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토하며 8개월 최장 시간 녹음… 애절한 샤우팅 창법 전형 보여줘국민 포크송 폭발적 공감대… 최초로 트리뷰트 앨범 헌사 받아

1985년 11월 29일. 그리고 2008년 5월 30일. 정확하게 22년 6개월의 시공간. 대중가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천재요절가수 고 김정호의 사후 활동 타임테이블이다. 1985년은 지병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해이고 2008년은 특정뮤지션으로는 사상 최다인 4번째 트리뷰트 공연을 헌사 받은 금자탑이 세워진 년도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듯 뮤지션은 죽어서 남기는 것이 노래일 것이다. 사후에도 전 세계적으로 추모공연이 계속되고 끊임없는 음반판매로 천문학적 수익까지 올리고 있는 뮤지션은 그리 많지 않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의 멤버 존 레넌, 얼터너티브 록그룹 너바나의 리더 커트 고베인은 그런 의미에서 축복받은 뮤지션이다. 특히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은 록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는 2007년에도 5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불멸의 뮤지션이다.

명멸의 인터발이 짧은 국내 대중음악계의 현실에선 부럽기만 일이다. 그렇지만 실망하지 말자. 우리에게도 공식 트리뷰트 공연을 4회나 헌정 받은 김정호를 필두로 김광석, 유재하라는 빛나는 뮤지션들이 있질 않은가.

지난 5월 30일 광주광역시. 김정호는 국내 공연사에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우며 또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그는 최초로 트리뷰트앨범을 헌사 받으며 새로운 지평을 연 뮤지션이기도 하다.

드라마틱하게 짧은 삶을 살다간 그의 등장은 70년대 대중음악계에 일대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젊은 세대에겐 낯선 이름이겠지만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정서에 새겨놓은 그의 흔적은 짧게 정리하기 어렵다.

그가 만들고 노래한 수많은 노래는 젊은 학생층에 국한됐던 기존의 포크송을 온 국민을 대상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폭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시대정신이 되었다. 당시 유니버샬레코드는 젊은 층을 겨냥한 ‘영 패밀리’ 옴니버스 시리즈 음반의 1집부터 4집까지의 모든 재킷표지를 그의 사진으로 장식했다. 그의 인기와 음악적 지분이 얼마나 대단했던 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마초 파동은 그에겐 음악적 사형선고였다. 이후 자신의 노래 '작은 새'처럼 좌절과 방황의 힘든 고행 길을 걸어야 했다. 금지의 세월은 좌절의 시간이었지만 인생을 성찰하며 진짜 소리 찾기에 함몰했던 값진 창작의 시간이기도 했다. 5년 만에 맛 본 해금의 달콤함도 잠깐. 결핵균보다 강하게 꿈틀거리는 음악적 열정은 위대한 명곡을 탄생시켰지만 결국 자신을 사지로 몰고 가는 주범이 되었다.

1983년 11월에 발표된 그의 유작 앨범 ‘LIFE'는 숨쉬기조차 힘들어 피를 쏟아내며 서울스튜디오에서 8개월의 최장시간 녹음을 기록한 마지막 정규앨범이다.

총 10곡의 수록곡 중 타이틀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는 그의 마지막 히트곡이다. 인천 결핵요양원 시절 송도해변을 걷는 여인에게서 느낀 슬픔의 이미지를 담아낸 처연한 멜로디다. 1면에 수록된 ’님‘, ‘지난 겨울엔’, ‘세월 그것은 바람’, ‘아무도 없는 거리’등은 많은 후배 가수들의 창법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김정호만의 애절한 샤우팅 창법의 전형을 제시했다.

대중음악과 국악의 완벽한 접목을 구현한 ‘님’은 난산 끝에 탄생된 명곡이다. 탄식의 이미지를 가득 담은 이 노래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상여가락을 연상시켰다.

소름이 돋는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이 노래는 온몸을 불사른 김정호의 마지막 불꽃이었고 그에 대한 재평가의 담론을 출발시킨 접점이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님’은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재 상영 금지처분이 내려졌지만 국악인 김소연에 의해 절창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그의 히트곡 ‘하얀나비’의󰡐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라는 노래구절처럼 그의 영혼은 자신을 그리워하는 대중의 염원을 타고 수많은 헌정공연을 통해 부활되어 순백색의 날개 짓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미디어네트워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