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2세 환우의 짧은 외침, 긴 울림전진성 지음/ 휴머니스트/ 12,000원35세불꽃 같은 삶… 한국인 원폭 피해자 공론화·법제화에 바쳐

살아있는 자는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그저’ 감사해 할 일이 아니다. 산 자로서의 ‘의무’를 져야 한다. 세상을 위해 움직여야한다. 故 김형률(1970-2005)씨의 삶이 이를 가르쳐준다. 3년전 예고없이 스러져 간 그의 빈소에는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생전의 그가 누구였으며, 얼마나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갔는가를 잘 알고 있던 이들이었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故 김형률씨에 대한 평전이다. 김씨는 원폭2세 환우로, 평생 병마에 시달리며 고통의 삶을 살다 3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주인공이다. 그는 원폭피해자의 자녀로 태어난 ‘원죄’때문에 아파도 차마 아프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차별의 시대에 맞서 싸우며 살다 갔다.

그는 한국원폭2세환우회 초대 회장으로, 2002년 3월 국내에서 최초로 자신이 원폭 후유증을 지닌 원폭피해자 2세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선천성면역글로불린결핍증이라는 지병과 싸우면서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이를 공론화, 법제화하는 데 온 힘을 바쳤다. 마침내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원폭피해자 실태 조사라는 첫 결실을 이끌어냈고, 이와 함께 ‘한국원자폭탄피해자와 원자폭탄2세 환우의 진상규명 및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매진하던 중 2005년 5월 29일 황망히 숨을 거두었다.

이 평전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생시처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만큼 저자가 모은 철저한 주변 기록들과 관찰로 채워져 있다. 고인이 견뎌야했던 육체적 고통은 물론 인권운동이라는 현실과의 투쟁 과정도 일련의 자필 일지처럼 생생하다.

치료를 위해 병원을 드나들던 상황에서부터 생전 고인의 말과 이메일, 관련 언론기사 등으로 다각도에서 인간 김형률을 보여준다. 읽을수록 한 청년 운동가의 신념과 열정은 물론 그가 감내해야 했던 심적, 육체적 시련이 아프게 다가온다.

저자인 전진성 교수는 2003년부터 김씨를 알게 되었다. 당시 부산의 인권단체인 아시아평화인권연대에서 활동하면서 교우했고, ‘김형률을 생각하는 사람들’ 모임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제2의 전태일로 불리는 인권운동가 김형률씨만이 아니라 제2,제3의 김형률, 즉 원폭 2세 환우들의 인권회복 문제를 우리 모두의 숙제로 던져주고 있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고인이 생전에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마다 말미에 덧붙여 보낸 문구였다. 하나 더. 지병의 통증도 아랑곳없이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토록 고인이 힘겹게 싸우며 소망했던 관련 특별법 제정은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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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