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풍 인테리어와 직접 볶은 수제 커피… 전문직 여성들 사랑방으로 인기
홍대앞- 최근 2~3년 사이 카페골목 생겨… 가게마다 독특한 개성
삼청동- 한옥 개조로 그림같은 전경… 주말이면 디카족 대거 몰려
가로수길- 잡지 에디터들 단골가게 많아… 개성 있는 인테리어 눈길
도산공원- '공주풍'에서 '럭셔리 카페'까지 그윽한 분위기와 차의 향기

의식주의 트렌드를 알려면 리빙, 패션 잡지 담당자들을 찾으면 된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입고 작업하는 모든 것은 1,2년 후 강남 선남선녀들의 문화가 되고, 또 1,2년이 지나면 서울 젊은이들의 대중문화로 자리 잡는다.

요즘 이 트렌드세터(trend setter)들이 즐겨 찾는 놀이터는 단연 카페다. 갓 볶아낸 원두향이 퍼지는 카페는 단순히 ‘데이트를 즐기는 곳’을 넘어 노동과 모임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2030 어른들의 사랑방, 카페문화를 소개한다.

“스타벅스가 왜 성공한 줄 알아요? 요즘 젊은이들은 늦은 시간까지 노동을 해야 하는 ‘경쟁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지. 술 마시면 잠이 오는데, 커피는 카페인이 들어있어서 정신을 맑게 해주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모임 장소로 바(Bar) 보다는 카페를 찾는다는 거야.”

한 달 전 만났던 모 프랜차이즈업체의 CEO는 기자에게 생뚱맞은 이론을 소개했다. <메가트렌드>란 책에 실린 이 내용은 21세기,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젊은이들은 술보다 커피를 찾고 있고 이것이 스타벅스가 성공한 원인 중 하나라고 밝힌다. 이어 그는 아라비카 원두를 수입해 커피 프렌차이즈 브랜드를 만들 것이라고 사업구상을 말했다.

21세기 젊은이의 음료는 맥주와 와인을 넘어 커피로 진화했다. 2000년대 초반 명동과 이대 앞을 중심으로 생긴 외국계 프랜차이즈 카페는 부산, 대구 등 지방으로 퍼져나갔고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카페문화는 간단한 식사가 곁들여진 ‘비스트로 형태’가 각광받았다. 비스트로 카페로 대표적인 장소가 도산공원에 위치한 <느리게 걷기>다. 맛있는 식사와 제대로 된 커피를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 욕구를 만족시킨 이 카페는 20~30대 여성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전파됐다.

서울의 카페문화는 1,2년 전부터 다시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현재는 빈티지풍의 인테리어와 직접 볶은 수재 커피가 어우러진 유럽풍 카페가 각광받고 있다. 가게에서 커피 원두를 로스팅하는 것은 물론이고 히말라야에서 홍차 재료를 공수하기도 한다. 계절별로 전통차를 직접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

서울 유명 카페를 소개한 책 <힙 카페>를 기획 편집한 웅진 리빙하우스 김윤선 팀장은 “커피와 차가 중심이 된, 말 그대로 ‘카페’ 문화가 정착된 것은 최근 1년 정도다”고 말했다.

이런 트렌디 카페를 애용하는 사람들은 20~30대 전문직 여성들이다. 김윤선 팀장은 “잡지 에디터와 디자인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런 카페의 단골손님”이라며 “비즈니스 미팅을 비롯해 개인 작업을 할 때 이런 카페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트렌디 카페는 장소에 따라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다. 빈티지가 강세를 보이는 홍대 카페 골목이 있는가 하면 노천카페가 주를 이루는 신사동 가로수 길도 있다. 최근 인기 있는 카페 골목과 대표적인 카페를 소개한다.

■ 홍대 앞은 죽지 않아~

삼청동에 위치한 와플 전문‘BEANS BINS’
삼청동에 위치한 와플 전문'BEANS BINS'

젊음의 거리는 단연 홍대다. 크고 작은 클럽과 저렴한 와인바로 사랑받았던 홍대 앞에 카페 골목이 들어선 것은 최근 2,3년 사이. 홍대 앞 카페의 특징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뽐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개인 작업 공간으로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평일 낮 혼자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홍대 카페 골목 중간에 위치한 는 지하 2층, 지상 5층으로 이뤄진 카페 겸 디자인 뮤지엄이다. 높은 천장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문화 예술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카페 가운데 한 곳이다.

