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선언한 아나운서들의 제2인생정치인·사업가·연기자·여행작가 등 다방면서 두각… 케이블·공중파서도 종횡무진

방송의 꽃이 사라지고 있다.

1995년 KBS 원종배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정은아, 백지연, 이금희, 황현정, 손범수, 박나림, 그리고 최근 김성주, 강수정, 손미나, 신영일, 박지윤 등 스타아나운서들의 독립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오락,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재능’과 ‘끼’를 인정 받은 아나운서들의 프리 선언이 늘면서 독자 노선을 걷는 이들의 행보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방송국의 간판급 아나운서 역할을 톡톡히 하며, 활발한 방송활동으로 높은 신뢰도와 인지도를 쌓은 아나운서들은 프리 선언 후에도 방송은 물론 정.재계와 교육계 등 사회 다방면에 걸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정은아, 이금희, 손범수 등은 방송국을 떠났지만 프리랜서 아나운서로서 성공적으로 방송에 재정착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요즘 들어서는 또 프리 선언 이후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전직 아나운서들이 속속 방송복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MBC ‘뉴스데스크’의 메인 앵커였던 백지연 전 아나운서는 1999년 프리 선언 이후 방송인 전문 교육기관인 ‘백지연 스피치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써왔다. 최근에는 케이블 올리브 채널에서 다음달 9일부터 방영되는 국내 최초 아나운서 채용 서바이벌 프로그램 ‘그녀의 아름다운 도전-아나운서 편’의 심사위원을 맡아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또 조만간 XTM의 신규 토론프로그램 ‘끝장토론’(가제)의 사회자로도 나설 계획이어서 케이블TV에서의 활동이 두드러질 예정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97년 SBS 아나운서로 입사한 한성주 전 아나운서도 최근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MC로 방송에 복귀했다. 2000년 방송국을 떠난 뒤 8년 만에 시청자들 곁으로 돌아온 그는 OCN에서 방영하는 ‘연예뉴스 O’를 진행하며, 녹슬지 않은 진행솜씨로 벌써부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사업가로 성공한 김성경(왼쪽)과, 최은경.

MBC 출신인 박나림 전 아나운서 역시 2004년 프리 선언 이후 좀처럼 소식을 듣기 힘들었지만 최근 EBS FM ‘박나림의 명사 인터뷰’라는 본인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의 DJ를 맡아 본격적인 방송활동에 돌입했다.

한편 KBS 1TV ‘퀴즈 대한민국’과 2TV ‘무한지대 큐’ 등 왕성한 활동을 하며, 스타 아나운서로 활약하던 신영일 전 아나운서는 2007년 돌연 사직서를 제출하고, 프리랜서의 길을 선택했지만 1년 만에 다시 방송에 복귀했다. 그는 오랫동안 퀴즈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경험을 살려 경인방송 OBS에서 ‘신영일의 퀴즈의 제왕’과 EBS ‘장학퀴즈’를 진행하며, 전문 MC로서 제2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비단 방송계 뿐만이 아니라 프리를 선언한 아나운서들 가운데는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경우도 있다.

1993년 SBS에 입사한 미스코리아 출신 김성경 전 아나운서는 2002년 프리 선언 후 교육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현재 에듀테인먼트 업체의 기획이사로 활약하며 공연 및 음반 제작 사업을 하고 있다. 주로 가족과 아이들을 위한 아이템을 활용해 ‘가족형 엔터테인먼트’라는 차별화한 장르를 개척, 사업가로서의 역량을 백분 발휘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2002년 KBS 아나운서 직을 떠나 프리를 선언한 최은경 전 아나운서도 톡톡 튀는 진행자라는 호칭과 더불어 성공한 사업가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 추가했다. 그는 마스크팩 전문 제조업체와 손잡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최은경의 코엔자임 Q10팩’을 출시, 홈쇼핑을 통해 7개월 만에 매출 80억원을 달성한 바 있다. 최은경 전 아나운서는 직접 홈쇼핑 호스트로 출연하기도 하며, 자신의 이미지와 상품 이미지를 접목시켜 마케팅 효과를 더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정계로 진출한 전직 아나운서들. 왼쪽부터 이계진, 유정현, 한선교.(위)
방송 초읽기에 들어간 전직 아나운서들. 왼쪽부터 백지연, 박나림, 한성주.(아래)

그밖에 정치인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전직 아나운서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변웅전, 맹형규, 차인태, 류근찬 등 주로 1세대 아나운서들이 방송국을 떠난 후 정계에 진출하는 사례가 많았다.

특히 올해 18대 총선은 아나운서 출신 정치인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국회 내 ‘마이크 세력’이 점차 커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1999년 SBS 아나운서 자리를 뒤로하고 프리를 선언한 유정현 전 아나운서는 한나라당 서울 중랑갑 후보로 전략 공천돼, 노동부 장관을 지낸 3선의 무소속 이상수 후보를 꺽고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미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이나 무소속 한선교 의원의 경우는 아나운서 출신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힌 대표적인 케이스로 올해 각각 강원 원주와 경기 용인수지에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서울 구로 을의 통합민주당 박영선 의원역시 MBC 아나운서 출신이다.

이 외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직 아나운서들 중에는 2007년 KBS를 떠나 여행작가로서 제 2의 인생을 사는 손미나 아나운서와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임성민 아나운서가 있다.

한편 계속해서 아나운서들의 방송국 이탈 현상이 늘자 KBS는 지난해부터 사직서를 제출한 아나운서는 향후 2년 동안 KBS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조항을 마련해 아나운서 프리 선언과 관련한 규제를 강화했다.

조건진 KBS 아나운서 팀장은 이에 대해 “KBS에서 오랫동안 투자하고 지원해 육성한 아나운서가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프리랜서로 전환한다면 적어도 KBS에는 2년간 출연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나운서 프리 선언에 대한 의견 대립이 팽팽한 가운데 아나운서실의 한 관계자는 “아나운서들의 프리 선언이 개인에게 얼마만큼 약이 될 지, 독이 될지는 제3자가 평가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면서 “오히려 아나운서 자신만의 ‘전문성’과 아나운서의 활동을 뒷받침해주는 ‘방송환경’, 이에 따른 시청자들의 최대한의 ‘만족도’ 등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 더욱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것들이다”고 밝혔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