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밖으로 '특별한 외유'를 떠나다이례적으로 한정식집 '운산'서 저녁만찬… 10여 가지 창작 한식 맛보며 '원더풀' 연발

‘세계 최고의 미식가 모임인 체인 디너, ‘뜻 밖의 외도’(?)에 나서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되고도 최고의 ‘고메 클럽’(Gourmet club)으로 공인 받고 있는 ‘체인 디너’가 최근 잇따라 ‘탈 호텔’을 선언, 화제가 되고 있다. 거의 모든 행사를 호텔 내에서만 치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체인 디너가 호텔이 아닌 시내의 레스토랑을 ‘만찬 장소’로 삼았기 때문이다.

체인 디너는 지난 3월 이태원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빌라소르티노에서 모임을 가진 데 이어 5월에는 여의도의 한식당 ‘운산’에서 저녁 만찬을 가졌다. 국내에 거주하는 특1급 호텔의 외국인 총주방장(셰프)들이 거의 대부분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체인 디너가 호텔 밖에서, 그것도 연거푸 행사를 가진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전세계 수십 개 국가에 지부를 가지고 있는 체인디너는 국내에는 서울과 부산에 모임이 결성돼 있다. 국내 회원만 150여명 정도. 아무래도 음식을 주제로 한 이상 외국인 중에는 특급호텔의 총주방장과 총지배인들이 주축이 돼 있다.

특히 체인디너는 원한다고 누구나 다 회원이 될 수 있는 일반 모임이 아닌 것으로도 유명하다.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 회원의 추천을 받아야만 하고 또 추천된 인사 또한 체인디너 이사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만 한다.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이사회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신입 회원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

그러고서도 회원 심사를 받기 위해 대기중인 이들이 적지 않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기다려야만 한다. 일정 규모로 운영될 수 있는 회원 숫자를 무제한 늘릴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 회원은 한국인과 외국인이 각각 5대5 비율로 구성돼 있다. 모임이나 행사 때마다 참석 인원은 100여명 내외.

그렇다고 만찬이나 모임에 오로지 회원들만이 참석할 수 있도록 폐쇄적으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회원들의 초대를 받거나 회원과 함께 일행으로 참석하는 일반 손님들도 적지 않다.

특히 만찬의 메뉴나 주제 선정에 있어서 체인 디너는 외국인 셰프들이 주축이 돼 있다는 특성 때문에라도 프랑스 이탈리아 등 웨스턴 요리들이 항상 중심을 차지해 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 음식이 지존 자리를 꿰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지만 최근 서울 여의도 서울시티클럽 지하층에 자리한 한식당 ‘운산’에서의 만찬은 많은 미식가들에게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다. 외국인들을 비롯한 미식가 모임에서 한식이 선보였고 또 커다란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간 호텔에 머물러 온 체인디너가 가히 ‘외식’을 나갔다고도 할 만하다.

미나리를 먹고 있는 번하드 브랜더 회장, 김윤영 용수산·운산 사장

용수산 계열로 최고급 한식당을 표방하는 운산에서의 체인디너 만찬 호스트는 김윤영씨. 용수산과 운산의 사장으로 대를 잇고 있는 한식당 가족 경영자로도 유명한 그녀는 이 날 10여가지의 창작 한식들을 선보이며 찬사를 받았다.

그가 선보인 음식은 전복죽과 오이소배기 물김치, 배와 참치 전채, 새우완자 조개탕, 전복 마늘볶음과 참외 보쌈김치, 대게살 신선로, 유자 소면, 한우 갈비구이와 배 보쌈김치, 구운 버섯밥과 연잎 보자기, 오미자 화채와 보리고드름, 녹차 아이스크림과 꼬마 눈사람 등. 모두 그가 직접 생각해 내고 연구해 완성한 음식의 신 창작품들이다.

“음식 메뉴를 구성하고 결정하는 데만 4개월 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이디어를 내고 만들고 하는 모든 과정이 다 제 머리와 손에서 나왔지요.” “과정이 제법 힘들었다”는 그는 “이 만하면 서양 요리의 최고봉인 프렌치 요리 보다 낫다고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항상 창작 메뉴들로만 구성되는 체인 디너는 행사에 앞서 음식 테스트를 거치는 것이 관례. 이번에 테스트에 참가한 전 신라호텔과 리츠칼튼 총주방장 롤란도 힌니 부산 정보대 교수는 “테스트 단계에서 맛을 본 한식 메뉴가 어찌나 훌륭한지 행사 전부터 회원들 사이에 ‘훌륭하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감탄했다.

체인디너 회원 중 유일하게 한식을 주창하고 있는 김윤영 사장의 한식 사랑과 홍보는 각별하다. “한국에서 갖는 미식가 모임인데 한식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되잖아요.” ‘한국의 민간 홍보 사절’로서 이번 한식 메뉴 만찬은 3년여 만의 새 도전이었다.

유자 소면, 구운 버섯밥과 연잎 보자기, 배와 참치 전채

“한식을 주제로 디너를 가지려 해도 호텔에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특급 호텔의 한식당 대부분이 다 문을 닫았기 때문이에요.” 체인 디너 행사를 가지려면 적잖은 규모와 품격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최고급 한식당인 ‘운산’. 주방 및 서빙 직원들의 실력이나 능력도 겸비 돼야만 한다. 그녀는 만찬이 끝나고 애쓴 직원 70여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와 감사를 표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창작 메뉴들은 대부분 운산의 정식 메뉴로도 소개될 예정이다. 벌써부터 주변의 관심이 크다”는 그녀는 “너무 알려지면 금세 모방되는데…”라고 한편으론 걱정(?)이 태산이다.

이에 앞서 빌라소르티노에서 열린 지난 디너 또한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 받는다. 당초 신라호텔에서 열려다 이건희 회장 수사 사건 등으로 삼성그룹이 어수선한 관계로 대안으로 선정됐는데 어쨌든 ‘호텔 밖 외도’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그만큼 호텔 밖 시내 레스토랑들도 이제는 수준이 높아졌다는 반증인 셈.

운산에서의 체인 디너에 남편 주준범 국립경찰병원 이비인후과 과장, 막역한 사이인 ‘비유와 상징’ 양태회 대표이사 내외와 함께 참가한 회원 한혜주 화정박물관장은 “최고의 음식을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는 것이 체인디너만의 매력”이라며 “한식이 최고의 미식가들에게도 어필하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