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온 픽사 20주년 작품전"창의적 기업 문화·작업환경 세계적 3D 애니 원동력"

<토이스토리>, <벅스라이프>, <몬스터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카>, <라따뚜이> 그리고 오는 7월31일 개봉 예정인 <월*E> 등의 컴퓨터 3D 만화영화를 만든 픽사(Pixar)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작품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창의적 예술성을 높이 평가한 MOMA(뉴욕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가 픽사 20주년을 기점으로 기획했다.

MOMA전시 이후 영국 바비칸 아트갤러리는 세계 순회 전시를 기획해 영국, 일본, 호주 그리고 핀란드 전시를 마치고 한국을 찾았다. 전시는 픽사 아티스트들의 드로잉, 조각, 회화, 컬러스크립트 등 수작업 작품의 공개를 통해 아티스트들의 예술성과 창조성을 조명한다.

픽사는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의 특수효과를 위해 설립한 컴퓨터 그래픽 제작부가 전신이다. 이것을 애플 컴퓨터에서 나온 스티브 잡스가 1985년에 매입한 후 픽사라고 명명했다. 픽사는 TV 스크린과 컴퓨터 모니터 위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픽셀(Pixel)과 아트(Art)의 합성어다.

픽사에서 만화영화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만드는 만화영화마다 빅히트 시키는 픽사의 위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은다.

전시 설치작업을 위해 내한한 픽사의 애니메이터 데이비드 스미스를 만나 경이적인 만화영화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인 픽사의 창의적 기업문화와 작업제도에 대해 들어봤다.

"픽사가 좋은 만화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일하기 좋은 환경에 있어요. 물론 우리회사는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아티스트와 기술자만을 뽑죠. 하지만 이들이 지속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아티스트와 기술자간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사내 문화와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정된 고용환경이에요. 저 같은 애니메이터들이 정규직원으로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스튜디오는 픽사가 거의 유일하거든요. 픽사가 단발성 히트작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공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는 저력은 이런 고용환경에서 나온다고 봐요."

스미스는 미술학교 중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캘아츠(캘리포니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를 졸업하고 픽사에 입사해 <라따뚜이>, <인크레더블>, <카>의 제작에 참여했다.

만화에 등장하는 개구쟁이 캐릭터마냥 명랑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내내 픽사의 훌륭한 작업환경에 대한 자랑을 늘어 놓았다.

픽사는 자유롭고 즐거운 회사 분위기로도 유명하다. 회사 내에 수영장과 배구장, 축구장, 사우나시설 등이 갖춰져 있고, 회사 군데군데 간식이 쌓여 있다.

“우리는 딱딱한 회의실 의자에 앉아 회의하기 보다는 체육관에서 운동하며 즐겁게 회의를 하죠. 입이 궁금하면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얘기하기도 하고요. 그래야 아이디어가 더 잘 나와요. 화장실은 본관 중앙 로비 한가운데에만 있어요. 직원들끼리 자주 접촉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해 회사 측이 고안해 낸 아이디어였지요.”

스티브 잡스는 회사를 인수한 후 <토이 스토리>를 성공시켰다. 그것을 발판으로 잡스는 기존의 작은 회사빌딩을 늘려 크게 짓고, 운동시설을 만드는 등 직원들이 더욱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고 스미스는 덧붙였다.

픽사가 추구하는 만화세상은 무한한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또 하나의 세계다. 그는 한 예로, <라따뚜이>에 등장하는 쥐약깡통 하나를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스태프들이 아이디어를 짜내고 고심했는지를 전해줬다. 쥐약깡통 이라면 슈퍼마켓에 가서 사진을 찍어와 비슷하게 그려넣으면 되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아요. 이번 전시회 와서 잘 보면 알겠지만, 저희 만화영화에 나오는 쥐약깡통은 현실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게 아니에요. 그런 소품 하나를 만드는데도 굉장한 상상력과 재치가 필요해요.”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픽사 만화영화의 상상력이 어디서 어떻게 탄생되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창조성이 무(無)에서 나오는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다. <라따뚜이> 제작기간에는 실제 쥐 두 마리를 사무실에서 키우며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니모를 찾아서>를 만들 때는 치과의사에게 자문을 구했고, 개봉을 앞둔 <월-E>의 경우 나사(NASA) 연구원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또, <벅스 라이프>를 만들 때는 숲속에 작은 카메라를 설치해 벌레의 시각에서 숲은 어떻게 보이는지 등을 철저히 연구하기도 했다.

직원들의 창의력이 십분 발휘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문화지만, 유아독존하는 직원은 살아 남기 힘들다. 만화영화라는 것은 수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만들어 내는 공동작업이기 때문이다.

“픽사는 엄연한 회사고, 조직의 위계질서가 있어요. 그러나 그 속에서도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고, 자기 아이디어를 피력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문화와 시스템이 있는 거죠. 작업하는데 있어서 만큼은 평등해요. 대표적인 것이 ‘플러싱(Plusing)’이라는 제도죠. 몬스터 주식회사 제작을 예로 설명드릴께요. 몬스터 캐릭터를 처음 제안한 사람의 드로잉이 있어요. 그러면 직원 누구나 그 옆에 자기 생각대로 캐릭터를 변경시킨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그런 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수렴해서 하나의 캐릭터가 탄생됩니다.”

쥐털 하나하나,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까지도 모두 많은 이들의 아이디어가 합쳐진 후 협동작업에 의해 완성될 수 있다.

이 같은 공동작업 문화와 제도가 있기에 또한 최첨단 기술과 예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게 스미스의 주장이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과 MIT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일하는 직장은 흔치 않죠. 창의성과 더불어 픽사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위력은 융합의 기술이에요. 그로부터 컴퓨터 기술과 예술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거죠.”

그는 자신처럼 애니메이터나 예술감독 등 크리에이티브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방은 만화 캐릭터가 널려있고 지저분한 반면, 테크니션들이 일하는 부서는 그에 걸맞게 깨끗하다고 말했다. 또, 회사에서 가장 깨끗한 사무실은 스티브 잡스의 방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경영자답게 정돈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무실 분위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픽사는 이질적인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 직장이다.

“모든 직원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아티스트도 컴퓨터를 배워야 하고, 기술자도 아트를 배워야 해요. 이를 위해 직원들은 입사 전 픽사 대학(Pixar University)에서 3개월간 크로스오버 교육을 받죠. 또, 일하는 중간중간 본인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언제든지 픽사 대학에서 컴퓨터, 애니메이션, 드로잉, 댄스 등 필요한 과목을 수강할 수 있어요.”

인터뷰를 마칠 즈음 그는 "예술은 기술의 발전을 부르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는 문가가 적혀있는 전시회 입구로가서 펄쩍 뛰어 올랐다 . "이번 전시회에 오시면 픽사의 놀라운 만화영화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보여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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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