의 인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민심은 멋진 스타일의 대통령을 원하기 때문이다.

한편, 가디언 지는 힐러리에 이어 오바마와 맥케인의 스타일을 비교한 기사도 내보냈다.

줄무늬 양복을 즐겨 입는 오바마 패션은 전체적으로 젊고, 현대적인 스타일을 가진 정치인으로 평가 받는다.

반면, 맥케인은 공화당 후보치고는 자유분방한 패션을 추구하는 편이지만 오바마에 비하면 보수적이라는 평이다. 예순 넘은 그의 나이도 이 같은 스타일에 한몫을 한다. 네모난 감색 정장에 폭이 넓은 넥타이를 즐겨 입는 맥케인은 형식과 권위를 중시하는 기성세대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다.

또, 오바마가 남성적인 이미지에 집착하는 대신 부드럽고 편안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반면, 맥케인은 활력 넘치고 남성적인 이미지를 풍긴다는 평가도 있다.

오바마는 친근하고 감성적인 접근을 시도할 때 요즘 남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슬림라인(slimline)’ 양복을 입고 멋진 스타일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자연스럽게 재킷을 벗어 버리는 그의 모습에서 친근감이 더해진다.

클린턴이 '보그' 지 표지모델 제안을 거절했을 때 오바마는 부드럽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맨스 보그 잡지 표지모델로 등장해 좋은 반응을 얻어내기도 했다.

맥케인 후보의 남성적이고, 귀족적이며, 기성세대적인 이미지는 아무래도 친근감 면에서 오바마에 뒤쳐진다는고 가디언 지는 논평했다.

가디언은 세 후보 가운데 오바마의 스타일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맵시 있는 그의 패션과 격식 없이 친근한 이미지가 대중들의 호감을 높이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선 옷잘입는 오바마를 두고 알맹이 보다 껍데기가 좋은 것 아니냐는 비난 섞인 우려의 목소리도 내놓고 있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패션의 정치가 선거에 얼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후보들의 패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표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유권자들은 젊고 현대적이며 친근한 스타일의 후보자에게 보다 높은 점수를 매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 미 대선후보 패션전략에 대한 평가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전체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보여준 그의 패션은 혹평의 대상이 되고 있다. 클린턴은 여성적인 옷차림 대신 재킷의 길이가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바지정장에 노란색 등 지나치게 화려한 색상의 재킷과 액세서리로 밝고 프로페셔널한 인상을 주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노란색 정장을 자주 입고 나오는 그에게 "노란색 옷은 힐러리에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일부러 여성적인 옷차림을 거부하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힐러리가 남자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다"는 빈축을 사기도 한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옷을 잘 입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바마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젊고 친근하면서도 맵시나게 입는다. 남자다움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딱 붙는 줄무늬 양복은 트렌디하다.

하지만 AP통신에 따르면 일각에서는 "오바마의 패션은 훌륭하지만 대선 후보가 콘텐츠보다 멋내는 데만 신경쓴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존 맥케인(John McCain)

스웨터 등의 편안한 옷차림도 즐기지만, 유세장에서는 역시 공화당 후보답게 격식있는 정장을 입어 친근감이 덜하다.

패션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패티 파오는 "매케인은 경선 득표율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대통령다운' 옷차림을 선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70이 넘는 나이에도 건장하고 남성스러운 이미지를 과시한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