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 된 '두 얼굴의 사나이'헐크에 대한 향수·할리우드의 영웅 만들기 조합 흥행 성공할까

어떤 영화는 한 시대를 상징하고 어떤 영화는 한 캐릭터를 창조한다. 러시아 혁명은 에이젠슈타인의 <10월>과 동의어가 되고 슈퍼맨과 배트맨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우상으로 숭배된다.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는 대중의 기억을 교통 정리해준다. 슈퍼맨과 킹콩과 고질라와 헐크는 개인의 연대기를 영화 관람 경험으로 작성하게 한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이 개봉되었을 때 한 평론가는 <스타워즈>와 함께 자라고 성장하여 자신의 연대기와 <스타워즈>의 필모그라피가 함께 했었다고 감격적으로 토로한 적 있다. 중국영화 애호가들은 이소룡의 세대와 성룡의 세대 그리고 주윤발과 장국영의 세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한국의 관객도 일제 강점기의 애활가에서 출발하여 1960년대 고무신 관객으로 넘어와서 1990년대 신세대 관객으로 변천해왔다. 영화는 역사와 세대를 문화적으로 구획정리한다.

자신의 사적 연대기에 적극 참여한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오래된 친구의 편지를 서랍에 보관해두고 있는 것처럼 든든한 일이다. <희생>,<만다라>,<하나 그리고 둘>, <8월의 크리스마스>,<우나기>,<만춘>,<우묵배미 사랑>,<그들도 우리처럼>, <개그맨> 등은 영화평론가에게 밤을 새워 연필로 써서 보내온 연애편지같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필자에게 청소년기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1980년대의 지방은 민영방송인 MBC와 공영방송 한 개의 채널만 시청할 수 있었다.

시골 아이들은 서울에 상경하면 남대문부터 구경하지만 친척집에 도착하면 서울만을 대상으로 상영하는 채널과 AFKN을 영화관에서 영화보는 것 보다 더 열심히 시청했다. 필자 역시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드라마에 넋을 잃었으며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드라마가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인간이 슈퍼맨으로 변신하는 것은 영화에서 목격했지만 평범한 대학생이 갑자기 무서운 거인형 괴물로 변신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헐크는 무엇보다 인간의 외모와 행동에 가깝다는 점에서 공감과 지지를 받아냈던 것 같다.

<두 얼굴의 사나이>에 대한 향수를 마케팅 전략으로 하여 영화로 제작된 <인크레더블 헐크>는 인간적인 면보다는 특수효과를 동원하여 보다 강한 버전의 헐크를 만들어내는 데 힘을 기울인 것 같다.

이 영화는 헐크라는 이름은 빌려왔지만 헐크의 자리에 슈퍼맨과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을 집어넣어도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는 표준형 슈퍼 히어로에 의존한다. 헐크는 평범한 인간이 분노를 통해 무서운 괴력의 사나이로 변한다는 점에서 지지와 연민을 얻어냈다.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재가공된 <인크레더블 헐크>는 기존의 슈퍼 히어로 서사와 캐릭터의 인용과 복사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롭기 힘들것 같다.

이 말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축한다. 긍정적인 면은 기존의 영화 서사와 캐릭터의 상위 버전이 주는 대중성을 담보해 냈다는 점이며 부정적인 면은 헐크에 대한향수 관객들에게 낯선 캐릭터에 대해 인내를 감수하게 하는 부담감이다.

향수 전략과 할리우드 영웅 만들기의 조합은 상업적 상승효과로 귀결될지 아니면 식상한 인기상품으로 관객의 외면을 받게 될지 흥행 결과가 주목된다.

브루스 배너(에드워드 노튼 분)는 인간을 병기로 만들어내려는 미 육군의 비밀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유능한 과학자인 그는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어 분노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헐크로 변신하게 된다.

그는 자신을 다스려 변신을 막아보는 일과 치료제를 개발하여 치유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미육군은 브루스 배너를 찾아내어 제거하려고 그를 추적한다. 이 영화는 변신을 막기 위해 치료제를 구하려는 배너와 배너를 찾아서 사살하려는 미육군의 계획으로 추적이 추격 드라마의 스릴과 긴장이 전반부 서사의 핵심이다.

후반부는 배너의 곁을 지쳐주고 도와주는 미육군 장군의 딸이자 배너의 연인인 베티 로스와 배너의 연애감정과 육군에 맞서 싸우며 치료제를 구하는 배너와 미육군의 인간 병기인 에밀 브론스키(팀 로스 분) 맞대결로 귀결된다.

결국 선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헐크/브루스 배너와 강한 힘으로 악행을 자행하는 브론스키는 일대 격전을 벌인다. 서부 영화의 불문율인 ‘처음 총을 발사한 자는 반드시 먼저 죽는다’처럼 처음에 일격을 맞고 넘어진 헐크가 브론스키에게 마지막 승리를 거둔다.

이 영화는 두 괴물의 싸움 보다는 국가권력의 희생양이 된 과학자가 자기 치유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볼거리는 스파이더맨처럼 건물과 건물을 넘나드는 헐크와 총알과 대포에도 끄떡없는 강한 헐크의 초인적 힘이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두 얼굴의 사나이>의 헐크를 기억하는 40대 관객보다는 <아이언 맨>과 <배트맨>에 열광하는 20대 관객에게 더 지지를 받게 될 영화다.

특수효과는 헐크의 능력을 배가 시켰지만 인간적인 맛을 거세시켰다. <스파이더맨>과 <엑스맨>의 원작사인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참여는 헐크라는 캐릭터를 기존의 슈퍼 히어로 결정판으로 가공해버렸다. 할리우드 영화는 소수의 관객보다는 다수의 관객을 지지한다는 불문율을 항상 고수한다.

■ 문학산 약력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현 세종대 강사, 영등위 영화등급 소위원, 한국영화학회 이사.저서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한국 단편영화의 이해>. 영화 <타임캡슐 : 서울 2006 가을>, <유학, 결혼 그러므로 섹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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