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니 평화와 풍요가 오네장석주 지음/ 뿌리와이파리/ 12,000원장자의 세계에 매료돼 10여년째 시골 생활하며 느린 삶을 실천

먼저, 저자에 대해 이야기는 것이 좋겠다. 저자 장석주는 십여년째 시골에 둥지를 옮기고 ‘느린’ 삶을 살고 있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다. 일 년에 일만 쪽 이상의 책을 읽고, 직접 써낸 책만 해도 50여 권에 이른다. 현재 그는 경기도 안성에 ‘수졸재’라는 집을 짓고 살고 있다.

걷기를 즐기며, 명상과 침묵을 사랑하고, 재즈와 고전음악을 좋아한다. 매일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는 그는 처음 시골생활을 원했던 이유 그대로, 자신 안의 변화와 평화, 풍요를 얻고 있다. <그 많은 느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는 이에 대한 에세이형 보고서에 가깝다.

각박한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이 꿈꾸는 절대자유의 세계, 그대로다. 느긋하지만 무디거나 치우침 없는, 부드러운 날카로움이 실린 철학적 시선이 글을 통한 그의 삶 전반에 흐른다.

저자는 장자와 노자의 이야기로 책의 말문을 트기 시작한다. ‘아직도 그 세계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그는 장자와 노자의 <도덕경>을 족히 백 번은 읽은 사람이다. 특히 장자의 경우에는 시중에 나도는 번역 판본 수십여 종을 탐독, 자신이 관찰해 온 장자의 세계를 심도있게 해부한다.

장자와 노자의 철학을 견주어보는가 하면 자신처럼 장자의 세계에 매료된 이들을 위해 자신의 독서경험을 통한 현실적인 도움말도 아끼지 않는다. 장자의 무위세계를 흠모한 그가 시골로 들어가 스스로 느린 삶을 택한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느림의 미학으로 운을 뗀 책은 느림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그 가운데로 비움의 자연 생활 속에서 얻은 여러 생활 단상들이 에세이 형식으로 다양하게 엮여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어휘들에서부터 고흐의 자화상, 모차르트 이야기, 수졸재와 방문객들, 나비의 꿈, 아들에게 주는 편지 등 많은 소재를 다루며 자신의 생각을 싣고 있다. 시작(詩作)과 비평을 업으로 삼은 이답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필치가 아름다우면서도 똑 부러진다. 군데군데에 인용되는 시와 산문, 동서양의 고전 및 현대의 명문들을 접하는 기쁨도 녹록치 않다.

[ 일손을 놓고 노자와 장자를 읽는 동안 끼니 걱정은 밀쳐두었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돈 없으면 돈 주고 사는 육고기 대신 주변에 지천으로 널린 민들레며 씀바귀를 뜯고 여린 뽕잎을 따서 된장에 찍어먹었다. 쌀이 떨어지면 이웃에서 보낸 감자를 삶아 먹었다. 은행 잔고가 바닥이 나면 신기하게도 출판사 사람이 나타나서 계약금이라고 몇 푼 쥐어주고, 묵은 통장을 확인해보면 뜻밖에도 어디선가 징수한 저작권료라고 저작권협회에서 보낸 돈이 들어와 있었다.-‘전원과 은일’편 중]

자기로부터의 자유를 사랑한, 범부를 자처하는 저자의 범부 이상의 삶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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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