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2분간의 이국적 음악 여정… 한국 대중가요 사상 최장의 명곡평생 안마사로 살다 세상 등진 시각장애인 가수 윤용균의 유일한 음반

한국 대중가요 사상 가장 긴 곡은 무엇일까? 1973년 신중현이 노래하고 록그룹 ‘더 맨’이 연주한 ‘거짓말이야’다. 김추자의 히트곡으로 유명한 이 곡은 신중현과 더 맨의 22분이 넘는 차분한 보컬과 환각적인 연주로 명곡의 지위를 획득했다.

‘더 맨’은 숱하게 많은 신중현 그룹 중 음악적으로 최상위에 위치한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이 같은 극찬에는 이 무지막지한 롱버전 ‘거짓말이야’가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룹 덩키스 시절부터 신중현이 오랜 기간 함몰되었던 사이키델릭 음악은 이때부터 제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보통 히트곡의 요건으로 ‘3분’을 넘기지 말아야 미덕인 시절이 있었다. 3분을 넘기면 방송 선곡에서 제외된 것은 일종의 관례이자 금기였다. 관례와 금기를 깨는 것은 일종의 혁명이고 실험이다.

이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혁명적 실험에 다름 아니다. 사상 최장곡과 함께 신중현사단의 전설적인 시각장애인 가수 윤용균의 유일한 음반이라는 보너스는 이 음반의 가치를 배가시킨다.

윤용균의 이름을 기억할 대중은 없다. 시각장애인 가수라 하면 이용복만이 독야청청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가수로 기록될 수도 있었다.

서울맹학교 시절 그는 이용복과 함께 '켁터스'라는 교내 록밴드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가수의 꿈을 꽃피운 이용복과는 달리평생을 안마사로 살다 쓸쓸하게 세상을 등진 비운의 가수다.

1973년에 발매된 이 음반은 4년 앞서 발표될 수 도 있었다. 서울맹학교 졸업반이었던 윤용균은 1969년 4월, 솔로가수의 꿈을 안고 당시 주목받는 작곡가로 급부상한 신중현을 찾아갔다.

시각장애인이지만 그의 탁월한 음악성을 알아본 신중현은 음반발표를 위해 창법지도를 아끼지 않았다. 맹학교 졸업 때까지 데뷔의 길은 쉽게 열리질 않았다. 그래서 서울 북창동의 ‘지 다방’등 시내 중심의 다방과 살롱무대에서 가수가 아닌 무명 피아니스트로 음악생활을 시작했다. 1971년 2월. 드디어 데뷔음반 취입 기회가 왔다.

원래 중창단에서 베이스 파트를 맡았던 저음의 윤용균은 신중현의 곡을 부르기 위해 힘겨운 연습을 통해 고음창법을 소화해 냈다. 당시 신중현은 “성량이 풍부하고 보이스 컬러도 좋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고 그를 평가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가수라는 이유로 취입은 지연되었다. 3년이 지난 1972년 2월. 그는 기타 신중현, 베이스 이태현, 드럼 문영배, 키보드 김기표, 오보에, 테너 섹스폰 손학래로 구성된 록그룹 ‘더 맨’의 세션으로 “내곁에 있어주오” ‘나의 연인’, ‘봄은 오더니’ 3곡을 녹음했다. 모두 신중현 곡이다.

음반 발표에 앞서 1972년 5월 KBS 라디오 ‘오후의 로터리’ 프로에 출연해 3곡을 불렀다.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방송을 타자 ‘제2의 맹인가수’로 잠시 주목을 받았다. 활동을 시작했지만 음반 발매 연기가 발목을 잡았다.

또다시 1년이 훌쩍 지나갔다. 1973년 5월. 2곡을 추가 녹음했지만 앨범을 내기엔 곡이 모자랐다. 그 바람에 진기록이 탄생되었다. 신중현과 더 맨은 땜빵으로 B면을 꽉 채우기 위해 대중음악사상 최장의 연주를 시도했다.

신중현의 착실한 보컬로 시작되는 이 놀라운 트랙은 김기표의 현란한 키보드 멜로디와 신중현의 몽롱한 기타 애드립으로 시공을 배유한다. 7분쯤 되면 아라비아 여행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음악여정으로 접어든다.

10분이 임박하면 느리고 묵직한 기타 사운드의 향연과 함께 환상의 나라로 행로가 변경된다. 이후 지루할 만큼 반복적 리듬은 15분 쯤 환각세계로 인도한다. 이 노래가 우리가 아는 ‘거짓말이야’임을 다시 알기위해선 적어도 19분쯤 들어야 한다.

그리고 환각적인 엔딩. 신중현 사이키델릭의 정수라 할 만 한 22분 37초 동안의 환상 적 음악여정은 경이로움 자체다. 그러나 금지로 점철된 신중현의 음악인생과 함께 이 음반도 저주받은 걸작의 길을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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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