테라스에도 역시 멋진 디자인의 가구와 모로코 타일이 다채롭게 배치되어 있어 맘에 드는 의자에 골라 앉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이곳의 주 메뉴는 카페라떼와 에스프레소, 그린티와 여름철 인기 있는 유자 아이스 티 등이다.

김명한 사장은 “15년 동안 모았던 빈티지 가구가 늘어나면서 건축,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와 같이 디자인 관련 전문 직종자들이 함께 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커피 마니아들에게 널리 알려진 핸드드립 커피전문점 <칼디 커피>는 커피 로스팅 및 커피교육장을 운영하던 서덕식 사장이 2004년 만든 곳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천연 참나무 숯으로 로스팅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이곳의 커피는 참숯 특유의 고소한 향이 스며들어 깊고 중후한 맛이 난다. 테이블 6개의 아담한 규모라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보다 원두를 구입하러 오는 사람이 더 많다.

■ 새로운 서울을 만나는 곳 삼청동

삼청동의 카페골목은 고풍스러운 동네 분위기와 유럽풍 카페가 묘한 조화를 이뤄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기와 한옥을 현대식으로 개조해 만든 카페가 많다. ‘그림 같은 전경’ 때문에 주말이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으러 나온 커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2006년 국내 ‘벨기에 와플’이 소개될 쯤 문을 연 <빈스빈스>는 와플의 인기와 더불어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다. 직접 볶은 15종류의 커피는 일반 커피 전문점보다 맛이 진하다.

작년까지 가게에서 커피를 볶았지만, 요즘은 직영 공장에서 커피를 볶는다. 부드러운 우유거품을 올린 카푸치노와 콤비네이션 와플이 이곳의 인기 메뉴. 주말이면 하루 1,000여명이 찾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홍대, 용산, 분당과 용인에 분점을 냈다. 삼청동 지점은 한옥을 개조해 만든 2,3층 건물은 테라스를 만들어 운치를 더했다.

정독도서관 근처에 위치한 는 테이블이 6개뿐인 작은 카페지만 동화 같은 인테리어와 건강한 먹을거리로 인기 있는 곳이다. 이곳의 주 메뉴는 핸드드립 커피와 직접 만든 과일차. 유명 식당에서 계절별로 김치를 담그듯 이곳은 유자, 모과, 대추, 레몬, 매실 등 제철 과일로 차를 담가 그때그때 메뉴로 올린다.

점심에는 샌드위치와 팬케이크 등을 팔기도 한다. 이곳의 특징은 ‘나만의 아지트’라 생각하는 단골 손님들이 많다는 것이다. 잘 눈에 띄지 않는데다 차의 맛과 질이 가격에 비해 훌륭하다. 2002년 문을 연 이 곳은 삼청동 일대 직장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소개되기 시작했다.

■ 잡지에디터의 놀이터 가로수길

삼청동 ‘egg’ (위)신사동 ‘카페별’(아래)
삼청동 'egg' (위)신사동 '카페별'(아래)

유명 잡지 에디터들의 단골 가게는 대개가 가로수 길에 모여 있다. 월간지 사무실이 강남에 밀집한 탓에 잡지 기자와 편집 디자이너, 사진작가들이 작업과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이곳을 자주 찾기 때문. 대한민국 트렌드를 가장 먼저 소개하는 직업의 특성상 이들의 놀이터는 2,30대 젊은 여성들의 놀이문화로 급부상한다.

잡지 에디터들이 ‘잇 아이템(It item; 최신 유행 아이템)’으로 꼽는 곳은 <카페 별>이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장소를 선호하는 이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곳이다. 카페 오너는 세계각지를 여행하며 모은 빈티지 가구와 자체 제작한 디자인 가구로 공간을 꾸몄다. 카페의 트렌드 마크인 ‘별’로고는 머그컵에서 커피 봉투, 접시와 카페 계단까지 새겨있다.

