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 영웅, 과학으로 부활하다찬탈당한 왕위 계승권 되찾으려는 스릴 만점 모험 스크린 가득

신화는 인류의 꿈으로 채워진 원고지다. 할리우드는 꿈의 공장이라는 오래 묵은 이름을 갖고 있다. 신화가 인간의 꿈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왔다면 영화는 필름에서 필름으로 옮겨온 방식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현재 진행형의 신화와 이미 존재했던 전설은 남김없이 필름에 담겨 인류의 문화유산에 등재되고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신화는 소설로 번역되고 클래식의 선율 속에서 살아나고 화가의 붓끝에서 태어나는 모든 예술의 저장 창고다. 특히 괴물을 퇴치하는 영웅이 활보하고 낙엽처럼 떨어져 쌓이는 사체 더미가 발산하는 비장하고 슬픈 스펙터클과 공주를 구해내는 왕자의 모험은 영화와 친화력이 강하다.

최근 신화에 근거한 판타지 소설은 영화의 소재원으로 급부상하여 상업적 파괴력을 과시하고 있다. <해리포터>시리즈는 이미 수편의 영화가 제작되어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 시장 제패의 선봉에 섰으며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이미 3편이 만들어져 서양 신화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였으며 이어서 영문학자이며 신학자인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도 전세계 관객의 지지를 받은 바 있다. <나니아 연대기>는 루이스가 1950년부터 7년 동안 집필한 대작이며 이미 출판계에서도 9천 500만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입지를 굳힌 작품이다.

신화를 근간으로 한 판타지 소설은 영화계로 유입되어 소재 기근에 봉착한 할리우드에 활력을 불어넣는 젊은 피 역할을 해냈다.

인간의 꿈은 선한 영웅이 악한 괴물의 위협으로부터 퇴치해주기를 바라는 희망사항과 손목시계가 지시하는 시간대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채워준다.

앤드류 아담슨의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는 국왕의 음모로 피신한 왕자가 여러 부족과 페벤시 남매와 연합하여 왕을 퇴치하는 거대한 전쟁 장면과 1300년의 시간을 거슬러 나니아로 도착한 네 명의 모험으로 이루어졌다. 이 영화는 과거의 왕국으로 여행을 가는 네 명의 학생들이 겪은 모험의 파노라마로 이루어져있다.

모험은 왕위 계승권을 박탈하려는 왕에 맞서서 대항하는 캐스피언 왕자가 분 나팔의 마력으로 시작된다. 여행은 지하철 역에서 나니아로 향하는 문이 열리면서 출발한다.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컷을 통해 이동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매체이다. 마술적 효과는 영화 언어와 특수효과의 힘으로 설득력있게 사용된다.

나니아는 네 명의 주인공이 여행하는 낯선 공간이지만 동시에 그들의 행적을 바라보는 관객 또한 시선을 통해 모험에 동행하게 된다. 여행에서 수행해야할 임무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삶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인생행로와 닮아있다. 그래서 인생은 늘 여행으로 비유된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인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단어는 일반 명사의 경우 ‘사람’, 고유명사의 경우 ‘한국’, 동사는 ‘하다’, 형용사는 ‘없다’”라고 한다. 신화를 소재로 하는 영화에 대입해 보면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아직 정확한 연구와 통계 기록은 살펴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신화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과 가장 많이 행하는 일은 대략 두 가지일 것 같다. 등장 인물은 아이와 영웅이고, 수행하는 일은 모험과 전쟁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도 회오리 바람을 타고 어린이가 모험을 하며, <해리포터>시리즈 역시 마법의 학교에서 아이들이 선과 악의 대결을 펼친다. 아이와 영웅은 모험과 전쟁을 통해 성숙하고 삶을 배우고 꿈을 실현한다. 인물과 사건의 두 골격에 판타지는 보다 화려한 캐릭터와 극적인 임무를 부여하여 영화적 재미를 살려낸다.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는 네 명의 청소년들이 나니아에 도착하여 모험을 하며 캐스피언 왕자를 옹립하기 위해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전쟁을 수행하고 귀향하는 서사다. 이들이 캐스피언 왕자와 그와 연대한 부족들의 편에 선 것은 부당한 왕위 계승권 박탈에 대한 도덕적인 응전이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영웅 서사는 전쟁의 목적에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는 미국영화의 뿌리 깊은 전통이자 선과 악 이분법적 대결구도에 익숙해진 대중서사의 불문율이다. 이에 대해 평론가 로저 애버트는 “웨스턴의 심장부에는 선이 결국에는 악을 침묵시킨다는 화해할 수 없는 도덕적 균형감이 자리한다”고 했다.

네 명의 전사들이 캐스피언 왕자와 연합 전선을 펴게 되고 이들의 승리를 관객이 지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도덕적 명분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명분이 없는 전쟁은 전쟁 자체가 주는 죄악으로 인해 관객의 지지를 받기에는 설득력이 취약하다.

신화학자 캠벨은 “대중의 영웅은 자기시대의 필요에 대단히 민감한 법”이라고 했다. 영웅이 영웅으로 숭배받게 되는 것은 부당한 질서에 대해 저항하고 자기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용기로 인해서다.

영화는 영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영웅은 도덕적 요구에 대한 호응과 자신의 힘을 통해 악의 세력이나 괴물을 퇴치하거나 임무를 수행해야 비로소 영웅으로 등극하고 주인공으로서 지지받게 된다.

부당하게 찬탈당한 왕위 계승권을 다시 찾으려는 캐스피언 왕자는 스스로 전쟁을 통해 왕권을 찾으려는 도덕적 명분과 페벤시 남매, 주변화된 부족들과 연합하여 수행하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영웅 즉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페벤시 남매에게는 모험과 전쟁의 승리를 통한 임무 완수의 드라마이지만 캐스피언 왕자에게는 스스로 왕의 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영웅으로 거듭나는 단련의 장애물 경주와 같다.

시간과 공간의 강을 건너온 페벤시 남매는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캐스피언 왕자의 왕권탈환이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이는 현실적인 힘의 열세는 신념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과 삶의 장애물은 극복할 수 있다는 신앙으로 돌파해야한다는 판타지 영화의 이데올로기를 암시한다.

어린 루시는 마술적 치유약과 강력한 힘의 소유자인 사자 아슬란의 힘을 동원할 수 있다. 가장 어린 루시와 가장 강한 아슬란의 연대는 둘 사이에 존재하는 강한 신뢰가 매개가 된 것이다.

영화는 영웅서사와 시각적 스펙터클의 정수를 보여준다. 동물 전사들의 활약과 거대한 나무들이 뿌리를 이용하여 수많은 군사를 퇴치하는 장면, 물의 수호신이 거대한 힘으로 퇴각하는 군사를 섬멸하는 시각적 스펙터클은 신화의 서사와 과학의 스펙터클이 결합한 상업영화의 백미다. 이 영화는 신화와 과학이 어떻게 상품으로 거듭나는가는 보여준 모범답안이다.

■ 문학산 약력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현 세종대 강사, 영등위 영화등급 소위원, 한국영화학회 이사.저서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한국 단편영화의 이해>. 영화 <타임캡슐 : 서울 2006 가을>, <유학, 결혼 그러므로 섹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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