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연인들 사랑의 추억을 간직한 나무

여기 저기 만난 산뽕나무가 반갑다. 뽕나무 열매 오디가 익기 시작하였으니 더욱 즐겁다. 알록 알록 울긋 불긋 색깔이 변하고 있는 오니는 드디어 하나 둘씩 검게 익기 시작하였다. 단맛이 지천이고 몸에 좋지 않다하여 멀리하는 시대가 되었으나 그래도 산길에서 만날 오디의 달콤 텁텁한 맛은 재미에서 오는 즐거움이리라.

뽕나무하면 그냥 말만 들어도 친근감이 넘친다. 입술을 까맣게 물들이며 따먹는 오디에 얽힌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을터이고, 직접 보지 못하고 자란 대부분의 세대이지만 누에는 뽕잎을 먹고 자라 비단실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나, 역시 이제는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없어 막연한 짐작이긴 하지만 무성한 뽕나무 밭에 얽힌 이런저런 연예이야기들에 귀를 솔깃해하던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 나라에 전해 내려 오는 나무 노래의 일부엔 “오자 마자 가래나무, 덜덜 떠는 사시나무, 하느님께 비자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란 노랫말도 있다. 물질만능의 시대에서 이렇게 어리숙 한 뽕나무이야기들은 오히려 그리움이 된다.

우선 우리가 산에서 보는 나무들은 대부분 뽕나무가 아닌 산뽕나무라는 것을 기억하자. 산뽕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나무이고 그냥 뽕나무는 그리이스를 원산지로 하여 누에를 키우느라 부러 심어,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루던 나무이다. 이제 주변엔 뽕나무밭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우연히 산행길 초입에서 본 나무는 십중팔구 산뽕나무이다. 오디의 크기도 좀 작고 암술대가 있는 것이 차이점이긴 하다.

추억의 나무 뽕나무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다. 우선 정말 방귀 뀌어 뽕나무가 되었을까?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뽕나무의 열매 오디를 먹으면 소화가 잘 되어 방귀를 뽕뽕 잘 뀌게 되어 이 나무의 이름이 그리 되었다는 것이다.

한자를 배우면서 대표적인 상형문자로 소개되는 상(桑)자. 나무 위에 뽕나무 열매 오디가 다닥 다닥 붙어 있는 모양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생각난다. 우리나라 속담에 ‘임도 보고 뽕도 딴다’라는 것이 있다.

한 가지 일을 하고서 두가지 효과를 얻는 즉 일석 이조의 의미이나 다소 엉큼한 느낌도 난다.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눈을 피해 청춘 남녀가 만나기엔 뽕나무 밭이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예전엔 뽕잎을 따는 처녀에게 뽕잎을 따 줄테니 대신 명주옷을 지어 달라고 하면 이속에는 수줍은 총각이 하는 청혼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도 한다. ‘상전벽해(桑田碧海) 되어도 비켜 설 곳 있다.’는 속담은 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되어도 즉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희망이 있다는 뜻이 된다.

예전엔 비단을 얻기 위해 뽕나무를 심었다. 누에는 얼마나 뽕잎을 잘 먹었던지, 누에를 키우는 곳에 가면, 누에들이 사각 사각 뽕잎 먹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였다고. 예나 지금이나 비단은 고급스런 옷감이다. 하지만 웬지 우리의 비단은 가고 실크만 남았다는 자조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잘익은 오디를 따서 으깨어서는 삼베에 넣고 그 즙액만 짜서 한번 끓인 뒤에 소주와 설탕을 넣어 담그어 마시면 건강에 아주 좋다는 오디주가 되고, 제대로 심어 가꾸면 좋은 정원수가 될 가능성도 높고, 한방에서는 겉껍질을 제거한 뿌리를 상백피라 하여 좋은 약제가 되는데 특히 탈모를 비롯한 증상에 효과가 높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봄에 어린 잎을 나물이 되기도 한다. 밝고 씩씩한 산뽕나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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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