커피는 하루 쓸 분량을 사장이 직접 로스팅하고 28가지 종류의 차는 히말라야 정상에서 만든 것을 직수입한다. 지난해 여름 리모델링을 하면서 지하에 의류매장을 냈다. 커피를 마시면서 쇼핑을 할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다.

2004년 문을 연 <블룸 앤 구떼>는 영국에서 활동하던 플로리스트와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파티셰가 ‘자연주의 카페’를 컨셉트로 만든 가게다. 낮은 원목 테이블과 의자로 인테리어 한 이곳은 꽃집을 겸하고 있다. 매일 아침 굽는 12가지의 케이크는 디저트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미 잘 알려진 메뉴. 일찍 가지 않으면 원하는 메뉴를 맛보기 힘들다. 이곳에선 조정희 사장이 직접 베이킹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 강남 깍쟁이는 모두 이곳에 도산공원

몇 해 전부터 청담동과 도산공원 앞은 20~30대 직장인들의 사랑방이 됐다. 탁 트인 공간과 시크한 분위기의 소품으로 눈길을 끄는 카페가 있는가 하면 카페 <마당>과 같이 명품 브랜드를 테마로 꾸민 ‘럭셔리 카페’까지 다양하다. 맛보다는 인테리어와 분위기, 간식거리로 성공하는 곳이 많은 것이 이 지역의 특징.

압구정 <미얌미얌>은 ‘공주풍’ 인테리어로 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곳이다. 3층짜리 단독주택을 개조한 건물 내외부는 빨간 지붕을 제외하면 온통 연두빛이다.

고급 앤틱 가구에 테이블마다 프랑스 명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고, 인상파 화가의 그림 액자도 빼곡하다. 매일 만드는 수제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얹어 주는 와플은 최고 인기 메뉴.

반죽에 커피를 섞은 카푸치노 와플, 블루베리, 라즈베리 등을 이용한 베리 와플이 인기다. 와플에 차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이곳에서는 프랑스 명품 홍차 ‘마리아주 프레르 셀렉션’을 선보인다. 우리에게 친숙한 얼그레이 티를 비롯해 10여 가지의 홍차를 맛 볼 수 있다.

카페 <두지엠>은 프랑스어로 두 번째라는 뜻. 전경이 예뻐 로데오 거리를 구경온 젊은 커플이 꼭 한번씩 들르는 곳이다. 일본풍 빈티지 카페로 유기농 재료로 먹을거리를 만든다. 일본 잡지에서 본 듯한 화이트 톤의 카페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개인 작업, 쇼핑도 할 수 있는 멀티숍이다. 건강 샐러드, 라즈베리와 블루베리, 생과일을 얹은 요구르트, 오가닉 커피 등을 맛볼 수 있다.

유럽식 카페의 인기는 여유를 갈망하는 도시인들의 소망을 반영한 것이다. 길가에 즐비한 노천카페에서 햇볕을 쬐며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하는 행위가 선망을 거쳐 향유의 대상이 된 것이다. <섹스 앤 더 시티>와 같은 미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브런치 문화와 카페 문화가 유행한 것도 한 가지 이유다.

<힙 카페> 편집인 김윤선 팀장은 “유럽의 카페문화와 같은 새로운 트렌드를 즐기고 싶어 하는 젊은 층이 많아졌고 ‘글루미족’이라 불리는 혼자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는 사람도 생겨났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빈티지 풍의 카페가 늘어난 것도 한 가지 원인이다”고 분석했다.

이들 카페 골목은 지역을 대표하는 ‘대박’ 카페가 유행을 선도하고 주변에 이와 비슷한 테마의 카페가 여럿 생기면서 명소로 떠오른다. 몇 해 전 도산공원 앞 비스트로 카페 <느리게 걷기>가 유행하면서 이와 비슷한 비스트로 카페가 도산공원 일대에 우후죽순 등장했고 강남의 카페 문화를 선도했던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

삼청동 <빈스빈스>의 송재우 이사는 “2년 전 가게를 낼 때만 해도 삼청동에 커피전문 카페는 3,4개에 불과했다. 이제 하나의 골목을 형성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신사동 <카페 별>의 안진선 사장 역시 “2006년 말 카페를 오픈할 때만 해도 가로수 길에 카페는 별로 없었지만, 이제 하루건너 한 개 씩 가게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