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군수업체 사장 스스로 '무기'가 되다슈퍼맨 류의 할리우드 영웅물 공식 그대로… 무기상의 도덕적 성찰은 '아이러니'

대중영화는 지루함에 저항한다. 독립영화는 상투성과 투쟁한다. 지루함은 상업영화 관객에 대한 결례이고 모독이기도 하다. 지루함과 투쟁은 상업영화의 기획부터 시작하여 후반 작업에서 최종 편집본을 마칠 때까지 지칠 줄 모르게 진행된다. 좋은 영화에 대한 기준은 서울의 초등학교 학생부터 제주도의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각각 다르고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근거를 갖고 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선생은 “좋은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무언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술 같은 것”이며 “영화 안에 무언가를, 지혜를, 깨달음을, 역사를, 눈물을 혹은 웃음을, 사유를 훔치러 온 일개 영화평론가인 나를 기꺼이 환대하면서, 하지만 내가 절대로 훔쳐갈 수 없는 배움을, 오직 배울 수만 있는 깨달음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펼쳐놓고 보여주는 영화”라고 소상하게 밝힌 바 있다.

필자에게 좋은 영화는 ‘만나면 만날수록 더 만나고 싶은 깊은 삶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점화시키는 대상’이자 ‘관객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거나 서로 다른 이유로 주거나 받았던 깊은 심연에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정신적 항생제이면서 동시에 영혼의 깊은 종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영화’다.

할리우드에서 좋은 영화는 비교적 선명한 것 같다. 할리우드는 관객에게 재미를 주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최대의 이윤을 발생하게 하는 영화를 지지한다.

대중성을 확보하여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는 것은 할리우드와 충무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화두다.

이 화두는 웃기는 장면으로 관객을 사로 잡으려는 코미디나 눈물샘을 자극하여 흥행 스코어를 올리려는 멜로같은 장르로 풀거나 송강호, 전지현, 이영애를 캐스팅하여 검증된 영화임을 과시하려는 스타 마케팅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재능있는 프로듀서와 역량있는 감독과 연기력 검증된 스타가 연합전선을 펼친다하더라도 다수관객의 지지는 극히 예외적으로 한 두 번에 불과하다.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라는 미국 상업영화의 지침을 가장 충실하게 지키는 영화가 <아이언 맨>이다. 이 영화는 9할의 재미와 1할의 정치적 이데올기를 뒤섞었다. 재미는 수퍼맨과 배트맨, 스파이더맨으로 이어지는 영웅시리즈의 전통에서 비롯된다. 영웅은 모든 관객들의 잃어버린 꿈이며 결핍을 채워주는 대상이다.

조국 교수는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박정희는 가장 인기있는 정치상품”이라고 표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기는 역사적 공과에 대한 경중을 헤아리는 문제보다 가난으로부터 한국민을 해방시켜준 영웅 이미지에 대한 지지에서 비롯된 것 같다. 주인공이 영웅의 이미지로 포장될 때 관객의 지지율 상승은 두부에 못박는 일만큼 쉽다는 사실을 제작자는 알고 있다.

<아이언 맨>은 세계 최고의 군수산업체 대표이면서 천재적인 과학자인 토니 스타크를 주인공으로 내정하면서 영웅 이미지 상품화 전략을 구체화하였다.

그는 처음 만난 취재기자와 만나자마자 눈이 맞아 섹스를 하고 다음 날은 충직한 비서인 페퍼 포츠(기네스 펠트로)가 사태를 수습하고 자신은 일에 빠져있는 일중독자다. 그는 자신이 물려받은 부와 천재적인 재능을 자산으로 정치적 영향력과 여성에 대한 경쟁력을 갖춘 영웅이다.

이미 만들어진 영웅은 영화의 이야기를 끌고가지 못한다. 관객은 영웅이 탄생되고 재생되는 이야기의 과정을 보고 싶어하며 영웅에게 부여된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남다른 방식으로 완성하는 장면에 박수를 보낸다.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는 이미 영웅적 풍모와 조건을 갖춘 토니 스타크를 추락하게 하고 다시 귀환하여 영웅의 자리에 재등극하는 하강과 상승의 리듬에서 완성된다.

토니 스타크는 아프카니스탄에서 자신이 개발한 무기의 시연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게릴라들에게 납치를 당한다. 아프카니스탄 게릴라 단체의 지하 비밀아지트에 억류된 토니 스타크는 그들로부터 무기 제조를 강요받는다. 언제나 영화에서 주인공의 위기는 주인공의 능력을 보여줄 영화적 기회를 제공한다.

토니 스타크는 그곳에서 철로 만든 아이언 슈트를 제작하여 게릴라 단체의 공격에 대항하여 탈출에 성공한다. 아이언 슈트는 방탄 장치와 화염방사기능을 겸비한 아이언 맨을 탄생시킨다.

과학의 힘은 인간을 초인으로 만든다. 과학이 초인적 파워를 가능케 했다면 철학적 성찰은 정신의 힘을 구비하게 했다. 토니 스타크는 귀환 후 ‘무기판매의 이익을 얻기 위한 파괴자는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도덕적 영웅으로 거듭난다.

이 장면은 대중적인 재미라는 당의정 밑에 숨어있는 이데올로기를 드러낸다. 미국 영화는 전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지고 배급되어 그 힘은 한국의 4대 일간지가 한국민에게 주는 정치적 영향력에 상응한다.

이 영화에서 군수 산업 업체의 대표이사가 윤리적인 성찰을 하는 선한 영웅의 이미지로 재현되어 미국의 무기 수출에 대한 도덕적 알리바이를 부여한다.

반면 중동 지역의 무장 게릴라들은 폭력적이며 고철을 조립하는데 쩔쩔매는 전근대적 이미지로 각인된다. 할리우드가 보여준 이미지의 정치학은 재미라는 가면으로 실현된다. 이를 통해 미국영화는 자국의 이미지 홍보와 이윤 창출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는 이중 수혜자가 된다.

결국 <아이언 맨>은 회사 경영권을 둘러싼 선과 악의 대결로 완결된다. 착하고 헌신적인 여성인 페퍼 포츠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토니는 승리한다. 선과 악의 대결에서 선한 영웅의 승리와 초인적인 영웅의 세상 구원과 승리의 표상으로서 아름다운 여성의 항구적 지지라는 대중적 코드는 이 영화가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전형임은 입증한다.

■ 문학산 약력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현 세종대 강사, 영등위 영화등급 소위원, 한국영화학회 이사.저서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한국 단편영화의 이해>. 영화 <타임캡슐 : 서울 2006 가을>, <유학, 결혼 그러므로 섹스> 연출.


문학산 cinemh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