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미술사의 동력이자 빈곤의 표현104.3x76.5cm, 캔버스에 유채, 1863,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인상주의 알린 파격적인 그림… 반동과 전복의 미학으로 20세기 화단 판도 바꿔

세상이 온통 혁명적 기운으로 차 있다. 기존의 관습이나 가치에 대한 부정이 개혁 수준을 넘어 전복의 양상을 보인다. 광고나 가요에서 조차 ‘바꿔’를 연일 외쳐댄다. 혁명이란 주로 정치사에서 사용되어온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법으로 정해놓은 국가규범이나 사회제도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혁명은 정치나 사회 현상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 등 인간사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개념이다. 예술의 경우 혁명은 종래의 개념과 표현양식 그리고 미학에 대한 반동과 전복을 의미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사가 곰브리치는 프랑스 미술의 혁명을 세 마디로 구분하였다.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그리고 인상주의 미술이 그것이다. 그중 인상주의 미술은 프랑스 대혁명과 맞먹는 힘을 과시하면서 전통적 미술의 근간을 바꾸어 놓았고 모더니즘이라 부르는 새 미술의 출발점이 되었다.

미술혁명으로서 인상주의의 본질은 서양미술의 뿌리인 ‘대상 재현적 사실주의’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모방론의 원리인 원근법과 명암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결국 모더니즘 미술은 환영주의에서 벗어나 물감과 캔버스 자체에 주목하는 추상미술을 탄생시키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위에 소개된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은 인상주의 미술을 알리는 혁명적 그림으로 유명하다. 이 그림은 두 명의 여인과 두 명의 정장한 신사가 초원으로 소풍을 나와 여가를 보내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화면 속의 상황은 낯설고 비윤리적이다. 나체로 포즈를 취한 채 관객을 바라보는 여인의 시선은 당당하며 몸에는 고전적 인물화에 입혀 놓았던 여신의 아우라가 존재하지 않는다. 원경에 자리 잡은 속옷 차림의 여인은 그 옆에 배치된 보트의 크기와 비교하면 거인으로 보인다. 입체감을 나타내는 명암법과 공간감을 나타내는 원근법에 대한 반동과 전복이 숨겨져 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다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네 명의 등장인물들은 하나의 상황을 설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로 이들 사이에는 어떠한 대화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네 명의 시선은 서로 어긋나 있으며 각각 자신의 생각에 빠져 있다. 이러한 낯선 상황은 화면의 왼쪽 하단에 무질서하게 흩어진 과일이나 바구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한점의 그림에 담긴 반동과 전복의 미학은 20세기에 들어와 미술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혁명의 본성이 전통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한다면 미래를 위해 유토피아적 입장에서 혁명을 감행하는 것은 하나의 오만으로 볼 수 있다. 사실 혁명은 기존의 불평등한 상태와 권리의 상실에 맞서 싸우는 반란과 반역의 상황 속에서 발생한다. 포퍼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혁명의 역사를 ‘빈곤의 역사’로 규정하였다.

결국 혁명이란 불평등과 궁핍 그리고 소외에 대한 반동과 전복이다. 따라서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부정과 개혁의 현상은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다. 모더니즘의 가치마저 다시 부정되고 있는 오늘날 세상에 가득 차있는 혁명적 기운의 정체를 똑바로 볼 필요가 있다.

■ 김영호 약력

중앙대와 동대학원 졸업. 파리1대학(팡테옹-소르본느) 박사(미술사학). 현대미술학회 회장.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회원. 현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

<저작권자 ⓒ 한국미디어네트워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영호 objetkim@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