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영의 세 자녀 여성 보컬그룹 결성한국 가수 아메리칸 드림 가능성 제시노래와 춤에 악기 자유자재 구사… 미국서 '동양의 요정' 찬사

해방과 더불어 시작된 미군의 주둔은 국내 대중음악의 일대 변화를 몰고 왔다. 미군들의 여흥을 위해 물밀듯이 유입된 미국대중문화는 당대 대중이 따라하고 싶은 무작정 동경의 대상이었다. 미제라 하면 꺼뻑 죽던 시절 말이다.

‘샌프란시스코’, ‘아메리칸 차이나타운’, ‘아리조나 카우보이’등 미국의 구체적 지명이 들어가고 황당한 영어가사들이 판치는 노래들이 양산된 것은 그 시절 대중문화의 큰 흐름이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 대중음악계는 서양의 8음계를 구사할 수 없었다. 중국과 일본풍의 멜로디가 고작이었다.

1953년 가을, 수도극장(과거 스카라극장) 무대에 고 이난영의 세 자녀가 국내 최초로 ‘김시스터즈’란 보컬 팀을 정식으로 결성해 등장했다. 악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노래와 춤까지 동시에 가능했던 당시로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여성보컬그룹이었다. 미8군 무대에서 이들의 인기는 상상을 불허했다.

1958년 새로운 흥행거리를 찾아 일본을 찾은 미국의 쇼 흥행업자 톰 볼과 운명의 인연을 맺었다. 그는 우연히 주한미군들로부터 김시스터즈를 소개받고 곧바로 한국을 찾아 이들의 미국진출을 성사시켰다. 아시아 최초로 미국진출 1호 여성보컬팀이 탄생되는 순간이다.

1959년 초 미국무대 진출이후 매일같이 저녁 9시부터 새벽5시까지 강행된 라스베가스 생활은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큰 뜻을 품은 이들은 하루 8시간이상 연습에 몰두했다고 한다. 당시 악기를 연주하는 여성 보컬그룹은 미국에도 생소했다.

그래서 아리랑, 도라지타령 등 우리민요를 곁들인 춤과 노래와 연주가 어우러진 이색적인 무대는 순식간에 ‘동양의 요정’이란 찬사로 이어졌다. 재미교포들은 김씨스터즈의 민요가락에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 미국 최고의 인기TV 프로그램 <에드 셜리반 쇼> 출연은 기적이었다. TV출연 후 음반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1960년 미국에서도 히트한 <찰리 브라운>등 총 12곡을 수록한 첫 음반이 나왔다. 음반을 들어보면 당시 김시스터즈의 음악적 역량이 놀라운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수준급의 곡 해석은 물론이고 노래마다 차별한 감성과 아름다운 화음 그리고 파워풀한 가창력은 압권이다.

미국 진출 후 갖은 고생 끝에 얻어낸 첫 앨범을 받아든 자매들은 벅찬 감동에 울음보가 터졌다고 한다. A면은 ‘TRY TO REMEMBER'등 당대 미국 히트팝송의 리메이크버전이다. 주목할 면은 ‘아리랑’과 이난영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봄맞이’를 담고 있는 B면이다. 거의 모든 곡을 영어로 취입한 앨범 수록 곡 중 한국어로 취입한 노래들이다.

이 음원들은 다소 중국풍으로 편곡되어 있다. 당시 한국은 전쟁을 통해 알려진 미지의 나라. 우리의 음악을 접해보지 못했을 미국 음반 편곡자에게 동양의 음악은 중국적 멜로디로 통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중국풍의 아리랑은 아쉽지만 한편으론 재미있기도 하다.

앨범발표 후 각종 잡지와 방송의 평론가들은 미국 최고의 흑인여자 보컬 트리오 <스프림즈>와 같은 서열로 김씨스터즈의 음악을 극찬했다. 이에 세계유수의 잡지 LIFE 1960년 2월호에 특집화보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1964년 L.K.L레코드는 미국에서 제작된 데뷔음반을 공수해 ‘킴시스터즈 첫앨범’이란 한국어 타이틀을 추가 디자인해 발매해 큰 호응을 얻어냈다. 대만에서도 이 앨범은 발매되어 주목을 받았다.

독특한 무대매너와 연주를 곁들인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던 수출1호 보컬그룹 김시스터즈는 이 한 장의 앨범으로 한국대중가요의 뛰어난 재능을 세계에 알렸다. 최초의 미8군 가수인 이들의 음반이 희귀하고 귀한 콜렉터스 아이템으로 존경받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에서 제작된 김시스터즈의 첫 앨범은 한국가수의 아메리칸 드림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한 의미 있는 명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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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